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남북 긴장 완화 국면에서 잇달아 외교안보 일정을 소화하며 '안보 행보'에 나서고 있다. 문 대표가 광복절을 맞아 제안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이어진 걸음이다.
문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역시 평화가 경제"라며 "남북합의의 가장 큰 성과는 앞으로 계속 대화하기로 한 것이다. 남북합의가 결렬되자 그동안 '중국 리스크'와 함께 '코리아 리스크'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폭락하던 증권시장이 폭락을 멈추고 반등했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이어 "이번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규모 있게 추진해야 한다"면서 "최소 1000명 이상을 목표로 북측과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줄 것을 통일부에 주문한다"고 했다. 그는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 중 절반이 상봉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이미 사망했다"며 "생존한 이산가족 중 70대 이상의 고령자가 80% 이상을 차지해, 생전에 단 한 번이라도 만남을 가지려면 내년 6600명 이상으로 상봉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이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문 대표는 또 "지자체와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 사업이 재개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계속될 남북대화의 1차적 목표는 남북이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선언 등 역대 남북 합의를 상호 존중하고 함께 실천하는데 두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합의가 매우 뜻깊지만 6.15, 10.4 선언이 도달했던 수준에 비하면 까마득하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같은날 오전 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박근혜 정부 전반기 통일·외교·안보정책 평가와 과제' 토론회와 당 '한반도 평화 안전보장 특별위원회(한반도특위)' 회의에도 잇달아 참석했다. 문 대표는 이날 오후에는 주한 미국·중국 대사와 연쇄 면담을 갖는다.
文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후한 점수 주기 어렵다"
토론회 축사에서 문 대표는 "분단 70년,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지만 시작은 남북관계"라며 "이번에 남북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표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번 사태는 우리의 분단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또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실감하게 해 줬다"고 지적하고 "이번 사태를 '경제 통일'로 나아가는 남북관계 대전화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문 대표는 지난 2년 반 동안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5.24 조치에 발목이 잡혔고, 정부의 통합적 위기관리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이고, 안보는 아슬아슬하다. '통일 대박'은 구체적 실행 방안 없이 구호로 그쳤다. 동북아에서 우리의 주도적 역할은 크게 위축됐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이제 유능한 안보, 능동적 외교, 전향적 남북관계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며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경제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다시 제안했다.
문 대표는 한반도특위 첫 회의에도 참석해, 전당대회 경쟁 상대였던 박지원 위원장을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당 안팎을 통틀어서 최적임자"라고 치켜세우면서 "우리에게는 민주정부 10년의 경험과 성과가 축적되어 있다"고 자부했다. 문 대표는 2007년 10.4 정상 선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고, 박지원 위원장은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특사로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문 대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교류와 협력으로 공동 번영의 길을 개척했던 열정과 노하우가 있다"며 "우리 당의 '안보'는 그저 평화를 지키는 안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안보, 우리 경제의 활로를 만들어내는 안보라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안보와 근본적 차이가 있고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위원장은 회의에서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 등 현안 논의를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도 조속히 열려야 한다"며 "이런 대화와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빠른 시일 내에 남북 정상도 만나야 한다"고 정상회담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민주정책硏 토론회, 박근혜 정부 대북·외교정책 해부…"2년 반 동안 뭐 했나?"
한편 이날 민주정책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 이종걸 원내대표는 "8.25 합의를 정략적 견지에서 해석하지 말고 민족적 관점에서 향후 국면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7년 만에 다시 열리는 대화의 계기를 평가하고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 통일장관을 비롯, 안보 라인들은 남북 소통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라며 "서로 교류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나아갔던 우리 당의 축적된 자산들을 모두 갖다 써도 저희는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유산을 강조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수훈 경남대 교수는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 수행 가운데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 후한 점수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며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말기 파탄지경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대결과 적대의 관계를 계속하고 있고, 그 결과 한반도에는 군사적 긴장이 한껏 고조돼 급기야 '준전시상태'라는 재앙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평화통일 기반 구축',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나열하며 "실로 화려한 정책 패키지"였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한미동맹 중심 외교정책보다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천적 면에서는 "모두가 무색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문제는 2년반 동안 한반도 비핵화에 아무 진전이 없었다는 성적표"라며 지난 2008년 12월 이래 여태까지 6자회담이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외교 무대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지만 그저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2년반 동안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을 혹평하며 "'공존'의 토대는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으로 무너졌고, '평화'는 최근 남북 간 군사적 충돌에서 보듯 실종됐다. '개발'은 5.24 조치에 막혀 전망조차 보이지 않고, '인권'은 정치화되어 대북 압박 카드나 국내정치용 담론으로만 활용될 뿐 북한 주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북한 사회 변화를 촉진할 수단으로는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외교정책 분야에 대해 "박근혜 정부 외교전략의 핵심 구상은 중국과 미국 간의 균형 외교"라며 "대미·대중관계에서 균형 외교를 통해 성공적 신뢰를 구축했는가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 역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다자 간 대화 프로세스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나, 다자안보와 양자동맹(한미동맹)을 결합하는 창의적 구상과 구체적 전략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하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실천적으로 잇는 전략이 보이지 않아 각각의 구상이 따로 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외교를 단지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에서 고려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며 "외교 순방 자체를 성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었고, 외교가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언론의 언술을 이용해 국내정치 위기 탈출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비판도 있어 왔다"는 면을 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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