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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200원에 목숨 걸고 일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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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200원에 목숨 걸고 일해야 해?"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①]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박근혜 정부는 우리를 위해 노동 개혁을 한다고 열심이다. 그 '우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임금 피크제가 아니어도 우리는 나이 들면서 이미 월급 봉투가 얇아진다. 일반 해고가 아니어도 직장은 좌불안석 가시밭이다. 비정규직 보호? 지금까지 보호받느라 파견을 전전하고 최저 임금도 못 받고 그나마 체불되고 있다. 노동 시장에 진입조차 못하는 우리들까지. 여러 단체들이 모여 인권의 눈으로 노동 개악의 문제를 짚어보고 그 이야기를 <프레시안>에 연재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나는 평범한 고3이었다. 기계처럼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갔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갔다.

내 삶이 변한 건 아빠의 월급이 줄어들면서였다. 원래 60세까지 일하기로 했던 아빠는 정년을 5년 남기고, 반 토막 난 월급을 보며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어차피 5년 동안 받을 월급과 퇴직금을 합해도 지금 받는 것보다 더 적다고 하시면서.1)

아빠는 퇴직금으로 작은 치킨집을 차렸다. 대한민국 모두가 '기승전 치킨집'이라 해서 난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매출은 별로였고, 주인은 가게 월세를 두 배로 올려달라고 했다. 아빠는 가게를 접고 공장에 취직했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알바를 시작했다. 청소년이라 별로 써주는 데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편의점 야간 알바를 택했다. 시급은 6500원이었다. 최저 임금이 6030원인 것에 비하면 많지만 야간에 더 줘야 하는 걸 생각하면 너무 낮았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사실 법은 청소년이 밤에 일하지 못하도록 정했다고 한다. 어차피 근로 계약서도 없으니 그냥 일하는 거다. 새벽에 배가 고프면 폐기 식품으로 때웠다. 매일 먹으니 질리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몰라서 하는 소리다. 한 시간 일한 것으로는 한 끼 제대로 된 밥 먹기도 어려웠다. 고픈 배는 채워야 했다.

ⓒ연합뉴스

야간 알바를 하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춰 나는 지방의 사립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가서도 나는 똑같이 알바를 하며 달라진 것 없는 일상을 보냈다. 아니, 달라지기는 했다. 이제는 월세부터 식비까지 내 삶을 부담하게 됐으니. 나도 이제 성인이니 돈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지방은 서울보다 더 시급이 낮았다. 나는 6000원을 받고 또 야간 알바를 시작했다.

야간 알바는 사람이 할 게 못되는 일이었다.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하루 종일 피곤했다. 방학이 되자 운 좋게 시내의 큰 서점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 시급도 500원 정도 더 준다고 한다. 오픈부터 마감까지 12시간씩 일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모으려면 넋 놓고 방학을 즐겨서는 안됐다. 아빠는 주말에도 일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나.

서점의 첫 월급이 나오고 기쁜 마음에 집에 돈을 부치려고 은행에 갔다. 그런데 월급이 너무 적었다. 계산해보니 연장 수당, 주휴 수당이 다 빠져있었다. 너무 속상해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엄마의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아빠도 주말 특근 수당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어서 총무부에 물어봤더니 휴일 수당은 원래 안 나오는 거라고, 연장 수당만 나온다며 도리어 총무부 실장이 면박을 주었다고 했다. 엄마는 '너도 괜히 찍히지 말고 다시 한 번 잘 계산해 봐~ 그렇게 큰 데서 법도 모르고 그랬겠니?'라며 오히려 사장 편을 들었다.2)

나도 괜히 불안해져서 계산해보고 인터넷도 찾아봤지만 분명히 주말에 일한 시간에 대한 수당과 주휴 수당이 빠져있었다. 찾아보고 나니 아빠와 나의 처지가 좀 웃겼다. 아빠는 연장 수당은 있지만 휴일 수당이 없다며 따졌고, 나는 연장 수당도 없다며 따지고 있었다.3)

씁쓸한 마음에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다. 친구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친구는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터를 한다. 꽤 오랫동안 일했는데, 요즘 들어 부쩍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자기 실적이 너무 낮아서, 옛날보다 받는 돈이 줄었기 때문이다. 6개월마다 평가를 하는데, 그때마다 임금이 계속 깎인다고 했다. 어딜 가나 성적순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회사에 가서도. 성적이 낮은 사람은 늘 밑바닥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세상이 더럽다는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욕하며 전화를 끊었다.4)

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도저히 다닐 수 없겠다는 생각에 자퇴를 결정했다. 이렇다 할 스펙도, 빽도 없는 나는 또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켰는데, 인기 검색어 1위에 익숙한 단어가 보였다. 오늘은 최저 임금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얼마나 올랐을지 기대됐다. 좀 많이 올랐으면 했다. 그러나 꼴랑 200원이었다. 200원. 껌 한 통도 못 사 먹는 돈이다.5)

그저 웃음이 난다. 나도, 아빠도, 내 친구도 그 200원에 목숨 걸며 하루 종일 일을 한다. 거창하게 포장한 노동 개혁이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아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더 절망적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알바 하느라 좋은 대학에 못 간 거? 아빠가 치킨집을 차린 거? 아빠의 월급이 반 토막 난 거? 아니면, 우리 집이 그냥 평범한 집인 거?

이 이야기는 소설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이미 흔히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개혁은 이 소설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온 세대가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자리로 밀려나, 기를 쓰고 삶을 살아내도 편안한 날들을 가지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미 흔한 이야기라도 소설일 수 있을 때,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평범한 것이 죄스럽지 않은 미래를 위해 나는 노동 개악을 반대한다.

1) 임금피크제 하면서 임금 보전한다고 하지만 정년 연장의 효과보다 나이 들면서 임금 줄이는 걸 당연히 여기는 효과만 남게 될 것이다.

2) 휴일에 하는 연장 근로를 흔히 주말 특근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휴일 근로를 연장 근로에 포함시켜, 평일에 하는 연장 근로인 것처럼 연장 근로 수당만 지급하도록 했다. 휴일 근로 수당의 취지를 없애버렸다.

3) 이번 노사정 합의안은 탄력적 근로 시간제, 재량 근로 시간제 등 근로 시간을 고용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일한 만큼 월급 받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4) 정부는 임금 체계를 성과를 중심으로 바꾸려고 한다.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고용주이니 결국 주고 싶은 대로 임금을 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한 사람이 받아야 할 만큼은 안중에도 없어질 것.

5) '꼴랑' 오르는 최저 임금 인상액을 3년 동결하자고 경영계가 아우성이니 어쩌면 '꼴랑 200원'으로 3년 입 다물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강태이 알바노조 활동가는 어려운 용어 해설보다 소설책이 좋은 20살. 청소년때부터 편의점, 서점, 패스트푸드 등 가리지 않고 알바를 했다. 편의점 알바 하다가 알바노조를 만나 알바를 그만두고 노조 상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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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노동개악'을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사회 단체 활동가들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총 다섯 꼭지의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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