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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문재인 '교과서 공방'…문재인 "거대한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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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문재인 '교과서 공방'…문재인 "거대한 절벽"

인식차만 확인한 5자 회동…박근혜 "현 교과서, 패배주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문재인 대표 등이 마주앉은 22일 청와대 '5자 회동'에서 정부·여당과 야당은 접점 없는 평행선을 그렸다.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는 감정적 대립까지 보였다.

회동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일치되는 부분이 안타깝게도 하나도 없었다"며 "한 마디로 왜 보자고 했는지 알 수 없는 회동이었다. 모처럼의 회동을 통해 국민들께 아무런 희망을 드리지 못해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예의를 지켜 가면서 이야기했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각종 현안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고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졌다"(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라고 하면서도 "교과서와 관련해서는 인식을 좁히지 못했다"(원유철 원내대표)라고 했다.

박근혜 "민족문제연구소, 전교조 인맥이 우리 역사 부끄러운 것으로 기술"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강하게 날을 세웠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박 대통령을 비롯해 회동 참석자들이 뜻을 같이 했지만 국정화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며 "박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되는 점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명했으며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브리핑했다.

박 대통령은 또 "현재의 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태어나서는 안 될 정부', '못난 역사'로 가르치는데, 이렇게 패배주의를 가르쳐서 되나.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김무성 대표가 전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현재의 역사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 "특정 인맥, 특정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적대적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근현대사 집필자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민족문제연구소 등 특정 이념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면서 "6.25 전쟁에 관해 남과 북이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기술한 것은 우리 역사를 스스로 비하하는,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역사 서술"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자신이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인가"라고 묻자 박 대통령이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표는 "국정 교과서 추진을 중단하고 민생 경제를 살려야 된다"고 박 대통령에게 반박했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기 위해 균형잡힌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맞섰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역사학자 90% 이상이 좌파 학자들로 구성돼 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기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와 김무성 대표 간의 신경전도 벌어졌다. 김 대표는 "문 대표가 역사 교과서와 관련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이렇게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아직 집필진 구성이 안 되고, 책이 쓰여지지 않고 있는데 왜 그런 발언을 하느냐'며 '참고 있는데, 그만하십시오'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문 대표가 김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현 당정 지도부를 '친일 독재 후예들'이라고 한 데 대한 감정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 원 원내대표에 따르면, 김 대표는 "한 페이지도 쓰이지 않은 교과서를 친일이니 독재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문 대표는 '참고 있다'는 김 대표에게 계속해서 교학사 교과서를 예로 들며 이 교과서에 친일 사관이 있다고 지적했고, 김 대표는 "(지적하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것도 검인정 교과서 아니냐. 국정 교과서를 만들면 그런 것이 없어진다"는 취지로 반론했다. 김 대표는 또 "특히 교사용 지도서는 아주 문제가 많다. 왜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 하느냐"며 "교사용 지도서에 (이런 내용이) 나와서 입으로 하는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김 대표는 회동에서 "이제 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학자 등 전문가에게 맡기고 국회는 민생·경제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총 1시간 50분 정도 진행된 회동 가운데 교과서 문제만 30분 이상 이야기했다. 원 원내대표는 "거의 토론 수준으로 진행됐다"고 했다. 회동을 마치고 나온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역사 인식은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져서 거대한 절벽을 마주하는 것 같은 암담함을 느꼈다"며 "대통령과 김 대표는 역사 교과서 집필자들과 역사학자들 대부분이 좌파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고 부끄러운 나라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는 아주 완고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문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지난번 본회의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한 것처럼 잘못된 사례를 들어서 '실제로는 해당 교과서들이 그렇지 않다'고 나와 이 원내대표가 조목조목 다 설명해 줬는데도 그런 설명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똑같은 주장을 해서 '참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더 논의해봐야겠지만, 박 대통령과 김 대표께 정말 교과서를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국정 교과서 문제 때문에 우리가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한다든지, 예산 심사를 거부한다든지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대책을 논의해서 국정 교과서(추진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도 '문 대표가 절벽을 마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비슷한 심정"이라며 "같은 교과서를 놓고 서로 해석이 다르고 해법도 달랐다"고 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서로 보는 관점이 상이하고 인식 차이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며 "사실 교과서와 관련해서는 인식을 좁히지 못했다"고 했다.

새누리 "국제의료사업지원법, 野 전격 동의"…새정치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해야"

이날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이른바 '민생'을 강조하며 야당의 협조를 압박했다. 김성우 수석과 회동 참석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노사정위 타협안에 기초한 '노동 개혁' 입법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서비스산업발전법,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 통과 △예산안 조속 처리 등을 국회에 요구했다. 야당은 난색을 표하면서도 정부와 여당이 양보하면 야당도 일정 부분 양보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노동 현안에 대해, 야당에서는 파견법과 기간제법에 대해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문재인 대표는 "'노동 개혁' 5개 법안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노사정 대타협에 위반되는 법"이라며 "나머지 3개 법도 실업 급여 요건을 강화하는 등 노사정 합의에 없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서 한국노총이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 원내대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같은 야당의 우려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여당 참석자들이 나서서 "궁극적으로 '노동 5법'은 근로자 권익 신장을 위한 것"이라고 법 개정 취지를 다시 강조한 정도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활성화' 법안들 가운데 국제의료사업지원법에 대해서는 이날 회동을 통해 야당이 협조를 약속했다고 새누리당은 밝혔다. 김 대표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11월 내에 (이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해서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고, 원 원내대표도 "의료사업지원법은 문 대표가 전적으로 동의해 주셨고, 한·중 FTA도 여야정 협의체에서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 원내대표는 "오늘 충분한 논의가 있었던 만큼, 실질적 협의는 앞으로 예정돼 있는 3+3 회동에서 법안 통과 합의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서비스산업발전법에 대해 김 대표는 "정부에서 의료 공공성 훼손 우려에 대해, 의료 분야를 서비스산업발전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을 갖고 있다"며 "정부에서 야당이 주장하는 그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안을 가지고 있어서 기재위 심의를 잡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대강의 방향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고, 서비스산업발전법은 보건·의료를 빼기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협조할 생각이 있다"고 확인했다.

관광진흥법 개정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통과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이 원내대표는 "현재 정화구역 체제 내에서도 충분히 호텔을 지을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한·중 FTA와 관련해서도 이 원내대표는 "중국의 불법 어로 문제에 대해 아무 거론 없이 갈 수는 없다"며 "다른 FTA의 경우 식품 안전에 대해 따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한중 FTA도 식품 안전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비판적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고, 김 대표는 "별도의 논의를 하자"고 답했다.

경제 분야가 아닌 의제로는 선거제도 등 정치개혁, 외교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문 대표는 김 대표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안심번호제 공천' 합의를 이뤘는데 새누리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여야 대표가 합의한 것을 대통령이 압력을 넣어 무산시켜서 되겠느냐. 삼권 분립 위배다"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대해 합의 당사자인 김 대표는 "발표문을 확인해 보라"며 "이미 정개특위 소위에서 통과된 안심번호 관련 법안은 합의 처리하고, 다른 여러 부분은 '추진하기로 한다'고 분명히 표기돼 있다"고 맞섰다. 원 원내대표도 "일부 공천 룰 얘기를 문 대표가 언급했는데, 김 대표는 '합의한 사항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며 '그것은 추가로 의총에서 추인을 받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외교·국방 분야에 대해서는 문 대표가 "KF-X 사업과 관련해, 책임자에 대한 추가적 인사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으나 박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문 대표는 박 대통령 방미 성과를 평가하며 "6자 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게 아쉽고,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해달라"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도 이 제안만은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 같았다고 이 원내대표는 전했다.

문 대표는 회견 후 국회로 돌아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딱 하나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원론뿐"이라며 "우리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말한 경제 살리기 의제, 경제 민주화 의제에 대해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반면 원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오늘 회동에서 야당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이 들으셨다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비록 완전한 합의는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정국을 바라보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인식차 좁히는 계기가 됐다"고 상반된 평가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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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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