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9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참사 원인이 무엇인지 알 권리는 모조리 부정당했다. 심지어 수많은 죽음에 애도하려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움직임조차 '불법'으로 간주됐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이후 다양한 인권 침해 사례를 보고 들은 '4.16인권실태조사단(조사단)'은 결론을 내렸다. 세월호 참사는 '인권이 침몰한 사건'이라고.
4.16연대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4.16 인권실태조사 보고대회'를 열고, 조사단이 지난 7개월 동안 45명의 피해자들을 만나 수집한 다양한 피해 사례들을 소개했다. 조사단은 그동안 알려진 인권 침해 양상을 종합 정리하는 한편, 생존자 가족, 민간 잠수사 등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죽은 자도 가족에게 인도될 권리가 있다"
조사에 참여한 기선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먼저 '구조될 권리', '시신 수습에 관한 권리'를 말했다. 참사 피해자는 끝까지 구조받을 권리가 있고, 사망했을지라도 가족을 만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희생자는 신체 훼손이 덜하도록, 최대한 존엄이 유지된 상태로 가족에게 인도될 권리를 가지며, 희생자 가족이 국가와 사회에 이를 요구할 권리는 '인간의 유해 관한 버밀리온 헌장(WAC)' 등 다양한 국제 규약 등에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서 발생한 다수의 희생자들이 존엄을 잃었다. 시신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가족에게 인도되거나, 심지어 시신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9명은 미수습 상태로 바닷속에 잠겨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시신 수색 작업을 요구하면, 정부에서는 가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으로 호도하기 일쑤였다. 미수습자 가족은 영상 인터뷰에서 "수색을 가족들이 종료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고, 강제종료식이었다"며 "죽은 사람 꺼내려다가 산 사람 죽었다는 소리 들을까 봐 그랬다"고 했다.
조사단은 아울러 세월호에 탑승했던 직원들의 경우,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통해 소개된 세월호 직원 생존자는 "선내 식당에서 조리 일을 했는데, 배 구조에 대해 출입구와 제 기숙사 말고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고 증언했다.
기선 활동가는 "사업장 내부의 위험 요소를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에게 작업 중지권,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안전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며 "결국 기업과 정부가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방기한 것이 이같은 참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살아 돌아온 첫째 돌보느라 둘째는 신경 못 썼는데"
이날 영상을 통해 증언에 나선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은 하나같이 '생존자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친구가 발목을 잡았는데 뿌리치고 나온 아이도 있고, 한 손으로 자기 잡고 있던 친구들이 물에 떠내려간 걸 본 아이도 있고…. '살았으면 됐다'고 하는데, 그냥 산 게 아니거든요. 바락바락 해서 나온 아이들이거든요.(중략) 샤워하는데도 문 열어놓고 하고, 습기 끼면 배에서 본 창문이 보이는 것 같다면서 찬물로만 샤워하고" (생존 학생 부모)
또 생존 화물기사 한 명은 "살았다는 죄책감. 마음속에서 가시지 않아서 자살까지 하려고 해봤었는데 옆에서 가족들이 그냥 감싸 안아주고 하니까 지금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병원에만 있으니까 애들 학자금 지원 문의하려고 교육부에 전화하니, 유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면서, '당신은 살았지 않았느냐'고 해서 충격 받았다"고 했다.
조사단은 특히 생존자 가족들은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라며, "세월호에 승선한 '직접적' 피해자만 피해의 전부라고 보는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아(가명) 여동생이 중학생인데, 같은 반에만도 단원고 2학년에 언니 오빠를 둔 아이들이 여덟 명이 있었는데, 선아 빼고는 언니 오빠들이 다 돌아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선아 돌보느라 못 간 장례식장을 선아 동생이 다 갔고, 그렇게 방치된 상태로 있었어요. 나중에는 아이가 웃지도 않고 그래서 상담을 받았는데, 한 30분을 계속 울더라고요. 선아도 선아지만, 둘째도 참 마음이 아팠겠구나. 예전처럼 친구들이랑 형제들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생존 학생 부모)
"해수부 장관, 예전엔 잠수사들한테 형 동생 하자더니"
세월호 탑승자들의 탈출 과정을 도운 진도 어민이나, 시신 수습 과정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의 트라우마도 상당했다.
"(잠수사) 25명 중 7명이 아예 생업을 놓고 있어요. 골 괴사는 수술밖에 안 되는데, 100% 완치도 안 되고, 수술하면 무조건 영구장애로 남거든요. 그런데 국가에선 지원을 안 해줘요.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에는 우리한테 형 동생 하자더니 이제는 등한시해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만약 또 일어날 경우 누가 발 벗고 나서겠습니까." (민간 잠수사)
"작년에는 아예 일을 손 놓았죠. 그런데다가 (탑승자들을) 다 못 구했다는 자괴감도…. 누우면 머릿속에 떠올라요. 죽은 아이들"(진도 어민)
가원 유엔인권정책센터 활동가는 "재난 참사 피해자가 참사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공동체가 최대한 예우를 다해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가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하는 등 생존자들이나 피해자 가족이 심리치료하는 걸 단념하도록 하고 있으며, 지원금 또한 턱없이 부족해 가계 빚이 늘어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조사단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들은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잔혹하다"며 "진실의 현재를 확인한 다음 몫은 다시금 인권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2016년 4월 16일 즈음 발표될 4.16인권선언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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