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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가

[상지대 민주화 일기 ⑫]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상지대 풍경

2015년 9월 15일 화요일의 상지대 풍경. 오전 7시를 조금 넘겨 해뜨기 직전의 시간. 학생들 200여 명이 동악관으로 모여들었다.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학 학생회의 간부들이다. 어제 전체학생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수업거부를 결의하고 밤늦은 시간에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구체적인 실행방침을 정했는데, 그 결정사항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모인 것이다.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간부들은 물론 동악관에 학생회 사무실을 둔 각 학과의 학생들도 함께 모였다. 출입문과 복도에 수업거부를 알리는 홍보전단을 부착하고 현수막을 걸고 강의실의 책걸상을 복도로 들어냈다. 단 두 시간 만에 동악관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오전 8시 30분 출근시간. 학생회 간부 30여 명과 교수 5명이 대학 정문으로 갔다. 김문기 퇴진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정문 앞에서 홍보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간에 대학의 모든 직원과 조교들이 출근하고 1교시 수업이 있는 교수와 학생들이 출근하는 시간이므로 차량이 꼬리를 물고 분주하게 들어온다. 정문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대상으로 김문기 퇴진을 홍보하고 걸어서 들어오는 학생들과도 피켓으로 눈으로 서로 교감을 한다.

오후 1시. 학생들은 동악관 앞에서 수업거부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강의동 입구와 강의동 앞 도로를 가득 메운 학생들이 도로 맨바닥에 앉아 땡볕을 받으며 김문기 퇴진을 외친다. 학생들의 외침이 멀리서 상지대를 굽어보고 있는 치악산 정상에까지 울려 퍼질 듯하다. 상지대 역사가 새로 쓰일 것만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 상지대 학생결의대회에 참석한 학생들.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

이 시대 어느 대학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

2015년 9월 14일 월요일 오후 1시. 전체학생총회가 노천극장에서 시작되었다. 행사 1시간 전부터 학생들은 강의실과 본관 앞에서 전체학생총회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는 이 행사와 무관하게 김문기 퇴진과 이사회 해체를 촉구하는 교수들의 행사도 열렸다. 학교가 온통 김문기 문제로 충만하고 김문기 퇴진의 소리가 교정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시대 어느 대학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다.

12시 30분을 넘어서자 교정 여기저기서 노천극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대열이 이어졌다. 학과 깃발을 들고 대열을 이루어 참가하는 학과도 있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참가하는 학생도 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보려고 우산을 쓰거나 손자보를 든 학생도 있다. 노천극장 입구는 금세 학생들로 가득 찼다. 마치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을 보려고 몰려든 공연장의 풍경처럼 유쾌하고 발랄하다. 여기저기서 웃고 재잘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었고 아주 보기 좋았다. 주제는 무겁지만 몸놀림은 경쾌한 것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전체학생총회에 입장하는 학생들의 숫자를 세느라 입장이 지연되어 1시로 예정된 행사는 2시 가까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노천극장은 학생들로 한가득 메워졌다. 실로 오래간만에 노천극장이 꽉 찼다. 전종완 총학생회장이 경과보고를 했다. 지난주 전학대회에서 수업거부를 위한 전체학생총회를 결의했고 그 결의에 따라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이어서 안건을 상정하고 제안설명을 한 후에 토론을 거쳐 표결에 들어갔다.

2시 30분을 조금 지난 시간에 표결이 끝났다. 투표결과는 재석 1897명, 투표참여 1764명, 찬성 1268명, 반대 496명이었다. 총학생회에서 제안한 수업거부가 70% 이상 학생들의 압도적 지지로 가결되었다. 실제로 총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훨씬 많았지만 따가운 날씨에 입장이 지연되고 투표가 지연되면서 중간에 퇴장한 학생들도 있었다. 처음으로 실시한 전체학생총회에서 2000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의 숫자를 세고 찬반 투표자를 세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투표결과를 확인한 후 총학생회장은 △ 총장 이하 본부 보직 총사퇴, △ 구성원이 참여하는 대학구조개혁평가 진상조사위원회 설치, △ 구성원 부당 징계 즉각 철회, △ 상지학원 이사 전원 사퇴, △ 교육부 재감사 및 임시이사 파견 등 다섯 가지 과제를 수업거부의 5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이어서 이 요구사항이 완전히 관철되어 우리 대학이 정상화될 때까지 무기한 수업거부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매우 단호한 결의였고 매우 민주적인 결정과정이었다.

2015년 9월 10일 목요일 오후 4시. 세종시 교육부 청사에서 상지대 청문회가 열리던 그 시간 상지대 교정에서는 전체학생대표자들이 참가하는 전학대회가 열렸다. 전학대회는 총학생회장과 부회장, 각 단과대 학생회장과 부회장, 각 학과 학생회장과 학년별 과대표 등 모두가 선출직 학생대표로 구성된다. 전국적인 규모의 정당에서 운영하는 중앙위원회 수준의 의사결정기관이다. 2학기 개강 직후인 9월 3일에 한 차례 전학대회가 열렸지만 학기 초인 데다 일부 학과의 불참으로 성원미달 되어 무산되었다가 오늘 다시 열린 것이다. 안건은 수업거부를 위한 전체학생총회 개최 건이었다. 학생 대표 171명이 참석하여 찬성 145명, 반대 15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었다. 전체학생총회는 9월 14일 월요일에 개최하기로 했다.

2학기는 8월 31일 월요일에 개강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보름 후에 학생들은 수업거부를 결의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나는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학생 800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이 결정과정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다소 느린 듯하지만 학생들은 차분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집약해내고 있었다. 여기서 거론한 것은 전학대회와 전체학생총회지만 그 과정에 확대운영위원회를 열고 중앙운영위원회를 반복해서 개최했다. 여기서 논의된 안건들은 각 단과대학으로 전달되어 단과대학운영위원회를 거치고 다시 각 학과로 전달되어 학과 학생들의 의견을 집약하는 매우 복잡한 논의구조를 거친다.

국회에서도 보기 어려운 성숙한 민주주의의 과정

수업거부 결의와 무관하게 학생들이 보름 사이에 진행한 의사결정과정을 보면서 작지만 명백한 직접민주주의의 작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찬성하는 학생도 반대하는 학생도 모두 회의구조에 참여했다. 의견의 차이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있을지언정 서로 비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 광경은 현대 민주주의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체현하고 있는 정당이나 국회에서도 보기 어려운 성숙한 민주주의의 과정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학생들을 어리다고 말하거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지적인가? 학생들만큼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상지대는 1993년 김문기 퇴출 직전인 1992년에 한의학과 학생들이 무기한 수업거부를 결행한 적이 있다. 김문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김문기가 퇴출된 후 지난 20년 동안 수업거부가 없었다. 우리는 조그마한 수업결손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수업의 질을 최고도로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학생들은 2010년 1학기와 2014년 2학기에 수업을 거부했고 이번에 다시 수업거부를 결행했다. 최근 세 번의 수업거부는 모두 김문기 구재단의 복귀와 직접 관련된 것이다.

2010년 수업거부는 사분위 정상화 과정에서 사분위가 김문기 구재단 복귀를 강행하려고 하자 이에 저항하여 학생들이 기말시험까지 거부하면서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여름방학을 포함해서 석 달이나 계속되었다. 2014년 2학기 수업거부는 김문기가 총장에 선임되자 김문기 총장 선임을 반대하며 수업을 거부한 것이고 이번 수업거부는 김문기가 총장직에서 해임되었음에도 대학행정에 개입하며 구성원을 대량 징계하는 사태에 항의하여 김문기의 완전 퇴진을 목표로 결행한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상식적인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상지대에는 김문기가 있으면 수업거부가 일어나고 김문기가 없으면 수업이 잘 된다는 공식이다. 김문기가 상지대와 조화되지 못한다는 뜻이고 김문기와 학생들이 소통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학생들이 김문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며 김문기가 젊은 학생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돈이 많으면 무엇하나? 상지대의 모든 학생들이 김문기를 반대하는데. 1992년의 수업거부가 김문기의 퇴진을 촉발했던 것처럼 이번 수업거부 역시 김문기 퇴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왜 수업을 거부할까? 학생 아닌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학생들이 공짜로 수업듣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놀면서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학생들도 잘 알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점을 받아도 취직이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에서 수업을 거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런데도 학생들은 결연한 자세로 수업거부를 결정하고 실행한다.

대학은 학문과 연구를 통해서 진리를 탐구하는 도장이고 교육을 통해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동량을 양성하는 신성한 교육장이다. 그런데 학문과 연구가 억압되고 교육이 황폐화해지는 상황에서 대학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이 잘못된 대학운영을 바로잡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서는 것은 대학의 주체로서 의당 당연한 권리이자 책무이다. 대학에서 교수는 학원강사가 아니며 학생은 학원 수강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3일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교수와 학생을 대학운영의 주체로 판시한 바 있다.

상지대 학생들은 1974년 김문기가 상지대를 강제로 인수한 이후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투쟁해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형성했다. 그러다가 전두환의 광주학살 이후 조성된 공포정치 하에서 큰 시련을 겪었다. 특히 1986년 10월에 김문기가 자행한 용공조작 사건으로 150여 명의 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리는 고통을 감내했다. 이 사건은 상지대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껏 김문기는 사과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군사독재권력과 김문기 족벌재단의 탄압 속에서도 대학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았다. 때로는 잦아들고 때로는 분출하는 변동은 있었지만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마침내 대학 민주화를 쟁취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다. 대학 민주화 이후에는 대학의 당당한 주체로서 등록금 심의와 학생복지 증진 등 학생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학운영의 주체로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것은 상지대의 역사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상지대를 떠받치며 면면히 흐르는 상지대의 역사적 전통이요 정신이다. 오늘 학생들은 자신들의 혈관 깊숙이 흐르는 그 정신을 다시 깨워 일으켜 세운 것이다.

▲ 김문기 씨 때문에 상지대는 죽었다며 '제례'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상지대 학생들.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

누가 학생들을 수업거부로 내모는 것인가

학생들의 수업거부는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수업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권리이며 권력도 함부로 관여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최후의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무기한 수업거부에 나서는 이유는 학생들의 학습권이 김문기 구재단에 의해 전면적으로 침해되고 대학이 누란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판단하기 때문이다. 파국적인 상황에서 학생들은 대학의 주체로서 대학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유보하면서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자세로 대학 민주화의 길에 나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요즘 학생들은 집단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도 제한적이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데도 상지대 학생들이 수업거부라는 집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다시 물어야 하겠다. 누가 무엇이 학생들을 수업거부로 내모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김문기와 교육부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김문기의 책임을 거론하며 자성을 촉구하는 것은 이미 무망한 일이고 물 건너간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김문기의 교육적 성찰을 촉구하며 기대했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 생각건대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태공의 고사에서 유래된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김문기의 반성과 회개를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반성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 관할청인 교육부뿐이다. 교육부가 상지대 사태의 처음이자 끝인 것이다.

사학비리를 저질러 구속되어 학교에서 퇴출되고 실형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는 그를 다시 학교로 복귀시켜 전횡을 일삼도록 허용한 것은 교육부이며, 김문기가 과거보다 더욱 악랄한 방식으로 구성원을 탄압하며 대학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문기를 감싸고 비호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은 오직 교육부에 있다. 상지대 구성원들은 물론 국회와 언론과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상지대 사태의 해결을 연일 촉구해도 오매불망 수수방관한 것은 교육부이다. 교육부가 상지대 사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부가 책임져야 한다. 교육부는 김문기를 원망할 자격이 없다. 김문기의 뒤에 숨어서도 안 된다. 교육부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상지대 사태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학생들의 수업거부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역시 교육부이다. 교육기관의 본질적인 책무인 수업이 전면적으로 거부되는 이 상황에서 교육부가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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