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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박근령, 대만에는 리덩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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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에는 박근령, 대만에는 리덩후이!

[차이나 프리즘] 일본이 '조국'이었다는 대만 전직 총통의 고백

최근 리덩후이(李登輝·93) 전 대만 총통이 일본을 '조국'이라고 칭한 발언이 중국과 대만(타이완) 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일본의 극우 월간지 <보이스(Voice)>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형과 함께 일본군에 자원 입대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70년 전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대만인들은 실제로 일본인의 신분으로 조국을 위해 분투했다"고 말했다.

이에 현 대만 총통 마잉주(馬永九)는 "12년간이나 대만 총통을 지낸 인물이 어떻게 대만을 팔아넘기는 친일 발언을 할 수 있느냐"고 발끈했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 역시 이 발언을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 군국주의 침략을 옹호하며 인류의 도덕 가치에 도전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필자는 리덩후이 전 총통의 이 발언을 듣고 문득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이 떠올랐다. 필자는 대만 유학 시절에 리덩후이 전 총통을 직접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1988년에 장징궈(蔣經國) 총통이 병사했고 국민당은 부총통 리덩후이를 후임 총통 후보로 추대했다. 당시 리덩후이 후보는 총통 선출 대의기관인 국민회의대표(國民會議代表)를 일일이 찾아가 형식상 선거운동을 했다. 마침 필자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 국대(國大)가 몇 명 거주하고 있어서 선거운동 차 방문한 리덩후이 후보 일행을 따라다니며 구경하였다. 리덩후이 후보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군중에게 다가가 활짝 웃으며 일일이 악수를 청하였고, 인파 속의 나도 졸지에 일국의 최고 지도자와 악수하는 행운을 누렸다.

당시 잠깐 만난 리덩후이는 그야말로 '사람 참 좋은 사람(好好先生)'이라는 인상이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뒤를 따라다니며 "할아버지!(爺爺)"라고 연호했고, 리덩후이도 연신 "好, 好(좋아, 좋아)"라 응답하였다. 중국말 '好好先生'은 '사람이 참 좋다'는 뜻과 함께 '사람만 좋다'는 다소 폄하의 뜻도 있다. 필자는 당시 리덩후이의 '사람이 참 좋은' 일면만 보았고 '사람만 좋아 보이는' 일면은 간과했다.

중국말에 '안경을 깨뜨리다(跌破眼鏡)'라는 표현이 있다. 예상 밖의 결과를 두고 흔히 쓰는 말이다. 리덩후이가 의외의 다크호스로 장징궈 전 총통의 후계자가 된 것에 대해 대만 사회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984년 국민당 이중전회(二中全會)에서 부총통 후보를 지명해야 하는데 와병 중이던 장징궈 총통은 만사가 귀찮아 차일피일 인선을 미뤘다. 지명 마감일이 다 되어 총통부 비서실장이 후보 명단을 작성해 올렸는데, 마침 장징궈 총통이 화장실에 있다가 고향 저장(浙江) 사투리로 '你等一回儿(니덩이후얼, '좀 기다려요'라는 의미)'라고 하였다. 비서실장은 사투리 '니덩이후얼'를 '리덩훠이'로 잘못 알아듣고 그대로 대외에 공표했다. 장징궈 총통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엎지른 물이라 할 수 없이 추인하였다고 한다. 리덩훠이의 등장이 얼마나 예상 밖의 결과였는지를 풍자한 일화이다.

1988년 국대의 간접선거로 총통에 선출된 리덩훠이는 꾸준히 민주화를 추진하여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에 의해 '미스터 데모크라시(Mr. Democracy)'로 칭송받으며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렸다. 이렇게 평판이 좋았던 리덩후이는 1996년 직선제 총통에 당선된 이후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1999년 7월 <독일의 소리>와 인터뷰에서 중국과 대만 양안의 관계는 특수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라 규정한 '양국론(兩國論)'을 주장하며 '하나의 중국'을 견지하는 중국 대륙을 긴장시켰다. 1999년 임기 만료 1년 전에는 <대만의 주장(臺灣的主張)>이란 책을 출간하여 중국을 대만, 시장(西藏), 신장(新疆), 몽골, 화남(華南), 화북(華北), 화중(華中) 7개 지역으로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덩후이의 행보는 당연히 중국 대륙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불러왔고, 대만 국민당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그를 지지한 대만의 대륙 출신들은 예스맨이자 호인인 줄로만 알았던 '아후이보(阿輝伯, 대만인들은 그를 친근한 표시로 이렇게 부른다)'의 민낯이 드러나자 분노하고 후회했다.

리덩후이는 총통 퇴임 후에도 계속 대만 독립에 비중을 둔 발언을 터트려 뉴스의 중심에 섰다. 2001년 그가 대만단결동맹(臺灣團結同盟)을 결성하자 국민당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당적을 박탈하였다. 그렇지만 리덩후이의 거침없는 언행은 대만 본토인의 환영을 받았고 퇴임 후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民進黨)도 리덩후이 전 총통을 은근히 우군으로 반겼다.

하지만 이른바 '아후이본색(阿輝本色)', 즉 리덩후이의 정체성은 친(親)대만 독립 성향과 함께 친일(親日) 성향 또한 너무 선명한 것이 문제다. 리덩후이 전 총통의 젊은 시절 이력을 살펴보자. 1943년 대만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도일(渡日)하여 1944년 일본 육군예비사관을 졸업하였고, 1943년에서 1946년까지 일본 교토제국대학 농림경제과를 졸업했다. 또한 대학 재학 기간에 일본군에 자원입대하여 일본 육군 포병 소위로 전쟁에 참전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대만의 주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읽은 것은 일본 서적이며", "일본 서적은 나의 중요한 정신적 양식이다"라 고백하였다.

리덩후이의 일본 관련 어록을 살펴보면 확실히 일본의 식민사관(植民史觀)에 경도돼 있다. <대만의 주장>에서 그는 "일본은 대만 현대화의 계몽자"이므로 일본인은 대만을 식민통치한 사실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권고했다. 또한 그는 1997년 일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이 과거 중국을 침략한 역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중국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경향은 너무 지나치며", 침략전쟁에 관하여 중국에게 번번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중·일 양국의 분쟁거리인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구열도)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고유 영토라며 못 박았다. 2007년에는 야스쿠니신사를 방문, 그의 형인 리덩친(李登欽)을 참배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리덩후이가 일본을 조국이라 칭한 발언이 새삼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대만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필자로선 리덩후이의 발언이 많은 대만인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받아들였다. 대만인들은 우리처럼 반일 감정이 격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젊은이들은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택시를 타면 늙은 택시 기사는 일본 식민지 시절이 국민당 정권보다 나았다고 토로한다. 저항이 심했던 우리나라에 비해 대만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유화적이었던 식민통치에 대해 일종의 향수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민진당에서도 적지 않은 인사가 리덩후이의 이번 발언을 비호한다.

그런데 리덩후이의 친일 발언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물의를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 씨의 발언과 논조가 유사하다. 두 사람의 발언 모두 일본의 극우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동일하다. 패전 70주년을 전후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만행을 윤색하기에 여념이 없는 일본 우익의 조직적인 역사 지우기에 한국과 대만 양국의 두 명사가 철저히 이용을 당한 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적 비중을 감안할 때 리덩후이의 이번 친일 발언의 파장은 박근령 씨의 망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승전 70주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중국 당국에 딴죽을 걸 요량이었다면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리긴 했어도 일본을 조국이라고 운운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 정치적 감각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너무 고령이어서 노망이 난 모양이다. 오랫동안 그를 '사람 참 좋은 양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그래서 공자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강조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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