메인화면으로
성소수자는 상시 해고 대상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성소수자는 상시 해고 대상자?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②] 노동 개혁은 차별이다

"노동 개혁은 우리 딸과 우리 아들의 일자리입니다." 얼마 전 버스에서 들은 노동 개혁 광고이다. 정부는 '선진화된 고용 시장'을 만들어 우리 아들, 딸들이 취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 개혁에 대한 내 주변 반응은 영 미지근하다. 오히려 "졸라맬 허리띠도 없는 940만 노동자들에게 임금피크제는 목을 조르는 것"이라는 노동 개혁에 대한 심상정 의원의 일갈은 사회적연결망서비스(SNS)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분들은 대한민국의 아들, 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회 곳곳에 노동 개혁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덕분인지(?) 노동 개혁의 바람은 사회 곳곳에 불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게까지 닿고 있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가능하다. "나는 게이를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어, 게이 친구 한 명 있으면 좋겠다." 그 앞에 서 있는 나(게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보이지 않는다. 비(非)성 소수자 중심의 사회에서 성 소수자인 '우리'들은 늘 타자화되고 보이지 않는다. 그런 우리에게도 노동 개혁의 화살은 여지없이 꽂힌다. 성 소수자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매체에서 노동 개혁이라는 말은 접해봤어요. 평소에 현수막 등을 통해 노동 개혁에 대한 문구를 많이 보기도 했고 저번에 광화문에서 우연히 관련 집회를 보기도 해서 노동 개혁이 안 좋다는 인식은 있어요. 근데 구체적인 조항을 모르다 보니 확신에 차서 무엇이 어떻다 말하기가 좀 그래요.

한편으론 내가 노동자라는 인식이 희미해서인지 내 문제로 와 닿지는 않는 느낌이에요. 아무래도 지금은 취업 준비하는 것만 생각하고 고용된 후의 일까지 생각하는 경우는 적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도 언젠간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남성과 여성의 노동 격차가 큰 현실에서 노동 개혁까지 진행되면 여성인 저에게 더 큰 타격이 있을 거란 생각은 들어요. 또 동성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여성과 결혼하고 싶을 때 노동 개혁까지 겹치면 더 힘들 것 같아요." - A(24세/여성/바이섹슈얼/아르바이트노동자, 취업준비생)

"노동 개혁이라는 말은 길거리 현수막이나 기사를 통해 많이 접한 것 같아요. 얼마 전 KTX 탔을 때 모니터에서 광고로 나오더라고요. 기본적으로는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이번에 노동 개혁에 대해 자세히 다룬 기사를 보고 노동 개혁에 반대해야겠다고 확실히 생각했어요. 근데 또 노동 개혁이 당장 저에게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일을 일찍 시작해서 경력이 있는 편이라 이직 걱정이 딱히 없고, 이쪽 업계는 워낙에 정년이 짧다 보니 일반 해고나 임금피크제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그냥 흘려듣게 되는 것 같아요." - B(32세/남성/게이 퀘스쳐너리/프로그래머)

ⓒ프레시안(최형락)


매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별을 겪는 우리에게 노동 개혁만큼은 '평등'하게 느껴진다. 내 문제가 아닌 것 같은 거리감이나 내 문제가 될 것 같은 불안이 딱히 우리를 겨냥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비성 소수자들이 그렇듯 성 소수자도 임금이 낮으면 먹고살기 어렵고 해고가 쉬워지면 다른 삶을 꿈꾸기 어려워질 뿐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노동 개혁조차도 우리를 차별한다. "나쁜 것은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고 했던가. 노동 개혁은 940만 노동자들에게 '평등'하지 않다.

정부는 노동 개혁을 추진해 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근로기준법 23조를 통해 노동자의 해고를 제한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에서 해고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했다면 불법이다. 그러나 노동 개혁에서 말하는 '일반 해고'는 그런 제한을 없앤다. 일반 해고가 도입되면 고용주는 노동자를 성과나 근무태도 등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성과나 근무 태도 등에 대한 평가 권한이 절대적으로 고용주에게 있다는 점이다. 고용주는 여성 노동자에 대해 머리가 짧다는 이유를 들어 '근무 태도 불량자'로 만들거나 결혼하지 않는 성 소수자에게 '저성과자'라는 굴레를 씌워 해고할 수 있다. 고용주는 언제든 "해고당하기 싫으면 벽장으로 들어가!"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 개혁은 차별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업 급여 받는 조건을 더욱 강화하고, 기간제나 파견제를 확산하는 정책들도 추진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더 많은 차별과 억압을 당하는 계층은 일을 구하기 더 어렵다. 그만큼 더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소수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노동 개혁은 차별을 줄이려는 목표를 갖기는커녕 일자리를 가질 기회조차 제한되는 소수자들의 마지막 희망조차 빼앗아 버린다.

우리는 이미 직장에서 비성 소수자들이 누릴 수 있는 각종 복지 혜택으로부터 배제된다. 게다가 "누구랑 연애해?", "여자가 왜 이렇게 머리가 짧아?"와 같은 질문에 늘 평가되고 있다. 트랜스젠더들은 애초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우리는 일상적인 고용 불안 속에서 자신을 감추는 것만으로도 이미 숨이 막힌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개혁안은 우리를 더 깊은 벽장 안으로 가둬버릴 것이다. 노동 개혁은, 이성애 중심적인 한국사회가 우리에게 가하는 또 다른 차별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노동개악'을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사회 단체 활동가들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총 다섯 꼭지의 글을 연재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