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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인의 친자 확인 소송 이유도…

[복지국가 SOCIETY] 양육비 이행관리원을 통해 본 여성의 삶과 복지국가

2년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고문을 맡으셨던 박영숙 총재에 대한 감사와 평생을 여성의 인권 향상과 양성평등 운동에 헌신하신 총재의 뜻을 이어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몇 년째 한국여성재단의 건강지원 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위원회는 심사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 전문가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전문가와 여성 활동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는 '한 부모 여성 가장'에 대한 건강지원사업이나 여성 활동가 암 치료를 위한 최명숙 기금 지원 사업, 빈곤으로 질병이 있어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여성 가장 및 자녀를 지원하는 "엄마에게 희망을"이라는 이름의 의료비 지원 사업에 참가하여 매달 신청된 건들에 대한 심사를 하고 있다.

박영숙 총재와 대한민국 여성의 삶

의료비 지원에 대한 심사는 이것이 신청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인지, 또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신청된 의료비가 적정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기부해 주신 분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재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해진 금액 내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소 냉정하게 심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직업이 의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심사의 후유증이 더러 생긴다. 오랫동안 진료에 종사한 의사라면 통상적으로 환자의 병명이나 치료 계획서만 봐도 그 환자의 상황이나 고통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특히 심사의 필수 서류로 제출된 가족관계나 기초생활급여 수급 여부 등 사회경제적 상태를 증명하는 서류를 살펴보면 지원 대상자의 살아온 삶이 눈에 선한 경우가 많다.

다들 왜 이렇게 어렵게 살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지내야 하는지 답답해진다. 마치 공포영화를 본 듯, 그 후유증은 상당히 오랫동안 가슴을 짓누르게 된다. 그렇게 생긴 답답함을 극복하는 길은 내가 먼저 나서서 새로운 후원자를 찾거나 다른 쪽에서 의료비 지원 기금을 더 받아와서 사업의 규모를 늘리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받도록 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그만큼 심사의 부담도 줄어든다. 특히 올해부터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에서 이런 사업의 취지에 동의하여 전체 치료비의 절반을 '재능 기부' 형태로 처리해 주기로 해서 같은 기금으로 두 배나 더 많은 분들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한편, 이 일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과정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가 된다. 어느 나라나 취약계층의 삶은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 어려움은 남녀를 불문하고 찾아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같은 처지의 남성보다 유독 더 어려운 삶을 강요당하는 것 같다. 남성에 의한 여성 착취라는 상황만 보면 "내부 식민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불평등의 질곡이 심각하다. 그런 점에서 여성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박영숙 총재님의 경우는 여성의 문제를 호주제 폐지 등의 양성평등과 가부장제 극복을 넘어 여성의 삶 전반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하신 것만 봐도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간통죄 폐지와 여성의 삶

지난 2월 헌법재판소에서는 형법 제241조의 간통죄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 동안 4차례나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법재판소에서 이번에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판시한 이유는 급격한 사회상의 변화로 간통죄 폐지가 가져올 혼인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에 대한 우려보다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번 합헌 결정이 있은 다음날(2008년 10월 31일)부터 지금까지 6년여의 기간 동안 판결된 간통죄는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간통죄로 피소되어 수사 중인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해서도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지며, 현재 소송 중인 재판들이나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건들도 재심이나 상고를 통해 무죄로 판결을 받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간통죄 폐지를 넘어 동성결혼이 수정헌법 14조의 결혼 평등권에 따라 합헌이라고 판단한 연방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 판결의 배후에는 지난 20년 동안 개발된 법 논리와 함께 36개 주에서 이미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고, 미국인의 60%가 찬성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동성결혼 가정의 자녀에 대한 차별 해소와 교육권 보장, 동성결혼 부부의 사회보장 급여 보장과 세금감면 혜택, 동성결혼 배우자의 연방 공무원 건강보험 혜택 등으로 실질적 삶의 보장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간통죄 폐지 여부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인 '이혼에 따른 여성과 자녀의 삶'은 여전히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제도적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있는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경제적 권한이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고, 전통적 가정의 경제적 단위가 남성 1인 생계부양자 가구를 전제로 한 사회구조로 짜여 있다. 그래서 이혼의 의미는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더불어 현실 생활에서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진다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의 등기는 통상 가장인 남편이 하는 것이 일상적이고, 호주제의 폐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산 상속은 아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반이 비정규직이고,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들 중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통계는 경제권을 가진 남편과 이혼한 여성의 삶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준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의 출범 배경과 의의

한국은 여러 항목에서 OECD 1위를 하고 있다. 주로 나쁜 것들인데, 노인 빈곤율, 자살율, 보행자 사망률 등은 높은 쪽으로 1등이고, 출산율이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친척이나 친구 등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수인 사회적 연계 등에서는 낮은 쪽으로 1등이다. 그만큼 살기가 어렵고 각박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들 OECD 최고나 최저의 통계 중에 이혼율이 포함된다는 것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도의 결혼은 32만2807건인데, 이혼은 11만5292건이었다. 단순 비율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결혼하는 부부 대비 35.7%가 이혼한다고 볼 수 있다. 평균 결혼 연령이 남성은 32.2세, 여성 29.6세인데, 이혼 연령은 각각 46.2세와 42.4세로 평균 결혼기간도 13~14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9.4%가 '한 부모 가정'이다. 한 부모 가족 실태조사에서 83%(39만 가구로 추정)의 가구가 이혼 후 한 번도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최근 유명한 전직 정치인이 종교계의 후계자에 대해 친자 확인 소송을 벌여 성공한 것도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억 원에 이르는 '미루어진 양육비'의 이행을 강제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이혼 부부의 평균 결혼 기간이 13~14년인 점을 고려한다면 다수의 이혼한 부부가 자녀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혼 후에 자녀의 양육은 아직까지도 대부분 여성이 떠안게 되므로 여성 자신의 삶이 어려워지는 것과 더불어 자녀들의 양육 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되는 또 하나의 사회적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 3월 25일 여성가족부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출범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에는 변호사 20명과 법무사 2명이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세 미만 자녀의 양육자와 '한 부모 가족지원법'에 따른 자녀 양육 '한 부모'와 조손 가족, 취학 중인 22세 미만 자녀 등이 신청한 양육비와 관련한 상담, 양육비 청구 및 이행 확보 등을 위한 법률 지원,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양육비 채권 추심 지원과 양육비 채무 불이행에 대한 제재 조치를 담당한다.

쉽게 말해서 이혼 과정에서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한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 강제적으로 양육비를 지원하도록 하거나 재산을 압류하는 등의 역할을 해 주는 국가기관이 생긴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 부모 가족'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적이 꽤 오래 되었지만,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고서야 그 실제적인 역할을 하는 기구가 발족한 것이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출범한 지 100일 만에 상담은 1만4897건에 이르고 직접 서류를 갖추어 신청한 경우도 3747건이나 접수되었다고 한다. 강제집행 없이 양육비 이행관리원의 개입으로 당사자 간의 이행 확약이 성립된 건수만 벌써 110건이라고 한다.

여성과 아이들의 행복 위해 "낡은 정치" 교체해야

물론, 양육비 지급 의무를 판결받은 양육비 채무자라도 소득과 재산 조사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제재 수단이 없거나, 양육비 불이행자에 대한 여권 제한이나 해외 출국 금지 명령, 연금 등 사회보장 급여의 차감 등 다른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이행강제 수단이 아직 우리나라엔 없다. 또한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지급하는 긴급지원 양육비 예산도 한정되어 있고, 지원기간도 6개월에서 9개월로 한정되어 있는 등의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양육비 이행관리원의 정원이 비정규직을 포함해 57명에 불과하여 신청 건수를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고, 서울 한 곳에만 있어 지방의 접근성이 낮은 것도 문제이다. 그러므로 광역단위로 양육비 이행관리원을 지원하거나 근무 인원을 신청자들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충해야 한다.

조직을 신설하거나 정원을 확충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의 변호사회와 연계하여 신청 창구를 신설하고, 추심 및 상담을 위탁하는 것이라도 확대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전국에 이미 설립되어 있는 '건강가정 지원센터'를 이런 역할로 활용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 이렇게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기구의 설립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데 대해서는 여야 정치권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근저에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면서 이런 조직의 신설을 반대해왔던 우리 사회의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 기조가 놓여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심지어는 소위 "민주 정부" 시기에도 효율적 정부의 이름으로 필요한 정부 조직을 만드는 데 스스로 내부 검열을 해왔던 점은 분명히 반성해야 한다.

양육비 이행관리원 뿐만이 아니다. 사회서비스의 여러 분야들이 담당 공무원이나 종사 인력들을 필요한 만큼 확보하지 못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년 총선부터라도 더 이상 시장만능주의 '작은 정부'에 발목 잡히지 말고,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방안을 반드시 공론화해야 한다. 국민 모두에게 '양질의 삶'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인력과 조직은 반드시 채용하고 만드는 것이 "역동적 복지국가"다. 또한 제대로 된 복지국가라면 양육비 이행관리원이라는 조직 자체가 필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에서는 한 부모 가정이나 양 부모 가정이나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아동수당부터 시작하여 '보편적 복지'를 받기 때문이다.

기본적 주거의 보장과 대학교육을 넘어 대학원교육까지 국가가 보장하는 것을 국방이나 치안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복지국가다. 결혼이나 가족이 더 이상 여성 자신과 자녀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족쇄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사는 '애정의 공동체'가 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복지국가다. 이제 우리는 복지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하는 정치세력에게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과 대안도 없이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만을 강조하는 정치세력의 입 발린 소리를 더 이상 신뢰해선 안 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 여성들과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이젠 영호남 지역주의 정치와 패거리 붕당 정치의 기득권에 의존하는 "낡은 정치의 불판"을 바꿀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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