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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안 죽었냐'는 식 보도, 인권감수성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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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안 죽었냐'는 식 보도, 인권감수성 제로"

"피해자 중심 보도해야… 재난 보도 준칙 공유 시급"

"언론은 인권교육매체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 향상과 인권감수성 향상에 기여한다"

2011년 제정된 '인권보도준칙'은 총강 9항에서 인권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인권교육매체라고 답할 수 있는 언론은 얼마나 될까.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을 두고 언론사 간 보도 경쟁이 과열되면서 '인권 침해 보도'가 속출하고 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 앞에서, 언론의 얄팍한 인권 의식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피해자 상태 고려 않고 취재… '2차 피해' 우려"

언론 및 인권 전문가들이 꼽는 대표적 반(反)인권 보도 사례는 지난 16일 전파를 탄 JTBC의 보도다. 생방송을 진행한 앵커가 생존자 학생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친구 사망 소식을 아는지 물은 것. 예상치 못한 비보에 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관련기사 : "선박 침몰 사고 보도에 '보험 광고'가 웬말?")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JTBC 측이 공식 입장을 밝혔고, 이어 손석희 보도국 사장이 방송에서 고개를 숙이기에 이르렀다.

▲지난 16일 <뉴스9>에서 세월호 생존자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한 후배 기자를 대신해 사과한 손석희 JTBC 보도국 사장. ⓒJTBC

전문가들은 인터뷰 대상자가 사고 피해자인데다가 미성년자인 점을 들어 방송사가 '2차 피해'를 가했다고 비판했다.

유민지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는 17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사고 현장에서 겨우 벗어난 학생이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면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딸에게 '엄마가 죽은 사실을 아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인터뷰"라고 말했다.

17일에도 언론은 피해자들에게 취재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날 뉴스Y등 일부 언론은 사망한 학생의 학교에 찾아가 공책을 열어 내용을 공개하는 한편, 유가족을 인터뷰해 내보냈다. 아울러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여객선 내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언론의 과잉 취재가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지난 2012년 일어난 아동 성폭력 사건 당시 기자들이 피해 어린이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고, 피해 아동의 일기를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 일로 "언론에 2차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언론이 이번 사건에서 선정적으로 다루는 보도는 대부분 본질과 관련 없는 것들"이라며 "무엇을 보도해야 하는지, 중심 가치부터 되새겨봐야 한다"고 밝혔다.

오 사무국장은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와 가족들의 생존과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피해자 중심의 보도'를 강조했다.

"기자들, 재난 보도 준칙 초안이라도 봤으면"

일각에선 재난 사건에 대한 보도 준칙을 따로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피해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면서 언론으로부터 보호받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 보도에 대한 준칙은 현재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기자협회 주도로 논의가 진행됐으나, 초안이 나온 이후 작업은 멈춰진 상태다.

한국기자협회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올 초 다시 필요성을 인식하고 준비하려던 차에 공교롭게도 사고가 생겼다"며 "조만간 다시 한 번 준칙 제정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만들어진 초안을 살펴보면, 첫 번째 원칙으로 "이미 발생한 피해 상황을 전달하는 것보다 앞으로 전개될 다른 피해를 예방하고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보도를 우선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인명구조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취재할 것 △위기 상황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데 주력할 것 △불확실한 내용은 철저하게 검증해 유언비어의 발생이나 확산을 억제하는 데 기여할 것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인터뷰 강요 금지 등을 담고 있다.

유 활동가는 "포털 경쟁 등이 워낙 심해 준칙을 알고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보도의 기본 원칙 자체를 망각하는 기자들도 많은 것 같다"며 "새로 만들 것 없이 초안만이라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고가 '선장' 혼자 탓인가"
… '마녀 사냥'하는 언론

전문가들은 아울러 세월호 선장 이모 씨에 대한 인권 보호를 촉구했다.

이 씨는 사고 당시 가장 먼저 탈출하고 승객들을 방치해 이번 대형 참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선장 이모 씨에 대해 '정신 나갔다'고 표현한 MBN. ⓒMBN

각 언론은 기사에서 이 씨의 실명, 나이를 밝히고 근접 촬영한 사진을 내보냈다. 그런가 하면, '범법자'임을 강조하거나 비난을 유도하는 식으로 기사 제목을 붙이고 있다.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병실서 지폐 말리는 선장… '이젠 피의자'", "승객버리고 도망간 선장, 고작 징역 5년?" 등이다.

유 활동가는 "선장에게 분명 잘못이 있지만, 법적 처벌이 예고된 상황에서 언론이 나서 여론 재판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언론이 이 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데 대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고 보기에, 어떤 공익적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오 사무국장은 이 씨에 대한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해 "마치 '너는 왜 안 죽었냐'는 식의 태도"라며 "국민의 분노를 한 사람에게만 돌리는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선장 한 사람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밝혔다. "먼저 대피한 선장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사고 발생 후 두 시간 넘게 구조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대응하지 않았던 정부의 책임이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이번과 같은 후진국형 참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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