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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파이터'의 고백 "좋은 신호 vs. 나쁜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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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메르스 파이터'의 고백 "좋은 신호 vs. 나쁜 신호"

[인터뷰] 이재갑 교수가 말하는 '메르스 한 달'

이재갑 교수(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는 지난 한 달간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감염 내과 전문의입니다. 사실 기자는 이 교수의 이름을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지난 1월 에볼라가 발생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에볼라 파이터'로 자원해 직접 현장에서 치료를 했던 의사입니다. (☞관련 기사 : 나는 왜 에볼라 현장으로 들어가게 됐나)

물론 이재갑 교수 외에도 언론에 등장해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이들은 때로는 정부의 '자문역'으로, 때로는 민간의 '전문가'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죠.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민의 공감을 얻기는커녕 질타를 받기 십상입니다.

반면에 이재갑 교수는 많은 시민이 목소리를 경청하고 또 신뢰를 보내는 전문가입니다. 한 달간 메르스 사태를 취재하면서 기자 역시 이 교수의 인터뷰 등은 빠짐없이 챙겨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이 교수의 무엇이 특별하기에 이렇게 시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일까?'

마침 기회가 생겼습니다. 청년의사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나는 의사다>의 메르스 특집 편에 이재갑 교수가 출연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18일 <나는 의사다> 녹음 자리에서 취재를 핑계 삼아 한 시간 넘게 이 교수와 메르스 사태를 놓고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직접 대화를 해보고 나서야 이 교수의 특별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이재갑 교수는 오만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는 '불확실성'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항상 예측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둘째, 이 교수는 사과를 하는 데 주저함이 없더군요. 이 자리에서도 과거 자신이 했었던 낙관적인 전망을 놓고서 두 번, 세 번 사과했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분야(감염 내과)의 비교 우위만 강조하기보다 감염병을 막기 위해서 다른 분야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것, 또 가능하면 비전문가와 눈높이를 맞추고 이해할 때까지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등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즉, 이재갑 교수는 기꺼이 대중과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문가였습니다.

메르스 사태, 한 달을 맞아서 최전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메르스 파이터' 이재갑 교수와의 대화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이 교수의 생생한 육성은 19일자 팟캐스트 <나는 의사다> 161회를 통해서 직접 들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가기 : 나는 의사다)

메르스, 좋은 신호 vs. 나쁜 신호

▲ 이재갑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교수. ⓒ연합뉴스
프레시안 :
메르스 사태가 벌써 한 달입니다. 도대체 이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정부는 다음 주가 고비라고 합니다만.

이재갑 : 요즘 우리 정부의 별명이 '고비'라면서요? 벌써 몇 차례나 "이번 주가 고비다" "다음 주가 고비다" 했는데, 그 때마다 상황은 더 안 좋아졌으니까요.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상황을 낙관하고, "이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 질 거다" 이런 얘기를 했었으니까요. 늦었지만, 그렇게 낙관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또 사과합니다.

프레시안 : 지금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이재갑 : 오늘(18일) 기준으로 보면 좋은 신호와 나쁜 신호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먼저 좋은 신호부터 얘기하면요.

이재갑 : 가장 좋은 신호는 확진 환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죠. (6월 19일 오전 6시 기준 확진 환자는 전날보다 1명 더 늘었다.) 시민들이 이제 메르스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조금만 증상이 나타나면 자진 신고를 해주는 등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도 큰 힘이 되고 있고요.

처음에는 정말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지금은 대형 병원은 물론이고 역량이 안 되는 중소 병원까지도 메르스 확산을 막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좋은 신호만 염두에 두면 정말로 정부 말대로 6월 말까지는 메르스 확산 추세가 잡힐 수도 있겠다는 낙관을 하게 되죠.

프레시안 : 나쁜 신호는 뭔가요? 당장 18일에도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투석실에서 165번 환자가 100명이 넘는 환자와 접촉한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투석을 받는 신장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재갑 : 강동경희대병원 투석실에서 감염이 나올 가능성도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다만 투석실에서만 감염 가능성이 있는 터라서, 그곳에서 접촉한 환자만 관찰하면 그 병원에서 더 이상 확산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죠. 사실 저를 짓누르는 걱정거리는 따로 있습니다.

프레시안 : 진짜 나쁜 신호요?

이재갑 : 삼성서울병원에서 의료인, 직원 감염자가 나오는 대목이 제일 신경이 쓰입니다. 이분들이 자기도 모르게 환자나 가족 또 방문자와 접촉해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삼성서울병원 환자는 퇴원하고 나서 지방 다른 병원의 응급실이나 입원실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잖아요. 그 분들을 통해서 그런 지방 병원에서 또 확산이 되고….

만약에 이렇게 또 다시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환자 감염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때는 메르스 사태가 지금보다 훨씬 더 길어지겠죠. 이런 일만 없다면 잡힐 것 같긴 합니다만. 자꾸 이런 비관적인 상황이 머리 한 쪽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겼으니까요.

프레시안 : 정말로 그런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설사 6월 말까지 대규모 환자 감염 사태가 나오지 않더라도 7월, 8월에도 메르스 환자는 산발적으로 계속 발생하겠죠?

이재갑 : 당연하죠. 메르스 확산 추세가 꺾이더라도 감염 환자는 계속 나올 겁니다. 마지막 환자 발생 이후에 2주 정도 환자가 나오지 않으면 '아, 이제 정말 끝나는구나' 하고 안심하면 되고요. 4주간(28일) 더 이상 환자가 나오지 않으면 그 때야 '메르스 사태 종식!', '메르스 프리(free)!'를 선언할 수 있는 거죠.

메르스, 지역 사회 감염이 안 나오는 이유

프레시안 : 어제 141번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제주도를 활보하고 돌아다닌 사실이 알려져서 또 한 번 발칵 뒤집혔습니다. 시민들이 제일 걱정하는 일이 지역 사회 감염인데요. 일단 이 교수를 비롯해서 많은 전문가는 지역 사회 감염 가능성은 낮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습니다.

이재갑 : 네, 그 부분을 좀 자세히 설명할게요. 사실 시민들 입장에선 도대체 이해가 안 갈 법도 합니다. 감염 환자가 지하철이나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녔잖아요? 그런데 지하철, 비행기, 응급실 모두 밀폐 공간이긴 마찬가지고, 접촉 거리만 따지면 지하철이나 비행기가 오히려 환자와의 거리가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요.

프레시안 : 그렇죠. 그 대목을 제일 궁금해 할 것 같아요.

이재갑 : 왜 저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지역 사회 감염이 낮다고 판단하는지 자세히 설명을 드릴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환자가 지하철을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닐 정도의 체력이 되는 감염 초기 상황에서는 설령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환자의 폐에 축적된 바이러스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즉, 그 환자의 기침이나 가래(객담)를 통해서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오더라도 그 양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정도가 안 되는 거죠.

둘째, 메르스 바이러스의 특징도 지역 사회 감염 가능성을 낮춥니다. 일단 이 바이러스는 폐 안쪽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요. 즉, 기침을 하더라도 바이러스가 밖으로 배출될 가능성이 낮은 거죠. 또 바이러스성 폐렴은 그 특성상 바이러스가 포함된 가래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폐가 심각히 손상이 되어도 기침을 하거나 가래가 나오는 경우가 적습니다.

확진 환자의 과반수는 발열 증상이 있을 때 의료 기관을 찾았더군요. 즉, 이렇게 열만 나는 상황에서는 설사 지하철을 탔더라도 기침을 심하게 하고, 또 그 기침에 바이러스가 다량 포함된 가래가 섞여서 외부로 배출되는 일은 드물었을 거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지역 사회 감염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지역 사회 감염 가능성은 낮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해 봅니다.

메르스, 병원 감염 미스터리

프레시안 : 설명을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당장 이런 의문이 생기네요. 그럼 도대체 응급실에서는 왜 그렇게 대량 감염 사태가 생긴 건가요? 어차피 가래가 잘 안 나온다면서요?

이재갑 : 강 기자 생각해 보세요. 지금 강 기자가 메르스에 감염되어서 폐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흡이 가빠서 응급실에 왔어요. 그런데 응급실 의사는 폐렴이라고만 생각하지 메르스에 감염되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고 있어요. 그럼, 그 의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뭘까요?

프레시안 : 뭔가요?

이재갑 : 일단 숨 쉬기 편하도록 기관지 확장 치료를 합니다. 이렇게 기관지가 확장된 환자가 응급실에서 기침을 하면 폐에서 증식하던 바이러스가 훨씬 쉽게 가래 등에 섞여서 밖으로 배출되죠. 심지어 가래를 제거하려고 바이러스가 다량으로 섞인 가래를 일부러 밖으로 꺼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또 바이러스가 응급실로 나오죠.

호흡 곤란이 심할 경우에는, 특히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튜브를 직접 삽입(intubation)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공호흡을 하는 과정에서 폐 속에 고여 있던 바이러스가 또 밖으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가 연무(에어로졸) 형태나 혹은 바닥에 깔려서 또 다른 희생양을 찾게 되는 거죠.

프레시안 : 듣고 보니, 폐렴 등으로 병원을 찾는 호흡기 환자를 통상적으로 치료하는 과정이 바로 몸속 바이러스를 밖으로 배출하는 원인이 되었군요.

이재갑 : 정확합니다. 그러니 메르스 사태가 끝날 때까지는 호흡기 질환을 찾는 환자는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메르스 환자일 가능성을 의심해야 하고요.

무너진 국가 방역 체계를 다시 세우자

프레시안 : 이번 사태의 중심에 계속해서 서 계셨죠?

이재갑 : 그렇죠. 사실 때로는 밖에서 쓴 소리를 하는 역할을 하긴 했습니다만, 저 역시 메르스 즉각 대응 팀의 일원입니다. 이제 이 자리가 끝나면 창원SK병원으로 달려가야 하고요.

프레시안 : 밖에서 또 안에서 한 달간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낀 게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재갑 : 한두 가지가 아니죠. 일단 지금은 이 메르스 사태를 막는 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딱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전국에 감염 내과 전문의가 약 200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대량의 전염병 감염 사태가 나면, 환자를 책임지고 치료할 이들이 정말로 부족합니다.

사실 감염 내과 전문의만 부족한 게 아닙니다. 전염병 전문가가 다 부족해요. 예를 들어, 예방의학 쪽의 감염 역학 전문가는 손으로 꼽습니다. 그러니까 전염병이 돌아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줄 전문가가 한국에는 거의 없는 거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염병 방역 체계의 일선에서 실무를 담당할 인력을 확충해야 합니다. (☞관련 기사 : 현장의 양심선언 "이렇게 메르스에 무너졌다!")

지금 메르스 사태로 기존 병원에 격리되어 있던 결핵 환자가 밖으로 내몰리고 있어요. 공공 병원이 부족하니까 이런 돌려 막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터무니없이 부족한 음압 병상 얘기는 언론에도 많이 나왔죠?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을 막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거죠.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국가 방역 체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프레시안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시민과 소통하는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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