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300홈런' 이호준, 빛나지 않지만 위대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300홈런' 이호준, 빛나지 않지만 위대한

[베이스볼 Lab.] NC 이호준의 300홈런이 갖는 의미

우리 시대 야구 선수들의 인생 롤모델, NC 다이노스 이호준이 개인 통산 300홈런 고지에 올랐다. 이호준은 18일 수원에서 열린 kt 위즈전에서 1회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2점 홈런을 때렸다. 시즌 15번째 홈런이자 그렇게 기다리던 통산 300호 홈런, KBO리그 역사상 8번째 300홈런 타자의 탄생이다. 현역 타자 중 300홈런을 돌파한 선수는 이호준과 함께 삼성 이승엽(403개) 둘 뿐이다.


앞서 300홈런을 달성한 선수들과 비교하면, 이호준의 22년 프로 생활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나 떠들썩한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번 선임자들의 명단을 보자: 403홈런을 기록한 이승엽, 두말할 필요가 없는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다. 그 뒤로는 ‘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양준혁(351홈런), KBO 최초의 40홈런 타자 장종훈(340홈런), 2000년대 초반 이승엽과 함께 홈런쇼를 펼친 심정수(328홈런),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포수 박경완(314홈런), 두 차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시대를 풍미한 송지만(311홈런), 세 차례나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천재타자 박재홍(316홈런)까지.


이들 7명이 수상한 골든글러브만 합쳐도 무려 35개, 시즌 MVP 수상횟수는 8차례에 달한다. 죽 나열해놓고 보기만 해도 휘황찬란하고, 번쩍번쩍 빛이 난다. 이호준은 그렇지 않다. 1994년 데뷔 이후 22번의 시즌을 보내는 동안 이호준은 한번도 MVP나 신인왕, 올스타전 MVP나 한국시리즈 MVP의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도 항상 같은 포지션에는 양준혁과 이승엽이 버티고 있었고, 둘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이대호와 홍성흔에 밀려 고배를 들이켰다. 개인 타이틀 수상도 2004년 112타점으로 타점 1위에 오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른 300홈런 클럽 멤버들과 달리, 이호준은 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였던 적이 없었다. 천재성이 번뜩이거나, 누구나 볼 수 있게 환하게 빛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이호준의 기록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호준의 위대함은, 바로 그의 평범함에서 나온다.

▲통산 300홈런을 달성한 이호준이 베이스를 돌고 있다. ⓒNC다이노스


여기서 잠시 시간을 22년 전으로 돌려보자. 모두가 아는 이야기: 이호준은 프로 입단 당시 타자가 아닌 투수였다. 광주일고 시절 마운드에서는 140km/h대 빠른 볼과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투수로, 타석에서는 밀어서 담장을 넘기는 파워를 갖춘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에 해태가 연세대와 분쟁까지 불사하며 뻘건 유니폼을 입혔지만 투수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8경기 등판해 10.22의 평균자책점. 12.1이닝 동안 홈런을 7방이나 맞았고 그 중 하나는 입단 동기 LG 김재현의 시즌 20호 홈런이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유망주를 2군에서 키운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액을 받은 유망주는 1군에서 바로 두각을 드러내야 했다. 결국 투수 이호준은 거기까지였다. 이호준은 타자로 전향해 재도전에 나섰다.


타자 전향 첫 시즌인 1996년, 이호준은 17경기에서 타율 0.167에 1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 그 해 다른 300홈런 클럽 멤버들의 상황은 어땠을까. 고졸 2년차 삼성 이승엽은 9개의 홈런을 때렸고, ‘소년장사’ OB 심정수는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 18개 홈런을 쏘아 올렸다. 1996년 데뷔한 한화 송지만은 18홈런을 기록했고, 현대 박재홍은 30홈런 36도루로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삼성 양준혁은 28홈런으로 개인 최다를 기록했고, 장종훈도 15홈런으로 여전한 파워를 자랑했다. 쌍방울 박경완은 포수임에도 15개의 홈런 74타점을 작성했다. 모두가 정신 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가운데, 이호준은 이제 막 타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보통 어떤 타자가 홈런 타자가 될지 여부는 데뷔 후 처음 몇 년 이내에 결판이 난다. 삼성 이승엽은 1995년부터 첫 5시즌 동안 146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현대 박재홍도 첫 5년간 143홈런을 만들었고 양준혁도 5년차까지 120개의 홈런포를 기록했다. 그 외 송지만이 102홈런, 장종훈이 101홈런, 심정수가 97홈런, 박경완이 86홈런을 풀타임 첫 5년간 때려냈다. 그에 비해 이호준은 발동이 늦게 걸렸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데뷔 첫 4년 동안 이호준이 쳐낸 홈런은 9개에 불과하다. 풀타임 첫 시즌인 1998년을 기준으로 데뷔 첫 9년 동안 기록한 홈런을 합쳐도 85개로 300홈런 클럽 멤버 중 가장 적다.


하지만 이호준의 전성기는 바로 그 때부터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타자의 전성기가 끝난다는 28세 시즌, 2003년에 이호준은 전경기(133경기)에 출전해 36홈런 102타점을 달성했다. 이호준의 놀라운 활약 속에 SK는 창단 이후 처음 한국시리즈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듬해에도 이호준은 133경기에서 30홈런 112타점으로 2년 연속 전경기 출장-30홈런-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맹위를 떨쳤다. 이호준은 30세 시즌인 2005년에도 21홈런을 터뜨려 2002년부터 4년 연속 20홈런 이상 행진을 이어갔다. 데뷔 첫 9년 동안 때린 홈런(85개)보다도 2003~2005년 3년간 기록한 홈런(87개)가 많을 정도로, 뒤늦게 찾아온 이호준의 전성기는 뜨거웠다.


이호준은 30대 후반에 접어든 최근 들어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 가고 있다. 30대 후반 타자에게 파워의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젊은 시절 스쳐도 담장을 넘어가는 파워를 자랑하던 타자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홈런수가 줄어들게 마련. 300홈런 클럽에 가입한 타자들도 대부분 이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했다. 오직 이호준과 이승엽만이 예외적인 기록을 내고 있다. 다음 표를 보자.


300홈런 이상 기록한 타자들이 36세 이후 기록한 홈런 수를 정리했다(18일까지). 이 랭킹에서 이호준은 36세가 된 2011년부터 올 시즌 현재까지 90개로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이어 이승엽이 2012년 KBO 복귀 이후 4년간 79개 홈런으로 뒤를 잇고, 36세부터 41세 은퇴 시즌까지 68홈런을 쳐낸 양준혁이 3위, 36세부터 40세까지 50홈런을 추가한 송지만이 4위에 올랐다. 36세 이후 박경완은 34홈런, 박재홍은 26홈런만을 추가한 뒤 은퇴했고 장종훈도 7개를 추가하는데 그쳤다. 프로 데뷔 초기만 해도 홈런 레이스에서 한참 뒤처져 있던 이호준은 불혹의 나이에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만약 지금의 페이스를 시즌 마지막까지 유지할 경우 이호준은 몇 가지 의미 있는 기록을 추가로 달성하게 된다. 우선 이승엽보다 먼저 시즌 20홈런에 도달할 경우, 국내 선수로는 역대 최고령(40세) 20홈런 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또한 현재 페이스대로 시즌을 34홈런으로 마감할 경우, 지난해 이승엽이 달성한(39세 32홈런) 역대 최고령 30홈런 기록을 40세-30홈런으로 새롭게 쓰게 된다. 또 이호준은 현재 타점 페이스(150.7타점)를 유지한다면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게 되는데, 이 경우 2004년 이후 무려 11년만에 개인 통산 세 번째 30홈런-100타점 시즌을 달성할 수 있다. 40세 시즌에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선수는, 외국인 타자를 포함해도 지금까지 KBO리그에 존재한 바가 없다.


어쩌면 이호준의 야구 인생에서 지금이야말로 가장 밝게 빛을 발하는, 화려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호준은 언제나 그랬듯이 한 발 뒤로 물러나서, 팀과 동료들이 환하게 빛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역할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올 시즌을 앞두고 그는 5번에서 6번으로 타순을 조정하는데 동의했다. 전년도 23홈런 78타점을 올린 타자 중에 아무도 이호준처럼 흔쾌히 6번 타순을 받아들이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득점 찬스에서는 스스로 판단해서 희생 번트를 대는 모습도 여러 차례 보여줬다.


더그아웃에서 이호준은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비타 음료 역할과 후배들에게 야구를 올바르게 하는 법을 알려주는 역할 모델을 겸하고 있다. 야구를 하는 마음가짐과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하는 방법, 심판과 상대팀을 대하는 방법, 팬들을 상대하는 방법까지. 그가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신생팀 후배들에게는 생생한 본보기가 된다. 이호준은 야구보다는 팀내 정치에 골몰하고 자기 개인 성적과 옵션에만 신경 쓰는 어느 구단 베테랑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후배들을 압도하면서, 묵묵하게 팀이 자신에게 원하는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기록지에 나온 숫자들만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호준은 화려하게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타자 중 하나이며, 야구를 하는 모든 선수들에 귀감이 되는 훌륭한 역할 모델이다.

기록출처: www.baseball-lab.com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