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항복. "(2014년)10월 7일부터 감청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에도 응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이석우 당시 다음카카오(현 카카오)의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1년 만에 돌연 '없던 일'이 됐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 6일 국정감사 도중 "양 기관(검찰․카카오)이 원만하게 제대로 집행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을 때만 해도, 카카오가 수사 협조 거부 중단을 결정했단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었다. 1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또 이들이 찾은 '원만한 방법'은 대체 무엇이기에….
김 총장의 '깜짝 발언' 하루 뒤 카카오가 "검토 끝 협조 재개"를 밝히며 내놓은 설명은 "국가 안보와 사회 안녕을 위협하는 간첩·살인범·유괴범 등 중범죄자 수사에 차질을 빚는다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 왔다"는 것이었다.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대화 참여자는 '익명화'를 해 제공하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일례로 여전히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감청'을 '실시간 감청'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수사 기관이 미리 요청한 미래의 대화 수집마저 '감청'으로 볼 수 있는지는 법률 논쟁의 영역에 있다.
'서버에 저장된 문자 메시지 수집은 감청이 아니라 압수'라고 판단한 2012년 대법원 판례에 따른다면, 카카오의 최근 입장 변화는 '명백한 후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는 수사 기관의 '불법‧편법 감청'을 카카오가 용인해 주려는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이렇게 '익명화' 수준의 정책만 취하고 후퇴할 것이었다면 1년 전에는 왜 '감청 영장 집행 거부'를 선언했느냐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카카오 또한 미래의 대화 수집이 '불법 감청'으로 결론 내려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용기 있는 선택'을 했던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들을 카카오톡 이용자가 '직접' 해볼 기회가 20일 마련됐다. 지난해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의 카톡 대화 2368개가 무분별하게 압수수색된 후 꾸려진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이날 오전 '감청 재개'로 선회한 카카오를 방문해 항의 면담을 진행했다. 서울 중구 대한문에서 경기 성남 분당 판교로 향하는 '1차 사이버사찰 긴급행동' 버스에는 20여 명의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몸을 실었다. 상당수가 '정진우 카톡 사찰'의 피해자인 2368명에 포함된 이들이다. <프레시안> 또한 이 2368명 중 한 명으로서 카카오 관계자들과의 면담에 참석했다. (☞ 관련 기사 :검찰에 카톡 털린 여기자, "혹시 내 '썸남'까지…")
다음은 면담 내용을 간추려 1문 1답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면담에는 카카오 프라이버시 T.F 관계자 등 5명의 카카오 측 관계자가 참석했다.
면담은 이 외에도 수사 기관이 영장 집행 후 후속 '공문'의 형식을 빌려 추가로 대화 참여자의 전화번호 등을 요구할 경우, 또 감청 영장을 원칙에 따라 '직접'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팩스로 보내 제시하는 경우 등의 내용을 두고도 진행됐다. 카카오는 현재로서는 두 수사 협조 모두 명확한 '위법성'을 띄고 있지 않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내놨다. 이에 대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수사 기관이 법원에 증거로 제시하더라도 기각될 수 있고, 실제 그런 사례도 나오고 있다"면서 카카오가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Q. 1년 사이 수사 대응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A. 지난해 카톡 사찰이 논란이 된 후 너무 광범위한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판단으로 수사 협조를 중단했었다. 이런 결정에 '환영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국내 기업이 수사 기관의 통신제한조치 협조를 중단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법이란 지적도 언론, 국회, 정부 등으로부터 적지 않게 받았다. 살인·유괴와 같은 중대한 범죄 수사 협조마저 중단하는 게 맞느냐는 사회적 비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동시에 카카오의 '감청 영장 불응'에 대한 반작용으로 '감청설치의무화 법안'이 국회에서 힘을 얻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검찰과 논의를 하게 됐고, '협조 재개'로 결론을 내렸다.
검찰과 논의하기 전에 카카오는 이용자들의 정보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적 정책적 장치를 어느 정도는 마련하고자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 등에 참석하면, 때마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것이 '1명을 수사하느라 생기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피해'였다 .이에 대해 '익명화(대화 상대자의 대화명을 블라인드 처리)'로 보호가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이용자 개인 정보 현황을 '투명성 보고서' 형태로 공개했다. 또 최대 50명의 그룹 대화까지 가능한 '비밀 채팅' 기술을 도입했다.
Q. '익명화' 만으로는 광범위한 피해 방지가 불가능하지 않나.
A. 사실 '익명화'도 쉽지 않았다. 작년에 검찰은 '열쇠공을 부르겠다'고 했었다. (김진태 검찰총장 "문을 안 열어주면 수사기관에서 결국 가서 열쇠공을 불러다 문을 따는 것처럼 그렇게 할 것"-10월 23일 국정감사) 그런 검찰이 카카오가 제시한 '익명화' 정책을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현재 카카오는 감청 영장에 적시된 정보만 제출을 한다. 영장에 '등' '기타' '일체' 와 같은 표현이 적혀 있으면, 수사기관에 별도로 연락해 협조가 어렵다고 설명을 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Q. 현재는 자신의 통신 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됐을 때 사후에도 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관련 사건이 재판으로 가야만 '내 대화 기록이 넘어갔구나'란 걸 알게 된다. 카카오에서 정보 제공 사후에라도 해당 이용자에게 공지를 할 수는 없는 건가.
A.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비밀 준수 의무가 있다. 또 수사 중인 상황에 대해서 형사 관계법상 우리가 입을 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섣불리 '앞으로는 통지하겠다'고 약속드릴 수가 없다. 이를 대신해 하는 노력이 투명성 보고서 발간이다. 투명성 보고서 발간을 두고도 일각에선 위법이라고 지적한다.
Q. 대화 내용을 선별해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가.
A. 선별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대화 내용을 들여다봐야만 가능한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대화를 선별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정보 수집을 제한하려면 영장 관행과 관련법 개정이 필수라고도 얘기한다. 카카오 혼자서 고민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건 현실이다. 'OOO와 대화한 상대방을 전부 내놓으라'고 영장이 들어오기도 하니까. 또 통신비밀보호법상 감청이 가능한 범죄의 종류가 축소되도록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다.
실제로 최근 법원은 정진우 씨의 카톡 대화를 압수수색해 검찰이 수집한 대화 기록들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아 이목을 끌었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 형사 단독 3부는 정진우 씨 카톡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 경찰이 카카오에 영장 사본을 팩스로 보냈고, 이후에도 원본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압수물 목록도 교부하지 않은 점을 들어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무분별한 영장 활용 방식인 '팩스 영장'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와 관련, 정진우 씨는 "1년 동안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팩스영장과 같은 방식을 활용한 증거 수집은 오히려 위법적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는데, 카카오가 수사 협조로 선회한 것을 보니 복잡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카카오가 이용자보다 정권이나, 검찰, 정보 기관을 더 무서워하는 게 아닐까 싶다"면서 "정부의 부당한 압력이 있어도 (카카오가)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국민의 손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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