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의 모래 언덕(사구)이 있는 아르카숑을 출발해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되고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죽음으로 왕정이 종료된 역사의 현장인 베르사유 궁전을 안 가볼 수는 없었다.
절대왕정과 절대군주를 꿈꾸던 태양왕 루이14세는 아버지의 사냥터에 불과했던 시골 마을을 세계 최대의 궁궐과 정원으로 바꾼다. 무려 3만6000명의 인부와 6000마리의 말을 동원해서 24년 동안 증축을 통해 완성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단순한 사냥터를 거대한 인공호수와 1000여 개가 넘는 분수대, 자로 잰 듯 조각을 연상시키는 나무들로 장식한 정원. 400여 개가 넘는 방마다 천정과 벽 등에 각각의 테마를 담은 예술작품들을 새겨 넣은 곳.
그러나 당시 2000만 명에 달하던 프랑스의 평민들의 삶은 궁전의 규모와 반비례했다. 기근과 전염병, 전쟁과 노역 및 납세로 피폐했고 하루하루를 굶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시기다. 그럼에도 왜 루이 14세는 사치와 향락의 결정판인 거대궁전을 짓는데 수많은 재정을 소모하고 서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을까? 지금으로서는 그의 선택이 무모하게 생각되지만, 왕조가 몰락해가는 시점에서 왕권 강화를 통한 절대왕정의 상징인 거대궁전 건설은 어쩌면 그에게는 봉건왕조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왕실의 사치와 방탕은 루이 16세 때에 이르러 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며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되고 왕정이 무너지고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세계 최대의 규모와 예술작품을 자랑하는 베르사유 궁전!
태양계의 모습을 본 따 소우주를 만들고자 해서 붙여진 이름, 태양왕 루이 14세!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프랑스 시민들의 혁명을 군대로 진압하려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
당시 하루를 살기 힘든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지 못했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의 역사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시기의 상징물인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하자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 루이 14세의 동상이 보인다. 아이들에게 이 거대궁전과 프랑스 혁명에 대해 짤막하게 얘기를 해준다. 그 시대 이런 궁전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폐한 삶을 살았을지. 왕족과 귀족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치와 향락 그리고 어떤 비굴함을 택했는지.
이런 짧은 지식의 배경설명을 하며 걸어가는데 어째 조금 이상하다. 사람들도 거의 없고 성 안 쪽은 아주 조용하다. 문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베르사유 궁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오늘 하루 파업을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평소 같으면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냐며 투덜거렸을 게 뻔하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베르사유 궁전의 역사에 대해 공유하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절대권력인 군주의 목을 친 역사를 가진 국민들이기에, 바로 그 현장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은 이상하리만큼 당연해 보였다. 우리는 이 헛걸음을 '파업'이라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앞에 기꺼이 헌납했다.
다음날 다시 찾아간 베르사유 궁전. 그 명성에 걸맞게 엄청난 인파가 궁전을 찾았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부터 궁전을 한 바퀴 도는 것까지 사람을 따라 차례차례 발걸음을 맞춰야 할 만큼 빽빽했고, 궁전의 상징인 거울의 방에서는 인파로 후끈한 열기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산만한 상태로 궁전을 빠져나오자 한눈에 십자모양으로 뻗어있는 인공호수까지 직선로가 보인다. 그 옆으로 수많은 정원들이 있고 미로처럼 나무를 조성해놓았지만, 모두 인공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큰 나무 아래에서 쉴만한 곳을 찾기가 힘들다. 쏟아지는 땡볕에 벌써부터 정원 돌아보기를 포기하고 싶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며, 인공호수까지 직선로를 따라 내려가 본다. 돌아오는 길에 샛길로 빠져 들어가 보니 인공적인 냄새가 조금 덜 나는 자그마한 숲속도 있고 다람쥐도 기어 다닌다. 그렇게 허술하게 돌아다녀도 궁전을 빠져나올 때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 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마저도 힘겹다.
역사적 현장을 하루 다리품을 제대로 팔아서도 다 못보고 그렇게 돌아 나왔다.
유럽의 대표도시 프랑스 파리. 프랑스 파리에 대해서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수많은 문화와 예술이 함께 공존하는 곳. 에펠탑, 센 강,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몽마르트 언덕, 수많은 거리 여기저기에 공연, 전시, 연극 등 문화적 공간들로 가득하다. 프랑스 특유의 자유로움이 가미되어서 말이다.
에펠탑(La tour eiffe1). 파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에펠탑이 보인다. 특별히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에펠탑이 워낙 높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어느 곳에서도 우뚝 솟아 있는 에펠탑이 보인다.
'파리=에펠탑'이라고 할 만큼 여행 후 아이들에게 '파리에서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하고 물으면 여지없이 에펠탑이라고 말한다. 딱히 멋지다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냥 철 구조물이다. 생각보다 크다. 항상 사진에서 보던 에펠탑을 실제로 봐서일까? 두 팔을 벌려 심호흡을 한번 한다. 숨 쉬는 공기만으로도 행복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내려다 본 파리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앞에 있던 센 강은 그 운치를 한층 더해주었다.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들떠서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 입구는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있다. 루브르의 규모를 생각하면 며칠을 둘러봐도 부족할 테지만, 바쁜 여행객은 하루를 온전히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기에 야간까지 개장하는 날에 맞춰서 갔다.
우선 유명한 작품들을 위주로 동선을 짜고 지나가면서 다른 작품들도 함께 보기로 한다.
루브르의 대표작 <모나리자>.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다. 가까이 가서 또는 여유를 가지고 감상을 할 수가 없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가나의 결혼식>,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 그리고 합부라비 법전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에게 해의 섬에서 농부에 의해 발견된 23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밀로의 <비너스>다. 마치 당장이라도 입을 벌려 말을 할 것만 같은 얼굴과 봉긋한 가슴, 살결을 만지면 촉촉함과 부드러움으로 손이 미끄러질 것만 같다. 작자 미상의 이 작품은 완벽한 인간의 이상적인 몸매의 균형과 조화를 대비하여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과 함께 루브르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파리 거리를 걷는다. 서점도 들러보고, 길거리에 전시된 그림도 구경한다. 특이한 작품에 관심을 가지면 그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도 해준다. 그렇게 시내를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 왠지 모를 재미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파리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가온이 가람이가 여행 다니는 동안 박물관과 미술관 성당만 다닌다고 보통 성화가 아니다.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다면서.
우선 극장을 찾아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으로 극장을 검색해서 가까운 곳으로 갔다. 우리나라처럼 대형극장을 생각하고 한눈에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구석진 골목에 있는 소극장이다. 우리가 간 곳은 성인영화나 마니아층을 위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었다. 파리는 여기저기 조그마한 극장이 많은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볼 영화를 찾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물어본다. 얼추 두 블록쯤은 가야 번화가가 있고 그곳에 가면 큰 영화관이 있다고 알려준다.
알고 보니 영화관은 시네마이고 씨어터는 연극이나 오페라를 보는 극장인 듯하다. 대형극장을 찾아서 그때 잘나가는 <스파이더맨>을 예약했다. 영화를 예매하고 돌아다니는데 골목 소극장으로 보이는 곳에 백 미터 정도 줄을 서 있다. 아마도 꽤 인기 있는 연극이나 오페라인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아니라면 끈적한 성인영화나 인기 있는 이런 연극을 봐도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금강산도 식후경! 차라도 한잔 마시고 빵이라도 한 개 먹을까 싶은데, 카페 앞 테라스에서 한 여자가 담배를 끊임없이 펴대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간간히 숨 넘어 갈 듯 기침을 하는데, 피가 섞여 나온다. 혈색도 병색이 짙어 보인다. 삶에 대한 집착과 개인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각혈에도 담배와 커피를 놓지 못한다. 누구도 그녀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는다. 아마도 매일 그 자리에서 커피와 담배, 그리고 각혈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여성이 이상하리만큼 감정이입 된다. 예전에 읽었던 프랑스 소설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파리는 친절함, 따뜻함, 단정함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도시다. 산만함, 불쾌한 냄새,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해대는 수많은 자동차들, 건물 구석에 틈만 있으면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노숙자들.
하나도 안 빼고 모두 다 유럽 최대의 도시라고 보기 불편한 상황이다. 그런데 묘하게 그 불편한 상황이 도시와 딱 닮았다. 구태여 애써서 정돈하지 않는 그 상태 그대로 자연스러운.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로운 매력에 빠져드는 곳!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당장 파리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나는 건 그들의 자유로움이 어느새 나에게도 조금 이입되었나보다. 내가 여행 중 머물렀던 며칠로 그 모든 걸 느낄 수는 없지만 처음 느낀 곤혹스러움보다 자유로움이 두고두고 남는 나라가 프랑스이고 또 파리이다.
가온가람이 가족 세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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