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발전소 중에 가장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석탄화력 발전소입니다. 석탄화력 발전소는 2014년에 전체 발전량의 45.9%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원전입니다. 원전은 2014년에 35.4%의 전기를 생산했습니다. 천연가스(LNG) 발전소는 한때는 20%를 넘는 전기를 생산했습니다만, 2014년에는 15.5%에 그쳤습니다. 2015년에는 천연가스 발전소가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천연가스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비중이 떨어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전소가 남아돌기 때문입니다. 언제는 '전력난' 운운하더니, 이제는 발전소가 남아돈다니?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입니다.
2011년 가을 정전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때에도 운영을 잘못해서 일어난 정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발전소가 많이 완공되면서 2014년부터 발전소가 남아도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발전소가 남아돌아서, 후순위 발전소는 가동을 할 기회조차 없게 되고 있습니다. 후순위 발전소는 바로 천연가스 발전소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대한민국의 발전소 돌리는 순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전력은 수요와 공급이 항상 일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발전소가 있다고 해서 그냥 가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소비에 맞춰서 공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발전소들은 전력거래소로부터 발전소를 돌리라는 지시, 즉 '급전 지시'를 받고 가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운영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있는 여러 종류의 발전소들 간에는 발전소를 돌리는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원전과 석탄화력, 천연가스 중에서는 일단 원전이 1순위입니다. 2순위가 석탄화력발전소입니다. 3순위가 천연가스 발전소입니다. 약간씩 순서가 바뀌기가 하지만, 대체로 3대 발전간의 우선순위는 원전-석탄화력-천연가스 순입니다.
그런데 발전소를 너무 많이 짓는 바람에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만으로도 웬만큼 전기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순위인 천연가스 발전소는 가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5월 20일자 <경향신문>에서는 녹색당과 공동으로 대한민국 전력정책 전반을 점검하면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기사를 보면 발전소들이 남아돌기 때문에, 후순위 발전소인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률이 2013년 67.1%에서 2014년 53. 2%로 떨어졌습니다. 절반은 가동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충남 지역의 어떤 천연가스 발전소는 2013년 가동률이 77%였는데, 올해에는 5%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기사에서 인용한 김광인 교수(숭실대 경제학과)에 의하면, 2022년에는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률이 17%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발전소들이 남아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연가스 발전소를 갖고 있는 발전회사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발전회사가 발전소를 가동도 못하면서 갖고 있어야 한다면, 손해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오로지 정부 탓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끝나기 직전인 2013년 2월에 정부는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계획이 과다한 상태에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951만㎾를 공급할 신규 발전소 건립을 확정했습니다. 여기에는 대기업 민자발전사들의 석탄화력발전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발전소들만 다 지어도 엄청나게 많은 발전소들이 남아돌게 되었습니다.
2020년이 되면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여름과 겨울의 피크타임 때에도 설비예비율(예비발전소 비율)이 30%를 넘어서서 매우 많은 발전소들이 멈춰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국가적인 낭비입니다. 발전소를 남아돌 정도로 짓다보니, 송전선도 불필요하게 많이 건설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정부도 올해 6월에 발표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더 이상 석탄화력발전소와 천연가스 발전소가 신규로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옵니다. 사실은 이런 상황이면 모든 발전소 건설계획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직 착공하지 않은 발전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든 신규 원전 부지에 새로운 원전을 1~2개라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원전 예정구역으로 지정된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 얘기입니다. 최근에는 강원도 삼척은 포기하고, 경북 영덕만이라도 원전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강원도 삼척의 경우에는 작년 10월에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들 다수가 반대의사를 확실히 표명했기 때문에, 정부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북 영덕에서도 최근 영덕 군의회에서 여론조사를 했을 때, 58%가 넘는 주민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군의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이기 때문에 영덕의 민심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전소가 남아돌고 있고, 지역주민들도 반대하는데 굳이 경북 영덕에서 신규원전을 밀어붙이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전을 둘러싼 이권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됩니다. 신형 원전은 1개 짓는데 4조 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 토건사업입니다. 그리고 원전 확대를 계속 밀어붙여야 떡고물이 떨어지는 이해관계집단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권 때문에 국가의 전력정책이 엉터리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국가계획이 이권 때문에 이런 식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은 단 하나도 새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필요도 없는 원전을 지으면, 그만큼 지금 있는 발전소들은 놀아야 하고 발전회사들도 손해를 봐야 합니다. 그런 어이없는 일을 왜 해야 합니까? 그런데 정부는 공청회도 하지 않고 있고,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한 때입니다.
6월 13일 오후 2시 청계천 한빛광장(청계2가 미래에셋빌딩 앞)에서는 낡은 원전 폐쇄와 신규 원전 중단, 그리고 민주적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모입니다. 이제는 이런 식의 정책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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