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해가 저물고 있다. 최근 십 수 년 동안 늘 그랬듯이 2014년도 우리 모두에게 힘들고 대형 사고가 많은 한해였다. 지난 2월에는 폭설로 경주 리조트의 지붕이 붕괴되어 10여명의 대학생들이 죽었다. 4월에는 세월호 침몰로 수백의 사람들이 수장되었다. 5월에는 노인요양병원 화재로 노인 21명이 사망하더니, 6월에는 군부대 총기 난사로 여러 명의 청년들이 사망했다. 10월에는 환풍구가 무너져 축제를 구경하던 회사원들이 사망했고, 12월에는 원양어선이 침몰하여 50명이 아직도 실종 상태다.
정부·여당의 실패와 야당의 무능
연령과 세대, 그리고 지역을 초월하여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부실과 고통이 드러났다. 국민 대부분에게 올해는 유난히도 힘들었다. 희망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민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중산층 국민까지도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 비정규직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을 실천하기는커녕,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비정규직의 사용기한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대상 업종을 늘리는 식의 개악을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87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들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없는 한해였다.
정부는 대학생 학자금 지원이 확대되고 등록금 인상이 자제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반값 등록금' 공약이 달성되었다고 선언했지만, 당사자인 다수의 대학생들은 여전히 밤을 새워 학비를 벌어야 다음 학기에 등록할 수 있는 상태로 힘겨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며 곳곳에서 "창조경제센터" 개소식을 하였지만, 실제로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했다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량진 학원의 취업 재수생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소득 주도의 경제성장을 하겠다며 출범했던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부처는 부동산 규제완화 대책만 쏟아내더니, 임금 인상을 통한 실질적인 '경제 활성화'를 원하는 국민의 기대를 사실상 저버리고 말았다. 정부·여당은 종교인 과세와 부자감세의 철회와 같은 바람직한 정책들은 연기하거나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국가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보편적 급식과 보육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국민을 겁박했다. 그 와중에 '땅콩 회항'으로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큰 상황임에도, 정부·여당은 구속된 재벌 경제인들에 대한 형 집행정지를 거론하고 있다.
청와대 내 정권 핵심들 간의 권력 다툼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도, 정부·여당의 잇단 실정과 양극화 심화라는 국정실패로 국민의 마음이 떠나고 있음에도, 우리 국민은 정부·여당보다 야당에 대한 심판에 먼저 나섰다.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거나 "한국형 복지국가"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하고 정권을 획득했음에도, 집권 후 스스로 공약을 부정하면서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의 길로 회귀한 '줄·푸·세'의 정부·여당보다,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헛발질만 해댄 무능하고 무기력한 야당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실망과 배신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 운동
그러나 이렇게 힘들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자라나고 있었다. 복지국가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계기로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역동적 복지국가"가 제안된 이래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복지국가의 가치는 이미 우리 국민의 뇌리 속에 보편적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다수의 중산층 가구들조차 살기가 어려워진 상황들로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도 "복지국가"는 싸워서 쟁취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난 1년간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왔다. 우리는 지난 6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복지국가 후보 인증사업"을 진행했다. 복지국가 지방정부의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고, 후보들 간의 복지국가 공약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지방자치를 한 걸음 더 성숙하게끔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지방정부의 역할을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의 논리에 부합하도록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방정부에 대한 자문과 강의 등의 지원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려고 노력해왔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을 공론화하고 최초로 이를 정치권에 조직적으로 제안했다. 이렇게 제안한 복지국가 공약들이 구체적으로 시행되도록 하기 위해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노력했다. 정부·여당이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후퇴시키려는 기초연금 공약을 지금의 수준으로나마 지키는 데에도 일정하게 기여했다.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매달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수령하는 433만 명의 노인들은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55.0%),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었다'(25.6%)라고 응답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국민연금연구원).
아직 40만 명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의 수급에서 배제되어 있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기초연금의 수급액이 연동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이렇듯 앞으로 고쳐가야 할 부분이 많지만, 기초연금은 사회운동과 선거 정치를 통해 우리 국민이 쟁취한 승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확실히 "복지국가 운동"의 전리품이다. 우리는 향후 단계적으로 기초연금의 지급 금액을 늘리고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으로 복지국가 운동의 전리품을 더욱 온전하게 만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언제나 이런 복지국가 운동의 한가운데 있을 것이다.
의료전달체계를 무너뜨리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원격의료를 막아내고, 의료 영리화를 견제할 수 있었던 것도 복지국가 운동의 큰 성과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함께 "의료 영리화 대응방안"을 연구하고, 연구의 성과를 국회에서 발표하고, 수시로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방식으로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인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정부·여당이 큰 선거가 없는 내년에 의료 영리화를 더욱 세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는 온 국민의 복지국가를 향한 의지를 모아냄으로써 반드시 이를 물리칠 것이다.
보편적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던 정부·여당의 방침이 사실상 무력화된 것은 막상 '누리과정' 지원을 철회할 경우 매달 평균 22.4만 원의 혜택을 받고 있던 600만 아동 부모들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고, 아이 키우기 좋은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국민의 눈길이 무서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서울시 의회와 함께 "지방정부의 보육비용 부담을 줄이고 중앙정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세미나를 개최하고, 육아 지원 정책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연구와 관련 활동을 해온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노력도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자부해본다.
지치고 좌절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역동적 복지국가 운동"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복지국가 건설에 저항하려는 세력들에 맞서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기존의 성과를 지켜내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쟁취한 복지국가 정책들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는 큰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 정부가 국민에게 공약했던 복지국가 정책들을 최대한 실현하도록 압박하는 일, 그리고 차기 정부에서 더 다양하고 확대된 복지국가 정책들을 시행하도록 국민에게 홍보하고,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내용을 교육하고,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고단한 민생으로 지치고 좌절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전국 곳곳에서 역동적 복지국가의 비전과 전략을 알리기 위해 "복지국가가 우리의 희망입니다"를 주제로 9월부터 시작한 '복지국가 아카데미'는 서울 성북구, 경기도 성남시, 제주도와 대전광역시에서 4주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경기도 고양시와 광주광역시, 그리고 세월호 침몰 참사로 상처가 깊은 경기도 안산시에서도 3주간의 강의로 진행되었다. 일상의 삶이 각박해져서 공부 모임에 수강생 모으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도 한 강좌에 많게는 250명이 넘는 수강생이 모여 강의실이 가득 찬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복지국가 아카데미'가 지역 주민들의 큰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이제는 "복지국가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년에도 전라남도 순천, 여수, 목포와 전북 전주, 경기도 용인 등 전국의 주요 지역에서 '복지국가 아카데미'를 계속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복지국가의 담론과 전략은 확산될 것이며, 전국에서 복지국가 운동가들도 늘어날 것이다. 아직 어둠은 깊다. 하지만 우리는 어둠 속에서 "복지국가"라는 희망의 불씨를 함께 나누었다.
우리 모두 어렵고 힘든 한해를 잘 버텨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서로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자. 그리고 서로 손을 꼭 부여잡고, 다가오는 2015년에는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희망의 불길이 더욱 활활 타 오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우리는 그렇게 또 다른 한해를 힘차게 맞이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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