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우리가 본 나라 중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멋진 나라다.
남쪽에는 투명하고 깨끗한 물빛을 가진 지중해가 있고, 서쪽에는 유럽 최대의 모래 언덕(사구)인 아르카숑(Archachon)의 필라 사구(Dune du Pilat)가 있으며 서북쪽에 대서양의 둥근 수평선과 파도가 만들어 놓은 코끼리 형상의 오묘한 바위들을 가진 에트라타(Etretat)가 있다.
지중해라는 말만으로도 설레는 곳. 에메랄드빛과 쪽빛의 그라데이션. 물밑의 자갈돌 하나까지 투명하게 투영해내며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던 그곳 지중해. '죽기 전에 단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 1,2위에 꼽히는 곳. 프랑스인들이 여름휴가철에 가장 많이 찾고, 유명 인들의 화려한 별장이 가장 많은 해안 지중해.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프랑스 남쪽에 지중해가 있다면 서쪽에는 대서양의 대양이 만들어 놓은 유럽 최대의 모래 언덕인 필라 사구와 깎아지른 절벽의 절경이 있는 에트라타가 있다. 결코 지중해에 뒤지지 않는 절경이다. 프랑스의 서쪽 해안으로 지금 저희와 함께 가 보실래요?
포르투갈을 지나 스페인의 빌바오를 거쳐 프랑스로 진입한다.
프랑스와 인접한 스페인 빌바오 북쪽 대서양 해안부터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은 감동에 감동을 더해간다. 대서양이 인접해있는 유럽 대륙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서 올라간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과 광대한 소나무 숲의 필라 사구
우리가 가는 곳은 필라 사구가 있는 서쪽 항구도시 아르카숑이다. 와인의 도시 보르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에 와서 보르도를 포기하고 아르카숑으로 향한 것은 순전히 모래 언덕 때문이다. 유럽 최대의 모래 언덕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 사구로 향한다.
차를 주차하고 드넓은 규모로 형성된 소나무 숲을 걷는다. 프랑스 아이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왔는지 삼삼오오 떼 지어 지나간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사춘기 애들의 특징은 똑같다. 수다스럽고 웃고 장난치고, 슬쩍 가온이를 살펴본다. 한국의 친구들이 그리운지 지나가는 애들의 특징을 낱낱이 얘기해준다.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학생들과 소나무 숲을 한참을 들어간다.
소나무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거대한 모래 언덕이 보인다.
줄잡아 100m쯤 되어 보인다. 저 위로 어떻게 올라가나? 다행히 계단이 놓여있다. 계단의 높이도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정상은 올라봐야지' 하며, 아이들을 채근한다. 처음엔 모래가 신발에 들어온다며 투덜거리며 조신하게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 100m가 넘는 모래 언덕 정상으로 오르자니 이것도 꽤나 힘이 든다.
정상에 오르니 거대한 모래 언덕의 실체가 드러난다. 필라 사구의 길이는 약 3km, 넓이는 약 500m, 높이는 약 100m정도! 광대하다. 그것도 유럽의 서쪽 해안에 이런 대단한 모래 언덕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사구 위는 바람이 거세다. 이 거대한 모래 언덕을 만들어 놓고도, 매년 몇m씩 소나무 숲을 잠식해 들어간다니 잔잔한 바람으로 해낼 일은 아니다.
우리는 수천수만 개의 물결 문양을 저 먼 곳까지 펼쳐놓은 필라 사구의 거센 바람에 서 있다.
한편으로는 대서양의 얕은 바다가 멀리까지 모래사장을 만들고 비취빛 바다 사이로 모래섬이 한두 개씩 솟아 있어서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제목의 사진으로 어디에나 걸려있을 것 같은 그런 바다에서 사람들은 요트를 즐긴다.
또 한편은 출렁이는 광대한 소나무 숲이 버티고 있다. 마치 모래 언덕 정상에서 저 밑으로 뛰어내리면 아이들이 노는 방방의 용수철처럼 저 아래 소나무 숲이 우리를 하늘 위로 날려 보낼 것처럼 탄력 있게 버티고 있다. 그 소나무 숲의 나무들이 아니면 이렇게 높고 광활한 사구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최대 사구와 광활한 소나무 숲! 그들을 모두 감싸 안고 있는 대서양의 비취빛 바다. 그 모래 언덕에 한참을 누워있다. 좋다.
저 멀리 모래 언덕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 사구 끝까지 걸어가 볼 요량인가 보다. 나도 마음은 이미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몇 걸음 걸어본 것 가지고도 아이들이 부르며 빨리 오라고 소리친다. 현실로 복귀!
이렇게 감상에 빠져 있던 필라 사구를 내려오는 길은 마치 놀이공원의 놀이기구 같다.
모래 언덕 위로 올라서 모든 사람들이 아래쪽으로 누가 먼저 달려내려 가는지를 시합한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내려가지만, 어른들은 겁에 질려 속도를 못 낸다. 이 맛에 한번 빠지면 다시 오르는 길이 힘들어도 또 올라가게 된다. 가람이는 엄마아빠를 번갈아 데리고서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고도 성에 안차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큰 아이 가온이는 즐겁지 않다. 멋진 경치와 신나는 놀이기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제공하는 곳인데도, 모래가 싫다. 모래가 신발에 들어오는 것도, 옷에 묻는 것도 싫다. 얼굴을 강타해대는 바람을 맞으면서 왜 안 내려가고 저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없애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려올 때도 단번에 내려와서 소나무 숲 그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가온이는 여행을 즐기고 있는 걸까.
"여행을 왜 떠나왔을까?"
여행을 하다보면 간간이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 한국 말소리에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이제 여행도 두어 달이 지나서 그런지, 복장이 편해보여서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 가족 모두 다녀서 그런지 가끔은 우리가 현지에 사는 교민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모두 함께 가족여행 중이라며 몇 달 되었다고 하면 모두 깜짝 놀란다. 사실 누구든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우리가 몇 달째 아이들과 함께 여행 중이다! 1년간 여행을 계획하고 다니는 중이다'라고 하면,
여지없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아이들 학교는?"이다. 그 다음엔 "직장은?"이다.
우린 "학교도 쉬고 직장도 쉬고 일 년 간 아이들과 세계 속으로 튀어보기로 했다"고 하면, 그 다음 반응도 다 똑같다.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한다. "우와, 너무 좋겠다. 너희들 부모 진짜 잘 만났다. 그 나이에 이런 경험을 다하니까 너흰 참 좋겠다"며, "좋지?"라고 반문도 한다. 사실 우린 별로 할 말이 없다. 세상 구경은 너무 좋지만, 여행을 완전히 즐기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반신반의한다.
간혹 우리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여행을 왜 떠나왔을까?"
명목 상의 이유는 10가지도 더 나열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답답함'이 아니었을까? 겉으로 보기엔 무엇 하나 구속하고 있지 않지만, 사회라는 굴레에 갇혀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느낌. 매일 매일이 수용소의 죄수들처럼 정해진 길로 이동해서 밥 먹고 일하고 잠자리로 향하는 그런 느낌. 이대로 살 순 없다. 다른 길로 나가봐야 한다. 막연하게 이런 생각으로 무작정 여행을 출발했다.
어른들이야 뭐라도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아이들은 성년도 아니고 엄마, 아빠의 결정에 따라 움직였으니, 자신들의 자유의지는 아니다. "이게 뭐야"하며 외롭고 우울하기도 할 것이다. 큰애는 한참 사춘기에 친구들과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수다 떨고 부모 흉도 좀 보고 하며 자신들의 자아를 찾아가야 할 텐데 '가족에게 1년을 잡혀있다니'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말이다. 둘째 가람이는 마냥 좋다. 학원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인생이랄까!
현재는 가족들과 1년을 함께 지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불편하고 싸우고 다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소해 나가는지? 언어도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르고 사람들의 생각도 다른 낯선 곳에서 매일 매일 새롭게 닥치는 상황들을 어떻게 지나가는 지? 이런 모습들만 보게 될 것이다. 말이 좋아 '헤쳐나가고', '해소하고'이지 사실은 '견뎌내는' 것이다.
정작 여행을 떠나올 때는 떠나기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일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두어 달 여행을 하면서 언어적 한계도 많이 부딪히고, 문화적 차이도 실감하고, 가족이라지만 서로 한마음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각각의 인격체임을 체감하며 그렇게 여정을 지나가고 있다. 아직은 여행이 즐거움인지 고생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말처럼 '진짜 부모를 잘 만난 건지', '무모하기 그지없는 부모를 만난 건지' 말이다. 지금은 여행의 출발점에서 좌충우돌하며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언제쯤 진짜 여행임을 실감하게 될까.
- 가온가람이 가족 세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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