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한국인 유격수 강정호와 포스팅비 포함 4년 1600만 달러(약 186억 원)에 계약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계약은 모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미국 현지뿐 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KBO 리그 출신 야수 중 첫 진출 사례였기 때문이다.
강정호는 2014시즌 타율 .356 40홈런 117타점 OPS 1.198로 KBO 리그 역사상 첫 유격수 40홈런 타자이자 OPS 전체 1위를 차지했으나, 2014시즌이 유례 없는 타고투저의 시대라는 점은 강정호의 성공을 마냥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게다가 유격수 조디 머서, 3루수 조시 해리슨, 2루수 닐 워커가 버티는 강력한 내야진을 갖춘 피츠버그에 진출한다는 점 때문에 강정호가 충분한 기회를 잡기 힘들 거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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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5시즌의 반환점을 돈 지금 시점에서 강정호는 피츠버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된 지 오래다. 강정호의 활약은 부상을 입은 지난 시즌 주전 3루수 조시 해리슨, 주전 유격수 조디 머서의 공백을 메우는데 그치지 않았다. 강정호의 fWAR(팬그래프에서 제공하는 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는 2.7로 '해적 선장' 앤드류 매커친에 이어 팀 내 야수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2015시즌 메이저리그의 한 팀이 1승을 거두기 위해 지출하는 금액은 약 800만 달러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강정호는 현재까지 팀에 2.7승을 기여했으므로 2160만 달러의 몸값을 해낸 셈이다. 한마디로 피츠버그는 이미 투자한 것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 피츠버그의 '모험적 투자'는 대성공을 거뒀다.
심지어 강정호의 기여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7월에는 타율 .379 3홈런 9타점 OPS 1.064로 내셔널리그 이달의 신인상마저 받았다. 7월 타율 .379과 OPS 1.064는 각각 MLB 전체에서 7위에 오르는 성적이었으며, 강정호는 1927년 이후 피츠버그 타자 중 가장 높은 월간 타율, 가장 많은 월간 장타(13개)를 기록한 타자가 됐다.
1. 성공의 비결은 패스트볼의 공략
강정호의 성적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패스트볼 상대 타율이다. 강정호는 MLB에 진출하면서 KBO 리그 시절보다 훨씬 더 빠르고, 무브먼트가 심한 패스트볼을 상대하게 됐다. 하지만 강정호에게 패스트볼 구속은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세부 성적을 살펴보면 강정호는 오히려 빠르면 빠른 공일수록 더 손쉽게 느껴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강정호의 구질별 성적
포심 98타수 .398 4홈런
싱커 62타수 .274 0홈런
커터 20타수 .200 1홈런
슬라 55타수 .236 2홈런
커브 14타수 .286 1홈런
체인 33타수 .182 0홈런
스플 02타수 .500 0홈런
출처: 브룩스베이스볼
강정호는 모든 구질 중 가장 빠른 포심 패스트볼을 상대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게다가 MLB.com의 기자 마이크 페트리엘로의 자료를 보면 8월 4일까지 95마일(152.9 km/h) 이상의 패스트볼을 30번 이상 상대한 96명의 MLB 타자 중 강정호가 .485의 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기록은 강정호의 진출 초기, 타격 전 레그킥 동작이 크기 때문에 MLB의 강속구 투수들을 상대로 고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던 스카우트들의 평가를 무색하게 한다. 그러나 스카우트의 안목을 비웃을 일은 아니다. 단지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맞게 '진화'했을 뿐이다.
강정호는 KBO 리그 시절부터 볼카운트에 따라, 상대 투수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레그킥 동작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때로는 생략했다. MLB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올해 초 MLB에 처음 발을 내디딜 당시에는 2스트라이크 이후 레그킥을 생략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MLB 투수들의 구질에 서서히 적응함에 따라 레그킥 동작의 횟수를 늘려갔다. 아래는 지난해 11월 4일 KBO 리그에서 홈런을 치는 장면(좌)과 올해 8월 2일 강정호가 시즌 8호 홈런을 쳐내는 장면(우)이다.
KBO 리그 시절 레그킥과 현재의 레그킥을 비교해보자.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강정호는 KBO 리그 시절보다 레그킥 시 무릎의 높이를 낮췄다. 또한 KBO 리그 시절에는 왼발 끝이 홈플레이트 상단에 닿을 정도로 앞으로 뻗었었지만, MLB에서는 왼발을 덜 뻗는다. MLB 투수들의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레그킥 동작을 줄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게 중심이 상대적으로 뒤쪽에 남아 있게 되기 때문에 홈플레이트 근처에서의 급격한 변화에도 대응하기 용이해진다.
이런 타격폼의 변화에 더해, MLB 투수들의 공을 상대하는 경험이 쌓이며 강정호는 시즌 초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받던 구질에도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바로 '변형 패스트볼'이다.
강정호의 싱커(투심) 타율 변화
4월까지 타율 0.143
5월까지 타율 0.154
6월까지 타율 0.195
7월까지 타율 0.283
출처: 브룩스베이스볼
강정호는 시즌 초반 MLB 투수들의 빠르면서도 변화무쌍한 싱커(투심 패스트볼)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7월 한 달간 싱커를 상대로 타율 .474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포심 패스트볼 상대 타율 .460보다 앞선 것이었다. 이제 강정호는 선배 추신수의 전성기 못지않게 모든 패스트볼을 잘 치는 타자가 됐다.
2. 강정호, 신인왕 가능할까
현재 내셔널리그 신인왕 레이스는 예측하기 어려운 혼전 양상이다. 시즌 초반 앞서나가던 작 피더슨(LAD, 타율.223 21홈런 43타점), 크리스 브라이언트(CHC, 타율.246 14홈런 61타점)가 동반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신인왕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맷 더피(SFG, 타율.301 9홈런 48타점)와 랜달 그리척(STL, 타율.288 12홈런 38타점)이 꾸준히 활약하는 가운데, 최근 신인왕 후보로 급부상하는 선수들이 바로 노아 신더가드(NYM, 6승5패 ERA 2.66)와 강정호다. 강정호는 7월 맹활약으로 '내셔널리그 이달의 신인상'을 수상했을뿐만 아니라, 타율.294 8홈런 35타점으로 경쟁자들 못지않은 시즌 성적을 기록 중이다.
게다가 외야수, 3루수인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수비기여도가 높은 유격수로 출전하고 있다는 것 역시 높게 평가받을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최근 다른 리그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은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지 않는 이상 신인왕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것.
2014시즌 아메리칸리그에서 쿠바출신 호세 어브레유(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받았던 이유는 어브레유의 성적(타율.317 36홈런 107타점)이 다른 경쟁자 모두를 압도할 정도로 엄청났었기 때문이었다. 강정호 역시 '보이지 않는 벽'을 깨고 신인왕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7월의 '가장 뜨거웠던 신인' 강정호가 과연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할 수 있을까. 강정호에게 메이저리그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뉴스 & 루머
애드리안 벨트레, 통산 3번째 사이클링 히트
텍사스 레인저스의 주전 3루수 애드리안 벨트레가 4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3번째 사이클링 히트(hits for the cycle)를 달성했다. 1회 첫 타석에서 2타점 3루타를 쳐낸 벨트레는 2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1타점 2루타를, 세 번째 타석에서 1루타를 기록했다. 이어지는 네 번째 타석에서는 마침내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벨트레의 사이클링 히트는 구단 역사상 9번째이자, 이번 시즌 들어 2번째(7월22일 추신수) 기록이다. 이날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벨트레의 시즌 성적은 .270 .312 .417(타/출/장) 9홈런 30타점이 됐다.
프라이스, 데뷔전서 8이닝 1실점 호투
얼마전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한 데이비드 프라이스가 데뷔전에서 8이닝 무실점 11탈삼진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그의 데뷔전은 쏟아졌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히 4회초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이후 8회까지 15타자를 연속으로 돌려세운 것이 인상적이었다. 프라이스가 타자를 아웃 처리할 때마다 로저스센터를 가득 메운 관중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프라이스의 호투와 라이언 고인스, 조시 도날드슨의 홈런포에 힘입어 경기는 5-1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승리로 끝났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 뉴욕 양키스와의 승차는 5.5경기차로 줄었다.
세스페데스, 한 경기 2루타 3방
뉴욕 메츠의 외야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는 4일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이날 기록한 3개의 안타는 모두 2루타로, 그중 2개는 말린스파크의 담장 상단을 맞추는 커다란 타구였다. 세스페데스는 뉴욕 메츠에 합류한 이후 8타석에서 단 1개의 단타만을 기록했을 뿐이었으나, 4일 경기에서는 3개의 장타를 몰아쳤다. 한편, 메츠의 외야 유망주 마이클 콘포토는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쳐냈다. 세스페데스의 활약에 힘입어 경기는 12-1 뉴욕 메츠의 완승으로 끝났다. 워싱턴 내셔널스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6-4로 패하면서 뉴욕 메츠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단독 1위에 올랐다.
# 이동 & 부상 & 복귀
랜스 맥컬러스 마이너행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4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0.1이닝 6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졌던 신인 선발 랜스 맥컬러스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다. 맥컬러스는 마이너리그에 있는 동안 휴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맥컬러스는 2012시즌 드래프트된 이래로 한 시즌 105이닝 이상 던져본 적이 없다. 따라서 4일 있었던 '대참사'는 피로누적 때문에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크다. <휴스턴 크로니클>의 기자 호세 오티즈는 맥컬러스가 약 10일 뒤 복귀할 것으로 내다봤다. 맥컬러스는 이날 경기 전까지 13경기에 등판해 76.1이닝 평균자책점 2.48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제이슨 킵니스 어깨 부상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올스타 2루수 제이슨 킵니스가 오른쪽 어깨 염증으로 15일 부상자 명단(DL)에 올랐다. 킵니스(.326 6홈런 39타점)는 132안타로 아메리칸리그 최다 안타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트리플A 콜럼버스에서 내야수 호세 라미네즈를 콜업했다. 또한 좌완 구원 투수 마이클 로스를 마이너리그로 보내는 대신, 같은 좌완 구원 투수 카일 크라켓을 콜업했다.
안드렐톤 시몬스, 엄지 타박상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주전 유격수 안드렐톤 시몬스의 부상은 MRI(자기 공명 영상) 결과 오른손 엄지 타박상으로 밝혀졌다. 그는 지난 2일 경기에서 다이빙 캐치 도중 부상을 입었다. 시몬스의 통증은 4일 더 심해졌지만, 부상자 명단에 등재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자료 출처 : MLB.com, Fangraphs.com, Brooksbaseba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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