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25년 경 헤로도토스(Herodotos)는 그리스 폴리스(polis)와 페르시아 사이의 전쟁을 상세히 기술한 <페르시아 전쟁사>를 남겼다. 동아시아에서도 이보다 약 50여 년 전 주나라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春秋)>가 집필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이미 기원전에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사회와 국가에 관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런 역사 기록이 유럽에서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흥망사>(1776~1780년)에 이르러 제국의 흥망성쇠 과정은 물론, 그 원인과 결과를 되돌아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지표로 삼으려 했던 학문적 노력으로 이어졌다. 역사학은 단순한 사실적 기록을 넘어 그 역사를 해명함으로써 의미를 밝히고 인간의 현재와 미래, 존재론적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으로 정립된 것이다.
역사 기록의 변하는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이미 기원전에 나타난다. 사마천은 한나라 이전의 역사를 기술한 <사기(史記)>(기원전 90년경)를 편찬하면서 사관(史觀)을 역사 서술의 가장 중요한 준거로 삼았다. 그는 한나라의 강력한 왕정 체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의미와 그를 움직이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에 따라 황제의 국가가 아닌 역사를 평가하려 했다.
역사는 단순히 사실 기록으로 가능하지 않고 어떠한 관점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리 기술된다. 사마천은 현재의 권력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역사의 흐름을 천명의 관점(天命之謂性)에서 세계와 역사, 인간의 근본적 도리인 성(性)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그에 따라 역사를 재편하여 기술했다.
역사는 현재 권력이나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움직이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원리가 무엇이며, 또한 이런 원리가 실현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달리 평가되고 또 그렇게 기록되어야 한다. 조선이 5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엄격하게 실록을 기록하고 보존했으며, 왕명조차도 이를 자의적으로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만든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동아시아에 비해 유럽 세계에서 사실 기록으로서의 역사학을 넘어 역사를 움직이는 원리와 기준, 역사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 중요한 학문적 관심으로 대두된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였다. 역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근대에 와서야 대두된 배경에는 영원성과 본질을 강조하는 플라톤 철학이나 기독교 문화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여하튼 유럽 사회에서 역사를 진보와 발전의 도식으로 이해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으며, 이성의 역사에 따라 철학을 전개한 헤겔을 역사철학의 전범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헤겔은 이런 관점에서 진보와 이성의 도식으로 역사를 이해하며, 그 역사가 자신들의 세계에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유럽 중심주의적 사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를 정체된 것으로 파악하는 유럽 우월주의 사고가 이후 유럽 역사학의 주된 관점이 되기에 이른다. 이런 사고는 카를 마르크스는 물론 막스 베버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주장에 한결같이 발견되는 편협한 유럽 중심주의적 사조였다.
19세기에 이르러 물질 문명과 과학기술 문명의 일면적 승리로 이런 사관이 타당한 듯 여겨졌지만, 오늘날 유럽 중심주의적 역사학을 벗어나면서 역사를 이해하는 개선주의적 관점은 많은 부분 비판받으면서 역사를 보편적 규범과 인간성의 구현에서 이해하는 조류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역사학과 역사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보편적 원리와 규범에 있기에 이런 전환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분명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며, 세계와 존재 역시 시간의 관점을 배제한 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생명과 자연도 그러하며, 심지어 영원성의 관점에서 이해되던 본질적 측면에서도 시간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해석과 이해의 원리인 것이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며 그 역사는 현실의 일면적 승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규범과 원리에 자리한다.
그것이 계몽주의 철학에서 보듯이 보편적 이성이든 또는 사마천에서 보듯이 천명이든, 혹은 기독교 역사에서처럼 하느님의 말씀이든 분명한 것은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은 보편적 규범과 인간은 인간이게 하는 원리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원리가 어떤 경우에도 자본이나 권력의 일시적 승리일 수는 없다. 사마천이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사기>를 집필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오늘날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의 전쟁을 문제 삼는 까닭은 그들이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태가 반인륜적인 폭력과 야만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식민지 시대 친일파의 행태가 비판받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이란 국가를 배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행태가 반인륜적 야만에 동조하고 이를 부추긴 반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불의였기 때문이다. 유신과 군사 독재 시대가 비판받고 거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거둔 경제적 성공이 미흡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야만과 폭력, 그 반인륜적 패륜 때문이다.
오늘 누가 이 야만과 폭력, 반인간적 행태를 정당화하려는가? 유신 시대와 그 이전의 군사 독재가 얼마나 야만적이었으며 반인간적이었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아무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 받고 죽어간 사람, 국가의 필요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려 개인의 삶과 존재가 철저히 파괴된 것은 고사하고 그 주위 사람까지 죽음보다 더 지독한 고통으로 내몰린 시간, 그것을 국가가 자행하고 수많은 기득권층이 이에 동조한 것이 그 시대가 아닌가.
그 역사의 패륜과 야만을 정당화하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지금 기득권을 누리고 이 사회의 자본과 권력을 소유하고 있기에 역사를 그렇게 반인륜적 행태로 되돌려도 좋은가. 그것이 반인륜적인 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를 정당화하려는 권력의 추악한 음모에 따른 것이라면, 그들 역시 아버지 세대의 친일과 독재의 패륜, 그 야만과 폭력을 반복하는 자들이다. 누가 그 역사를 정당화하고 그 추악한 역사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우리는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며, 사람의 역사와 삶은 인간다움과 올바름, 아름다움과 선함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야한다. 삶을 보편적 규범과 인간다움을 실현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역사를 철저히 그렇게 해석하려 한다면 이런 반인륜과 불의, 야만과 폭력의 퇴행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그 제국주의적, 군사 독재적 야만은 우리 안에 곧 되풀이될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버지의 역사를 반복한다. 그렇게 되풀이되는 역사는 지금은 비극일지 모르지만 그때는 비극(悲劇)적 소극(笑劇)이 될 것이다.
유물론과 유럽 중심주의적 사관에 빠져있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마르크스의 경고가 결코 철지난 것이 아니란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한 철학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는 참으로 웃지 못 할 비극의 시대이다.
누가 야만의 역사를 되풀이하려 하는가, 누가 그 역사를 정당화하려 하는가. 이 역사의 퇴행을 방조하는 것은 이 야만과 폭력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때 그 야만과 폭력은 마침내 나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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