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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수급 공청회에서 웬 '가방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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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수급 공청회에서 웬 '가방검사'?

[주간 프레시안 뷰] "국토 좁은 한국, 원전은 모두의 위험"

6월 18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에 있는 구 한국전력 본사 강당에서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저도 공청회에 참석하려고 진작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지난 두 차례의 '주간 프레시안 뷰'를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신규 원전을 짓기 위해 숫자를 짜 맞춘 것에 불과한 계획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신규 원전이 전혀 필요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핵(원전)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서 무리하게 신규 원전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열한 찬반 토론이 공청회장에서라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월 5일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를 열겠다고 공지했습니다. 공청회를 한다고 하면서, 발표자와 토론자가 누구인지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관한 공청회인데, 계획서 초안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전력수급기본계획은 100쪽이 훨씬 넘는 문서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정부가 언론에 공개한 보도자료 수준의 자료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공청회를 공고하면서, 참석자가 많으면 전력업계 관계자에게 우선입장권을 주겠다고 공고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 공청회를 많이 봤지만, 이런 식으로 업계 관계자에게 입장 우선순위를 주겠다는 공청회는 처음 봤습니다.

어쨌든 일단 공청회 참석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연락이 없기에 3일 전에 공청회 문의처로 표시되어 전력거래소로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담당자는 신청자가 많아서, 모두가 입장할 수는 없고, 자신들이 선별하여 입장가능 여부를 통보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공청회 전날에서야 제게 '입장이 가능하다'는 통보가 문자와 메일로 왔습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어떤 사람은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무슨 기준으로 정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18일 아침에 공청회장으로 갔습니다. 신규 원전 예정지로 거론되는 삼척과 영덕의 주민들도 올라 왔습니다. 역시 어떤 분은 입장권을 받았고, 어떤 분은 입장권이 없다고 합니다.

당연히 입장권을 못 받은 분들은 항의하고 입장을 하려고 했습니다. 공청회장에 입장 자체를 못하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입장권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고 주민들을 막아섰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정체불명의 용역업체 직원들('포스원 코리아'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이 입장권을 검사하면서, 가방검사까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입장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방을 열어 보여주지 않으면 입장을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권한으로 가방검사를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용역업체 직원이 가방검사를 하겠다는 것은 당연히 불법입니다. 그런데 경찰은 옆에서 이런 불법을 수수방관했습니다. 영장 없이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는 헌법조항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겨우 공청회장에 들어섰더니, 자리가 많이 비어 있습니다. 신청자가 많아서 입장을 제한한다더니,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바깥에서 입장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공청회는 그냥 강행되었습니다.

단상에는 일방적으로 정부 쪽 계획을 발표할 패널들만 앉아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토론하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배포된 자료도 보도자료 수준이었습니다. 계획서 초안도 공개하지 않고서 무슨 공청회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입니다. 이런 식의 형식적인 공청회를 1번 하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입니다. 단상에 앉아있는 패널들은 정부의 '영혼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영덕 천지원전 건설백지화 범군민연대'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올해 3월 14일 오후 영덕군 영덕읍 일원에서 원전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공청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2시에 출발했다는 경북 영덕의 주민은 "핵발전소가 한번 가동되기 시작하면 2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을 쏟아내게 되는데, 이런 중요한 문제를 이런 형식적인 공청회로 결정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트립니다.

만약 국민들에게 '발전소가 남아도는데 새로운 원전을 짓는 것에 찬성하느냐'고 물어보면 찬성한다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정부는 단 한 번도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원전 건설을 강행하려 합니다.

저는 오늘의 공청회는 무효이고 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경북 영덕의 주민들은 민간 차원의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군 의회 여론조사에서 60%에 가까운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정부가 계속 강행을 하기 때문에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들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강원도 삼척 주민들은 작년 10월에 이미 주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원전 문제는 단지 삼척과 영덕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국토가 좁은 대한민국입니다. 어느 원전에서 사고가 나든, 모두가 재앙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미 23개가 있는 상황에서, 13개의 원전을 더 건설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막지 못하면, 우리는 원전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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