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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몰락, 北 체제 몰락과 별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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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은 몰락, 北 체제 몰락과 별개 문제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박근혜 대북 전단 옹호, 남북대화 가로 막아"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 남북 공동 행사가 결국 무산되면서 남북관계의 전기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런데 북한은 15일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북남 사이에 신뢰하고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당국 간 대화와 협상을 개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며 당국 간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북한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5.24조치 해제 등 대화를 위한 조건을 언급한 것을 근거로 6.15 15주년을 맞이해 자신들은 남북관계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명분을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불과 수개월 전 남한 당국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북한이 대화를 언급한 것은 분명한 태도 변화라는 해석도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분명한 대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 등 대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가 경제적인 난관에까지 부딪히면서 남북관계를 통해 현재 위기를 돌파해보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성명에 언급한 조건들 중에 비방·중상을 금지하자는 항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하고 지난해 10월 합의했다가 취소된 고위급 접촉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현재 국면을 끌고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는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여전히 방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 핵심적인 문제"라면서 "상대를 굴복시킨다는 관점에서 남북관계에 접근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인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니 하는 것들은 북한과 함께 하지 않으면 공수표에 불과한 것들"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고집스럽도록 대북 전단만 옹호하는 박 대통령 덕분에 결국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가 전단을 날리는 탈북자들의 손에 떨어졌다"면서 "탈북자 전부도 아닌, 극히 일부의 탈북자들에 의해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이 휘청거리고 있다. 한심한 노릇"이라고 질타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6.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 기념으로 준비했던 남북 공동행사가 결국 무산됐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8.15까지 남북관계도 지금과 별로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정세현 : 정부가 광복 70주년 행사를 남북 합동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비췄기 때문에 일종의 전초전인 6.15 행사도 지난 2005년 이후 10년 만에 남북 공동 행사가 될 수 있겠다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장소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6.15 행사 장소에 합의하지 못한 것은 8.15 행사를 어디서 개최할지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북이 8.15 행사를 서로 개최하고 싶어 했거든요. 북한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일성 덕분이라는 메시지를 선전하기 위해 평양에서 거창하게 행사를 열고 싶었을 겁니다. 북한은 김일성부터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이 조선의 독립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자자손손 북한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다고 교육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2005년 8.15 60주년 행사는 서울에서 치러졌습니다. 당시 6.15 행사를 정부와 민간 합동으로 평양에서 열었으니 상호주의 원칙으로 8.15는 서울에서 개최한 겁니다. 그래서 북한은 8.15의 환갑(60주년)을 서울에서 치렀으면, 칠순잔치(70주년)는 평양에서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을 겁니다.

또 60주년 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올해는 노동당 창건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8.15 행사를 시작으로 10월 10일 당 창건 기념 행사까지 성대하게 이어가기 위해서 평양에서 8.15 행사를 치러야 한다고 고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배짱도 있어야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면서 접점을 만들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안과 바꾸는 협상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그런 생각 없이 북한과 협상을 하는 민간 단체에게 8.15 서울 개최를 따내오라고 '오더'만 내린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당장 보름 남짓 남은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북한 선수단의 불참이 현실화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우리보다 방역·보건 체계가 취약하기 때문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해 불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든 북한의 U대회 불참에 8.15까지 남북이 각자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남북관계의 전기를 마련하기는 어려워졌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행사가 아닙니다. 6.15 선언이 담고 있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때도, 대통령이 된 뒤에도 6.15 선언을 존중하겠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했지만 이는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했습니다. 6.15의 기본 정신이 남북 간 상호 체제 인정과 평화적 공존을 기본으로 그 틀 안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것인데, 5.24조치로 사실상 남북 교류협력의 문을 닫아버리지 않았습니까?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 여당 내에서도 5.24조치 해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고집스럽게 이 조치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6.15 정신을 이행하는 첫 단계부터 막아놓은 셈이죠.

북한, 남한과 대화할 의지 있다

프레시안 : 이 와중에 북한은 지난해 7월에 이어 '공화국 정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많은 조건을 걸었지만 "북남 사이에 신뢰하고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당국 간 대화와 협상을 개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는데요. 북한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요? 정말 남한과 대화하려는 의지는 있는 걸까요?

정세현 : 북한이 지난해 7월에 이어 1년도 채 되기 전에 격이 높은 성명을 또 내놓은 건데, 북한이 내막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북한이 내건 조건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조건들 중에 당장 조치할 수 있는 대북 전단 살포 문제만 박근혜 정부가 매듭지으면 북한은 대화에 응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성명에서 밝힌 조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도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둘러 치고 나가면 됩니다. 통일준비위원회가 체제 통일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해서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느냐"라는 식으로 강하게 대응하면 됩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도 당장 훈련을 중단하거나 취소할 것을 기대하고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당장 을지프리덤가디언(UFG)훈련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만 규모를 축소시키거나 언론 보도 수위를 낮출 수는 있겠죠. 이건 차차 해결해 나가면 되는 문제입니다.

중요한 건 5.24 조치 해제와 대북 전단 살포 문제인데, 우리 정부도 5.24 조치에 대해서는 남북대화를 통해 풀자고 했으니까 사실상 대화 성사의 조건은 대북 전단 살포 문제로 귀결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전단 문제 해결하고 고위급 접촉 재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고위급 접촉이 재개되면 이후에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더 나아가서는 경협 활성화와 관련한 회담 등 분야별 회담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북쪽도 5.24 조치 해제를 비롯해 자신들의 요구를 남쪽 정부가 들어줄 수도 있다는 사인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상호 체제 인정,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 등의 요구를 상당히 완화시킬 겁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대북 전단 살포 문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담당 비서가 전격 방문한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단 문제도 포함됐으리라 봅니다.

▲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남한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 차 방문한 북한 황병서(오른쪽에서 두 번째)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과 인천의 한정식 집에서 오찬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이들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오찬을 겸한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후 10월 말 고위급 접촉을 약속하기도 했죠. 하지만 바로 그 다음주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있었고, 북한이 고사총으로 대응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고위급 접촉은 무산됐습니다.

북한의 강력한 대응에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이 문제를 사실상 방관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경직된 자세 때문에 결국 북한 고위급 3인방의 방남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지만, 지난해 7월 공화국 정부 성명 발표와 3인방의 방남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서 북한은 분명히 남한과 대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지난해 7월 성명은 인천 아시안게임에 응원단을 보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내용을 공화국 정부 성명에 싣는다는 것이 격이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 정도 급의 성명을 낸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처럼 자국의 선수단과 응원단을 잘 대접해주면 이를 계기로 막혔던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5.24조치 해제 수순을 밟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관측도 있었을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었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는 달리 말이 통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북한 고위급 인사가 3명이나 내려온 겁니다. 북한 선수단을 격려한다는 이유였지만, 정말 그것만이 방남의 목적이었다면 최룡해 비서만 오면 됩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까지 나타난 것은 청와대 예방을 의식하고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도 북한 대표단은 조문을 핑계 삼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일정을 하루 조정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북한은 지난해 7월에서 아시안게임까지 이어지는 국면에서 남북대화 재개와 관계 복원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응원단에 대해서는 국제관례대로, 즉 북한이라고 따로 편의를 제공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전단 문제도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올해도 박근혜 정부는 이전과 유사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화국 정부 성명이 발표된 당일,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대화하자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도 안 나왔으면서 이제 와서 조건 타령을 하느냐고 받아쳤습니다.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이번 성명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도리어 "너희랑 만날 생각 별로 없다"는 신호만 준 셈이 됐습니다.

북한, 남한과 대화하려는 이유는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이 이 시점에 남한과 대화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세현 : 일단 북한의 대외적 환경이 썩 좋지 않습니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서는 남한과 대화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지금 북·중 관계가 별로인 데다가 북·러 관계도 북한 입장에서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 2차대전 승전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북·러 관계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러시아가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무기 체계입니다. 러시아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러 문제를 두고 러시아와 사전 협의 차 세계 2차대전 전승기념일 직전 러시아를 방문했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도 이와 연결돼있다고 봅니다. 러시아와 사전 협의했는데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현영철을 그렇게 처리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특히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이라고 주장하는 발사체를 사출한 것은 군사 기술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에 반발하는 강한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외 관계가 좋지 않으니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그나마 교역할 수 있는 상대가 중국밖에 없는데 무역 적자가 상당합니다.

2014년 북한의 대외 무역 현황을 살펴보면 수출 총액이 31억 6000만 달러였고 수입 총액이 44억 5000만 달러였습니다. 적자가 12억 9000만 달러인 셈인데, 그 전년도와 비교해서 수출은 1.7% 줄어들었고 수입은 7.8% 올라갔습니다. 적자 폭이 상승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북한과 무역에 있어서 중국이 이전보다 철저하게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 같으면 거의 반값 또는 공짜로 물건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2013년 대비 2014년에는 적자가 41%나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적자를 내면 중국에서 물건을 사 오는 것이 어려워 지는데, 문제는 생필품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수요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겁니다. 박봉주 내각 총리가 북한 살림을 도맡으면서 시장 경제적인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또 기업소, 협동농장, 지방 행정 기관에 결정권을 주면서 생산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생산이 늘어나면서 수요도 폭발적으로 따라서 증가하는데 이를 북한 내부 생산으로만 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무역을 하는 건데, 현재와 같은 적자 추세라면 대중 무역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만약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정부 차원의 경협이 활성화되기 전에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 규모가 늘어날 것입니다. 인도적 지원이든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적 지원이든 간에 북한으로 반출되는 물자가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 경제에 필요한 물자의 상당 부분을 여기서 충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남한과의 대화, 나아가 관계개선이 시급한 북한이 왜 저런 조건들을 줄줄이 열거했을까요? 남한에 얼른 대화하자고 보채면 얕잡아 보일까봐 조건을 내놓고 대화를 못 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공을 남한에 넘기는 겁니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 대로 북한이 남한과 대화를 할 필요가 있고 실제로 원하고 있다면, 우리가 이 기회를 잡아채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기회를 통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세현 : 이럴 때 정부가 전단 문제를 해결하고 다가가는 자세를 보이면 됩니다. 물론 정부로서는 북한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현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보수 진영이 이탈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 겁니다. 하지만 이럴 때는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도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대중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점점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지 않으면 꼼짝 못 하고 미·중 대결 구도 속에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정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예뻐서 전단 문제 해결하고 남북관계 복원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넓은 시야로 국제 정세를 포함한 그림을 그려봤을 때 북한과 관계를 지금보다는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우리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 지은 중국의 인공섬을 구실로 중국 압박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방법도, 어떻게 해야 할 책임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북한이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핑곗거리가 되는 현재 상황을 타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도 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탈북자들 손에 좌지우지되는 한국의 외교·안보

프레시안 : 북한이 대화를 원하고 있고, 남한도 8.15 7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싶다면 북한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해결하고 중단됐던 고위급접촉을 재개하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현실적인 방법일 것 같은데 왜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완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 박 대통령은 북한의 붕괴를 믿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인식 하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협력보다는 체제통일, 흡수통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단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를 끼워보자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박 대통령은 해당 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한 붕괴의 징조를 보았느냐는 질문에 고위급 탈북자가 김정은의 광범위한 숙청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진술을 소개했습니다. 북한 체제가 악랄하다는 점을 이야기한 건데요. 물론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평화적인 해결을 희망한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탈북자를 거론하면서 북한 붕괴의 징조를 이야기하는 것은 '곧 붕괴될 수도 있는 이런 악랄한 정권과 협력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합니다. 북한 정권의 핵심층이 아닌, 당 간부 정도가 탈북했다고 북한 붕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보다 훨씬 고위층인 고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남한으로 넘어왔을 때도 처음에는 북한 붕괴의 신호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 뒤로 북한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황 비서의 남한행은 사실 1995년 부터 감지됐습니다. 당시 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황 비서가 내부적으로 좌천됐습니다. 원래 사상 담당 비서였는데 국제 담당 비서로 바뀐겁니다. 사상 담당이 국제 담당이 됐다는 것은 예를 들면 20층 건물에서 19층에 있다가 2~3층으로 내려간 것을 의미합니다.

황 비서가 1997년 남한 땅을 밟았을 때, 당시 대통령과 측근들은 드디어 북한이 붕괴한다면서 황 비서를 붕괴 임박론의 '전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 붕괴 임박론이나 북한 붕괴 불가피론이 유행한 직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는데, 다 무너져가는 북한을 김대중 정부가 살려냈다는, 인과관계도 맞지 않는 반통일 이데올로기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황 비서가 탈북했어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 집권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처럼 연달아서 숙청하거나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철저하게 후계 수업을 받았고 김정은은 급하게 권력을 물려받다 보니 오락가락하는 특성이 있긴 합니다. 붕괴 가능성을 논할 때 누가 탈북을 했느냐도 봐야겠지만, 집권자가 누구인지도 살펴봐야겠죠.

그런데 김정은이 물러나면 북한이 붕괴될까요? 북한 체제의 붕괴보다는 '리더십 체인지'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몰락과 북한 체제의 몰락은 별개 문제입니다. 김정은이 물러나면 북한은 권력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군부가 집권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관리하기 더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백두혈통'에서 민간인들이 군부를 지휘하는 형태가 군부가 직접 국가를 통치하는 것보다는 다루기 쉬울 겁니다.

짚어봐야 할 것은 또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거론한 그 탈북 인사가 정말 다른 사람들이 숙청되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것일까요? 탈북한 본인이 당의 부부장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진짜 탈북 이유를 숨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탈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정세를 본인 편리한 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탈북한 사람이 북한 내 권력 투쟁이 심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최고지도자로부터 떠나고 있고 그중에 본인도 한 사람이라면서 붕괴가 임박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북한이 그런 상황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한테는 이런 진술이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만 믿고 '북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민심을 얻지 못해서 간부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북한이 붕괴할 것이다'라고 판단한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만 모든 문제를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임과 동시에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속마음이 정말 북한 붕괴와 수복에 있다면, 북한을 대등한 상대로 대응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상대를 굴복시킨다는 관점에서 남북관계에 접근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인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니 하는 것들은 북한과 함께 하지 않으면 공수표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1층을 지어야 2층을 짓는데 1층을 짓기는커녕 있던 것도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이고 정부를 비난하는 전단은 수사 대상이 되는 모순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집스럽도록 대북 전단만 옹호하는 박 대통령 덕분에 결국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가 전단을 날리는 탈북자들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탈북자 전부도 아닌, 극히 일부의 탈북자들에 의해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한심한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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