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다리 위를 뛰어가라면서 넘어지지 말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
'일하다 다치면 절대 안 된다'면서도 열흘 안에 끝날 일을 닷새 만에 끝내라고 지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다. 하지만 그런 모순이 작업 현장에서는 일상화된 지 오래다. (☞관련기사 : 하청업체 '후려치기', 노동자 '목 조르기')
이는 '악한 자본가' 개인 문제는 아니다. 자본의 속성, 즉, 구조가 문제다. 자본의 속성은 '이윤의 극대화'가 핵심이다. 적은 노력과 재화를 들여 많은 이윤을 창출해내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그 이윤을 주주에게 나눠준다.
현대중공업 이야기를 해보자.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뤄지는 노동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착취는 재착취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게 '기성(톤당 단가) 후려치기‘다. 하청을 쥐어짜서 생기는 이윤을 대주주인 정몽준 씨에게 상납한다.
이러한 자본의 속성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노동자를 옥죈다. 임금체불은 기본이고 일하다 목숨까지 잃게 한다. '이윤의 극대화'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노동자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4년 13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무리한 공기 축소, 안전시설 미비 등으로 발생한 인재들이었다.
정부도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인지하고 있다. 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2014년 5월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2014년 3월 한 달 동안 3명의 노동자가 연속해서 죽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특별 감독 결과보고 내용 들여다보니…
<프레시안>이 입수한 '<현대중공업(주)>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 결과보고'를 보면 현대중공업은 여러 면에서 안전조치가 미비했다.
△작업장 조명등 미설치, 전기 차단기 작동중단, 크레인 훅 해지장치 미설치, 안전난간 미설치 등으로 추락·감전·충돌·낙하 등 재래형 재해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점 △ 원청 안전보건관리자가 업무를 전담해 수행하지 아니한 점 △현대중공업(275명) 및 협력업체 26개사 소속 노동자(511명) 특수건강진단 검사 항목이 누락된 점 △안전인증 및 안전검사를 받지 않은 고소작업대, 압력용기를 사용한 점 등이 적발됐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총 562건을 지적했고 이중 현대중공공업이 519건(92.4%), 협력업체가 40건(7.1%)을 차지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총 562건 중 안전상 조치 위반이 392건(69.6%), 위해위험기계기구 조치 위반 19건(3.4%), 보건상의 조치위반 20건(3.6%), 작업환경측정 및 건강진단 실시 의무 위반 37건(6.6%) 등이었다.
법 위반사항에 대한 조치기준은 사법처리부여가 376건, 작업중지 41건, 사용중지 18건, 과태료 92건(10억6082만 원), 시정명령 375건, 권고 80건이었다.
노동부 "안전 최우선의 경영철학 및 방침이 미흡하다"
부산지방노동청은 이 보고서에서 현대중공업의 안전보건시스템 운영 관련 '안전 최우선의 경영철학 및 방침이 미흡하다'며 몇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우선 최근 3년간(2011년~2013년) 재해율의 변화가 없음에도 2011년(263억451만 원) 대비 2013년(102억76만6000원) 안전투자 금액을 61%나 감소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에서는 2011년 143건, 2012년 188건, 2013년 180건의 재해가 있었다. 재해는 늘어났지만 안전 관련 투자금은 되레 줄어든 셈이다.
2013년 특별감독 때 지적된 위반 내용이 2014년 특별감독 때도 대부분 지적됐다는 것도 언급했다. 부산지방노동청은 이를 두고 "경영층의 안전 최우선 경영철학이 부족하다"며 "과거 위반된 사항은 재발하지 않도록 시설개선, 안전보육 강화, 법 위반자 엄중 처벌 등 최고 경영층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현장 안전 및 보건상 조치사항에 대해서 지원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업 전 분야의 작업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원‧하청 노동자가 혼재돼 작업하는 특성을 감안할 때, 원청인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지원은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
안전담당자(234명)의 산업안전 관련 자격증 취득률이 35%에 불과한 것도 지적 대상이었다. 부산지청은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임을 인지하고 안전담당자에 대한 교육훈련 강화로 안전담당자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노동부, 현대중공업에 아무런 압력 가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감독의 결과는 어땠을까. 당시 현대중공업은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총 3000억 원을 투입해 재해 위험요인과 예방대책들을 재점검·보완하기로 했다. 하청업체 안전전담요원도 200여 명 수준으로 기존보다 2배 이상 증원했다.
하지만 죽음은 끊이지 않았다. 노동부 특별감독 이후에도 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중 한 명은 노동부 특별감독 기간인 4월 28일에 사망했다. 트랜스포트 신호작업 중 바다로 추락했다. 안전펜스만 있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사실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한 노동부의 특별감독은 2014년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2011년부터 매해 특별감독을 실시했지만 문제를 바로잡지 못했다. 일례로 '2013년 특별근로감독 세부 위반 내용'을 보면 추락 방지조치 미실시, 안전난간 미설치 등 안전 관련 사항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노동부 특별감독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창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은 특별감독이 실효성없는 이유를 두고 "특별감독관이 조선소 현황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 지회장은 "실제 일하는 조건과 상황 등을 조사하려면 불시에 찾아가서 조사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며 "현대중공업 사측이 잘 정리해둔 곳만 둘러보고는 지적사항을 정리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특별감독 결과가 원청인 현대중공업을 압박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 지회장은 "외형적으로는 특별감독을 통해 규제를 가하는 것 같지만, 원청에서 책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노동부는 원청을 상대로 아무런 압력을 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 생명 지켜야 하는 정부, 하지만…
'생색내기'식 특별감독이 아닌 상시적 감독을 통해 산업재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은 지역별로 배치돼 있는데, 그 수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지역인 부산지방노동청에는 66명의 감독관이 있다.
이석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2014년 10월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부산청 산업안전감독관 1명 당 관리 사업장은 3988개이고 관리노동자는 3만5614명이나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348명의 감독관이 1인당 평균 4850개 사업장, 4만2364명의 노동자를 담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상시 감독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맞춤형 감시'를 주장했다. 박 실장은 "노동부 산업안전감독원은 적은 인원이 지역별로 배치돼 있다"며 "하지만 이는 효율적이지 못한 배치"라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지역이 아닌 업종별, 즉 조선, 자동차, 화학 등 전문성 중심으로 감독관을 배치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서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제재해야 산업재해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인력, 재정 문제 등을 언급하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건 속성이다. 그런 자본의 속성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후기 자본주의에 등장한 '큰 정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게 정부의, 즉 국가의 존재이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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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획 시리즈는 사단법인 '다른내일'준비위원회와 <프레시안>의 공동기획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별도의 책자와 영상제작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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