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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한국, 쿠오바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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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한국, 쿠오바디스!

[민교협의 정치시평] 이 기만적인 풍요로움!

메르스 사태가 거의 한 달째 한국 사회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한 네티즌의 말처럼 메르스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대처하는 이 사회가 우리를 무섭게 한다. 어쩌면 1년 전 세월호 사태와 이렇게도 닮았을까. 배가 기울어져 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도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만 반복하면서 자신들은 탈출한 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던 그 정부, 함께 아파하겠다는 사람들을 불순분자로 몰아간 이 나라의 기득권층은 이번에도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메르스 발병 이후 정부가 했던 첫 번째 말이 "유언비어 유포자 엄단"이었다. 그 말은 세월호 참사의 "가만히 있으라"가 변종된 바이러스였다. 세월호 참사에서 눈감으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삼성이란 공룡 기업을 위해 정보를 숨겼다"는 이른바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사악한 일들이 능수능란하게 처리되고 있다.

국방장관이란 사람이 1600억을 삼켰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통영함 비리에 대한 국회조사에 기껏 생계형 비리라고 해명했단다. 끊임없이 터지는 방위 산업 비리와 곳곳에서 터지는 병역 비리에 대한 인식이 겨우 그 정도란 말인가. 생계형이란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 그런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하다는 말이다. 부적절한 답변이란 비판에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실무자들이 저지르는 비리라서 그렇게 표현했단다. 그렇다면 권력형 비리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 더 두렵다.

병역비리, 전관예우, 탈세라는 비리3종 세트에 곁들여 종교편향, 불법 정치개입, 삼성 특혜 의혹,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과 간첩 조작 사건 등에 대한 불의한 개입 등 끝도 없이 나오는 부패와 부정, 불의의 한복판에 서있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행정을 책임지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해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 일도 하려하지 않고, 올바른 정신은 고사하고 정당한 민주주의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사람을 여전히 세 사람에 한 명 꼴 이상으로 지지하고 있단다. 도무지 제정신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한국사회는 근대화 이래 물질적이며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풍요로움은 병든 것이며 약탈적인 풍요로움이다. 그런 측면에서 반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이 풍요로움 뒤에 숨은 수많은 갈등과 불평등, 착취 구조에 침묵한다면 그 풍요로움이 기만적인 것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이 풍요로움은 분명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근대의 체계 덕분이다. 근대적 사유와 체계가 과학주의적이며 산업사회로, 또 자본주의체제로 현실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풍요는 위험하고 한계가 있으며, 수많은 역기능과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 인류는 이러한 근대의 철학과 체제를 넘어 그 이후를 모색해야할 매우 중요한 순간에 처해있다. 이는 시대적 요청이면서 또한 전 세계가 당면하는 핵심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풍요로움은 결코 계속될 수 없다. 한 순간 성공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생존하고 인간다운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시대를 되돌아보고, 역기능과 모순을 수정하면서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없이 지적된 것처럼 한국은 근대를 산업화로만 수용하였으며, 19세기 말 이래의 처절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에 우승열패, 승자독식의 사회로만 치달았다. 그 희생과 노력 끝에, 그 역사적 투쟁 끝에 우리가 누리는 일정 부분의 물질적 풍요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이 작은 성공에, 이 물질적 풍요로움에 넋이 빠져 인간과 삶의 핵심적 가치와 중요한 규범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그 끝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독일의 사회학자 니콜라스 루만은 <근대에 대한 고찰>이란 책에서 사회 전체가 경제란 단일한 척도에 의해 지배될 때 그 사회는 다른 중요한 규범과 가치를 결여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상세한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럴 때 애써 이룩한 경제적 풍요로움도 그 정당성과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그 끝에는 마침내 공동의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전 새누리당 의원이었던 경남기업의 성완종 씨가 자살한 것은 지난 4월 9일이었다. 그 다음날 <경향신문>을 통해 여권 실세에 대선자금을 전달했다는 폭로와 함께 구체적인 사람과 정항을 상세히 보도했다. 곧바로 검찰은 특별 조사팀을 꾸며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를 소환 조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머지 6명의 전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두 광역시장이 관계되었고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핵심인물이었던 정권 실세에게는 다만 서면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서면으로 "죄 있나요?" 하고 묻고 아니라니, 아니구나 했단다. 돈이 오갔다는데 통장조차 열어보지 않았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경우 명확한 진술이 있었음에도 수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곁가지 같은 두 사람만 기소하는 선에서 검찰 수사는 끝이 났다. 그래도 홍준표 도지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것이 정의인가? 허태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은 물론,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은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란으로, 경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허덕이고 있다. 정녕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수없이 많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터져 오르고 있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문제가 핵심적 관건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 사회가 나서 모든 분야를 새롭게 치유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할 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개인의 욕심과 집단 이기심으로만 가득한 이들이 그들끼리 뭉쳐 탐욕스럽게 이익을 갈구하고 있다.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걸 허용하는 사람도 역시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이 혼돈의 시간, 세상이 미친 것일까 내가 미친 것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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