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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젊은 예술가들, '복수'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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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젊은 예술가들, '복수'를 꿈꾸다

[함께 사는 돈 탐방기] 대한민국 청년예술가들은 뭘 먹고 사나?

지리산 산내면에서 함양을 거쳐 부산으로 갔다. 목적지는 장전동. 대안문화행동 ‘재미난 복수’가 운영하는 레지던시 겸 게스트하우스 비하우스(Bhouse)에서 '재미난 복수'와 문화행동연대 활동가들과 만나 부산 지역 예술인들의 생활과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시간이 남아 부산대학교 앞길을 둘러보았다. 짧은 인상으로 신촌과 대학로가 반쯤 섞여 있는 느낌이라고 했더니 동행했던 부산 출신 친구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설렁설렁 걸어서 도착한 비하우스는 구석구석 바람이 아주 잘 들 것 같은 하얀 색의 오래된 양옥이었다.

예술가의 밥벌이와 문화행동연대

자리에는 밴드 더 브록스(The Brokes), 비나인(B9)의 멤버들, 김건우 '재미난복수' 사무국장과 활동가들, 문화행동연대에서 활동하며 공예, 음악 작업 등을 하는 김혜린 기획자 등이 참석했다. 문화행동연대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로 지난해 만들어졌다. 십 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재미난복수'와는 공간도 같이 쓰고 구성원도 많이 겹친다. 이렇게 따로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은 행사 때만 만나는 문화예술인들과 본업 외의 시간에 모여서 공부 좀 해보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실험에 참여하고, 사회 이슈들에 연대해왔지만 막상 예술가로서 자신들의 밥벌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모순을 느꼈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들어보았다. 더 브록스는 이십 대 중후반의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다. 한 분은 밴드 활동을 하면서 야간에 맥도날드 배달 일을 한다고 했다. 애초에 돈을 벌 목적으로 밴드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먹고사는 문제는 별개로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밴드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안정적인 공기업에 들어가려는 친구도 있고, 법무사 자격증을 따려는 친구도 있다고 한다. 악기를 가르쳐주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음악 작업과 연결된 일거리는 없느냐고 물으니 많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인디밴드들이 활동하는 씬이 부산대 앞, 서면, 광안리 등에 있었지만, 춤추는 클럽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라이브클럽 문화는 좀 시들해진 것도 활동의 어려움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도 지역 레이블도 만들고 이런 모임도 지속해나가며 씬을 엮고 유지해나가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시장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 외에는 서울에서도 익히 듣는 문제상황과 비슷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예술계 내부의 시장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보니 당연히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 김혜린 기획자는 일찍이 기본소득에 흥미를 느껴 공부모임을 만들고 지역 언론에 예술가를 위한 기본소득에 대한 투고도 했다. 지난해 열린 '기본소득 시나리오 공모전'에 선정되기도 했다.

▲ '재미난복수', 문화행동연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들. ⓒ하영문

예술인긴급복지지원과 기본소득

고(故)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예술가의 생계 문제를 이슈화시키면서 예술인복지재단이 구성되고 예술가들을 위한 복지제도가 만들어졌지만 김혜린 기획자가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 매해 이름을 바꾸는 이 지원제도는 일종의 실업급여 형태로 최소 3개월 최대 8개월까지 100만 원씩 지급하는데, 이를 받기 위해서는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한다. 활동증명의 핵심은 '예술활동을 통해 어떤 공신력 있는 단체나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돈을 벌었다는 것의 증명'이다. 그러다 보니 막상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 만한 사람들에게는 돈이 안 돌아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오히려 취미로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배우시는 분들이 전시경력 가지고 받는 경우는 봤어요. 물론 그것도 예술 작업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물론 지급대상이 될 경우 창작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선별기준이 타당하고 효율적인지, 더 나아가 정당한지는 따져 볼 일이다.

전방위적 대안문화행동, '재미난복수'

정체불명의 이름을 가진 '재미난복수'는 2003년부터 결성되어 전방위적인 문화적 활동을 하는 곳이다. 부산지역 서브 컬처 축제인 제로 페스티벌을 비롯해 탈핵, 최저임금 인상, 해고 노동자 복직투쟁, 세월호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맞춰 퍼포먼스와 축제를 기획해왔다. 그 외에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 관공서나 문화재단에서 하는 공모사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무대도 설치하고 음향도 보고 축제컨설팅으로 돈을 번다. 듣다 보니 지역에서 어떤 자리를 만드는 일에는 도가 튼 것 같았다. 해외의 친구들과 네트워크도 한다. 필리핀 빈민가에 들어가서 교육운동, 에너지 자립 사업 같은 현장 문제부터 해결하는 이들도 있고, 일본에서 지역 활동하는 반 빈곤 활동가들과도 교류한다. '재미난복수'처럼 지역의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공통의 주제를 가진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하는 구상이 있다고 한다.

김건우 사무국장은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활동 초기에는 부산대학교 내 공간을 점거하여 사용하기도 했는데, 후에 250평 정도 되는 아지트(AGIT)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운영했지만 철거당했다. 김 사무국장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럴 줄 알고 거점이 될 만한 공간을 미리 여러 곳 만들어 두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공간 중에는 목공소도 있고 카페도 있는데 들어간 지 일 년 사이에 임대료가 몇 배가 뛰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 들어오니까 집주인들 기대심리가 생기면서 돈 있는 사람들이 공간을 미리 사서 묶어둔다"는 익숙한 기승전이었다.

지역의 자생적 공간들 해치는 정부지원정책

도전은 임대업자들로부터만 받는 게 아니다. 정부도 라이벌이다. 부산은 청년 이탈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문제는 일자리다. 주변의 산업도시나 서울로 많이 떠난다. 부산시에서는 이 문제를 젊음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으로 풀어내려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문화지원정책들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화지원이 기존의 자생적인 지역 단체에 공간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활동을 참고해서 정부기관 산하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운영은 위탁을 맡기는 방식이라고 한다. 지역에서 시민들이 오랫동안 활동하며 만든 인프라를 무시하고 콘텐츠를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작업 공간은 시설도 좋고 정부지원을 받아 값도 싸다. 기존 공간들은 오히려 경쟁에서 지거나 흡수당하는 방식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해 정부에서 민간 사이트인 인디스트릿(☞바로가기 : 인디스트릿)을 모방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정부의 관점에서 관리의 용이함과 양적 성과 위주로 기획되는 정책들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말로 건강한 지역문화생태계 형성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행정비용을 감당하면서 위에서 아래로 자원을 전달할 게 아니라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인 기존 조직에 자원을 지원해야 할 일이다.

마치며

이날의 만남에 도움을 준 음악가 단편선은 '재미난복수'를 소개하며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 젊은곳"이라고 설명했었다. 나는 대충 그 '젊음'을 어떤 활기나 자율적인 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직접 만나보니 물론 그런 분위기도 느껴졌지만, 말을 조금 바꾸자면 그야말로 '연륜 있는 젊음'같은 것이 있었다. 퇴행에 대한 두려움 없이, 조직의 역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그간 쌓아온 역량을 기반으로, '제로'에서 시작하자고 몇 번이든 말할 자신이 있는 경력 12년 차 젊음이랄까.

자주 마주하는 무기력을 짊어진 젊음과는 무척 달라 낯설었다. 전국투어의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는 이처럼 동시대의 낯선 이들과 만나 기본소득이라는 같은 바람에 대한 공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근처 시장골목으로 이어진 이 날 만남에서 우리는 조만간의 재미있는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함께 사는 돈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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