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과 관련해 정부는 전단 살포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이며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북측과 강제로 막을 수 없다는 남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남북대화가 성사되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0일 기자들과 만나 박 대표의 전단 살포와 관련 "정부 입장은 변화가 없다"며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므로 강제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이로 인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신변 안전에 명백한 위험이 발생하는 경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가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사전에 대북전단으로 인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될 것이 예상되는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당국자는 "100% 못 날리게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며 "비공개로 날릴 때 북한이 사격을 가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신변 안전 위험성을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박상학 대표와 미국 인권단체인 인권재단(HRF)은 19일 밤 경기도 파주시에서 10만 장가량의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박 대표는 당초 20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소재로 다룬 미국 영화 <인터뷰>(The Interview)를 DVD로 제작해 북한에 날리겠다고 밝혔으나 이번 살포 내용물에 DVD는 제외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모색하려는 최근의 박근혜 정부 기조에 박 대표가 일정 부분 협조하는 움직임을 취한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표는 20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월 설 연휴까지 북한이 남한의 대화 제안에 응답하지 않으면 <인터뷰> DVD를 대량 살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설 전까지는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덧붙였다.
"부당하다"만 외치는 정부, 남북관계 개선 진정성 있나
하지만 북한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비롯해 체제를 비판하는 대북전단 살포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뷰> DVD가 포함됐는지 여부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이 이번 대북전단 살포를 구실로 대화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가 대북전단에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박 대표가 통일부에서 공문을 보내면 대북전단 살포를 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밝혔지만 통일부는 공문을 보낸 적이 없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고위 당국자가 직접 박상학 대표를 만나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에 공문 발송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북한이 지난해 10월부터 대북전단을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박 대표에게 공문을 보내거나 살포 행위를 공개적으로 막는 것이 북한이 설정한 어젠다에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또 본격적인 남북대화가 진행될 때 주도권을 북한에 빼앗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대북전단 문제는 최근 들어 새롭게 생겨난 이슈도 아니다.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은 이미 참여정부 때부터 대북전단을 살포해왔다. 그래서 정부는 북한이 이제 와서 대북전단을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 문제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외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걸고 있는 조건을 두고 "부당하니까 철회하라"라는 요구만 하는 것이 적절한 전술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당장 박근혜 정부도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만약 이러한 조건들에 대해 상대방이 "부당하니까 철회하라"라고만 주장한다면 현 정부가 과연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북한에 '광복 70주년 남북공동기념위원회'(가칭) 구성을 제안하고 이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체육·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동 기념행사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 시범 운행 추진, 남북 간 경제공동체 인프라 구축,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북한과 함께 해야 하는 사업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정부가 기존의 입장만 고수한다면 사업 추진은커녕 대화의 물꼬도 트지 못한 채로 2월 말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가 또 다시 경색국면에 돌입하게 될 것임은 눈에 뻔히 보이는 수순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업무보고에서 남북대화와 관련해 "북한이 호응해올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노력해 달라"고 밝힌 바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공언이 진심이라면, 북한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대화의 장으로 북한을 유인할 수 있는 유연한 조치와 적절한 메시지 관리가 시급해 보인다. 이런 조치 없이 지금처럼 기존의 입장만 고수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진정성 역시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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