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의 북-중 접경 지역 답사기 '국경을 걷다 2015'를 연재합니다. 황 부원장은 지난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총 13회에 걸쳐 <프레시안>에 '압록·두만에서 바라본 북한의 오늘'을 주제로 접경 지역의 모습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3년 뒤 황 부원장은 당시와 같은 경로로 지난 8월 15일부터 7박 8일간 일정으로 다시 한 번 접경 지역 답사에 나섰습니다. 다시 찾아간 북-중 접경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번 연재를 통해 3년 동안 변화된 북한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를 통한 북-중 관계 변화 양상을 짚어보려 합니다.
북-중 접경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로 압록강에 단둥이 있다면 두만강에는 훈춘(珲春)이 있다. 북-중 간 교류와 협력에 있어서 단둥과 훈춘은 의미가 큰 곳이다. 우리는 8월 21일 훈춘을 끝으로 7박 8일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했다.훈춘은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국경이 서로 맞닿아 있는 곳으로, 현재도 3국의 교류와 협력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북한의 나진, 러시아의 하산(khasan), 중국의 훈춘을 잇는 삼각지대는 원 유라시아(One Eurasia)의 꿈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취엔허 세관(圈河 口岸) 앞에 도착하니, 북한으로 들어가려는 차량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취엔허 세관에서 두만강 위 다리를 건너면 북한의 원정이라는 작은 마을을 거쳐 나선특별시로 연결되고 나진항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시간에도 세관 앞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 목재를 실은 트럭, 레미콘 차량 등 다양한 화물을 실은 트럭들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답사에서 눈에 띈 부분은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차량 중에 소비재나 식량을 실은 컨테이너 차량보다 건축과 건설용 자재를 실은 차량이 제법 많았다는 점이다. 비록 접경 지역에 국한된 것일지는 몰라도, 지금 북한에서는 뭔가 한창 '건설 중'인 것 같다. 북한에 물자가 부족해 대개는 중국 자본이 투자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예전에 비해 접경 지역에서는 중국 쪽 뿐 아니라, 북한 쪽에서도 신축됐거나 새롭게 단장된 건물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우리는 러시아-중국-북한 3국 국경이 맞닿아 있는 팡촨(防川) 전망대에 올라 두만강 철교를 바라보았다. 철교는 러시아의 하산과 북한을 연결하는 철교인데, 나선특별시까지 연결된다. 그런데 철교의 트러스(truss) 모양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크기와 높이가 달랐다. 높고 큰 트러스는 러시아가, 낮고 작은 트러스는 북한이 건설한 것이라 한다. 두만강 철교의 트러스 모양이 북-러 간 국경선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3년에 54킬로미터에 달하는 나진-하산 철도 현대화 사업을 마무리했다. 이 철도는 나진항까지 연결되어 직접 부두에 화물을 하역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과 북한이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러시아는 광궤를 사용하고 있어 나진항까지의 철도를 광궤로 현대화한 이후 북-러 간 물류가 급증하는 추세다.
2015년 나진-하산의 물류 운송량은 전년에 비해 9.5배 증가했다. 2014년 11월엔 시베리아산 석탄 4만5000톤이 열차로 하산에서 나진항까지 운반된 뒤, 그 석탄이 배로 경북 포항까지 들어오기도 했다. 남북 관계가 막혀 있는 현 상황에서 원 유라시아의 엔진이 시동은 걸렸으나 활성화는 아직 안 되고 있다.
나진항에는 현재 사용 중인 부두가 3개 있다. 그중 1호 부두는 전용은 아니나 중국이 전용하다시피 사용하고 있고, 2호 부두는 북한이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는 2012년 북한과 50년 동안 3호 부두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계약을 체결한 이후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3호 부두는 수심이 낮아 2만 톤 이상의 선박 접안이 어려워 채산성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 한다. 우리가 전망대에 올라가 있는 동안 북-러를 왕래하는 기차가 두만강 철교를 건너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전망대에서 동해 쪽을 바라볼 때 철교 오른쪽, 즉 두만강과 접한 북한 쪽은 너른 들판이 한동안 쭉 뻗어 있었다. 멀리서도 나진까지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철로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고, 중간에 역사 같은 것도 보였다. 띄엄띄엄 보이는 가옥들 너머 산이 보였는데, 산 하나 넘으면 아오지이고, 또 그 뒤로는 나선특구라 한다. 아오지는 여진족 말로 '불붙는 돌', 즉 석탄이란 뜻이라고 한다. 아주 옛날 이곳이 여진족의 관할 구역이었다는 것을 지명에서도 알 수 있었다.
옌지(延吉)로 돌아오는 길에 2012년 갔던 량수이(凉水) 단교를 다시 들렀다. 모든 것은 변함없건만 국경 철조망이 보강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중국 측 철조망이 강변뿐 아니라 두만강과 연결되는 하천에까지 세워졌는데, 하천 중앙은 엉켜진 철조망으로 어지럽혀 있었다. 강과 하천을 따라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중국의 철저한 국경 감시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 보였다.
오늘 저녁은 북한 나진에서 사업을 하는 일본인 사업가와 만나기로 돼 있다. 그를 통해 북한 현지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저녁 시간이 기다려졌다. 고베(神戶) 출신의 일본인 사업가는 오늘 나진에서 옌지로 나오는 길이라 한다.
1995년부터 중국 옌지로 건너와 살다가 2000년부터 북한 나진에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중국의 취엔허(圈河)에서 북한의 원정을 거쳐 나진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취엔허에서 건너편 원정까지 29.5킬로미터, 원정에서 나진까지는 43킬로미터, 승용차로 40~5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는 현재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 북한과 일본을 잇는 중개사업을 하고 있다. 20년간 북한과 사업을 하는 동안 돈도 많이 떼이고, 그중 7~8년간은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뢰' 하나였다고 하는데, 첫인상이 무던해 보였다.
그가 북한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품목은 주로 수산물이다. 북한산 조개류, 문어, 오징어 등을 일본에 수출하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을 조달해 온다고 한다. 샴푸, 린스, 신발, 치약 등과 처방전 없이도 일본에서 살 수 있는 의약품 등을 북한에 가져 온다고 한다. 그리고 저가의 시계도 북한 주민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북한의 나선특별시가 북한의 다른 지역과는 아주 많이 다르겠지만 최근의 북한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먹을 것'이 아닌 생활용품이라는 것은 새로운 얘기였다.
농작물 작황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지난해와 올해 모두 농사는 잘되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볼 때, 현재 북한의 식량 형편이 아주 넉넉한 편은 못 되어도 굶지 않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현재 나선시에 상주하는 북한 인구는 17만 정도이고, 외부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상주 인구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 했다. 이 지역에 상주하는 외국인은, 하산과 나진을 잇는 철도 공사가 한창일 때는 러시아인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중국, 러시아, 미국. 홍콩, 일본의 국적 순으로, 몇 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미국인은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라 한다. 나진항의 1, 2, 3호 부두는 현재 사용 중이고, 4, 5호는 개발 계획만 있고 아직 착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인 사업가가 15년 동안 북한을 드나들었다고 하기에, 김정일 시대와 비교해 김정은 시대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어봤다. 나선시의 주민들은 김정은을 한마디로 평가하길, '젊지만 능력 있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김정은 시대 들어서면서 사업가들과 만나는 북한 관료들의 평균 나이가 많이 젊어졌는데, 이곳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 같다고도 말했다. 특히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새로운 공원과 놀이터가 조성되고, 거리도 많이 깨끗해졌고, 예전의 봤던 '꽃제비'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먹고사는 형편이 좋아져서 '꽃제비'가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외국인들이 많아 드나드는 곳이라 단속해서 '꽃제비'가 눈에 안 띠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선시가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도시이다 보니 '보여주기 위한' 측면에서도 도시가 정비된 듯하다.
그리고 나선시에 걸려있는 구호는 정치적 구호에서 경제와 관련된 구호들로 많이 바뀌고 있는 추세이고, 나진선봉에 진출한 중국인 사업가들이 그런 구호 입간판을 세워주고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변화된 실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보는 것을 끝으로 우리의 북-중 접경 답사는 마무리됐다. 이번 답사를 통해 지난 2012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찾은 접경 지역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북 교역이 사실상 막혀있는 현 상황에서도 북한의 대외 경제는 나름의 대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북한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북한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가 들어갈 자리를 남겨놓지 않았다. 좌고우면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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