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장은 12일 오전 열린 혁신위 첫 회의에서 "혁신위원들은 아무리 거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과 당원들이 혁신위원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과 혁신위원 전원은 5개의 강령이 포함된 '실천 선언문'을 채택하고 서명했다. "혁신위원들은 어떤 외부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혁신위원들은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혁신에 헌신한다", "혁신위원들은 혁신안이 실천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선언문에 포함됐다.
이후 이어진 위원들의 인사말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는 "새정치연합에 지금 필요한 것은 자멸적 안주가 아닌 창조적 파괴"라며 "혁신위는 '멋진 보고서를 만드는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 혁신안을 만드는 것을 넘어 그것을 즉각 집행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현재 모습의 새정치연합 앞에는 '천천히 죽는 길'이 남아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반복돼도 기득권 고수, 선거 패배, 내부 분열에 익숙한 정당, 폐쇄적이고 늙은 정당, 만년 2등에 만족하는 정당에 국민은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는 "조직이든 사회든 기득권은 제도에 응축돼 있다. 기득권 타파는 제도 개혁에서만 가능하다"며 "새정치연합의 기득권 문제는 3가지인데, 첫째, 당 내에서 지역위원장과 계파의 텃세가 너무 크고, 둘째, 호남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당의 독점적 지위가 너무 강하고, 셋째, 지역에 기반한 '거대 양당 독과점' 체제의 한 축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소위 민주·진보·개혁세력을 위한 정치 공간을 새정치연합이 독과점하고 있지만, 정치적 대리인 역할은 못 하고 있다. 이것은 민폐"라며 "기득권 타파를 위해서는 첫째, 대의원·지역위원장 선출 방식을 뜯어고쳐야 하고, 둘째, 공천제도를 민주화해야 하고, 셋째, 정당 득표율과 의석 수가 비례하는 새로운 선거제도 도입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첫 공개발언부터 계파갈등, 유령당원 등 민감한 주제도 거론
위원들은 계파 등 민감한 주제도 거침없이 거론했다. 임미애 경북 북부권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혁신위가 운동권이다, 486이다, 친노다, 친문(文·문재인)이다, 혁신이 되겠나 하는 얘기를 접했다"며 "이런 갈등을 조장하는 소리가 당 밖이 아니라 당의 의원들, 그것도 지도부였던 의원들 입에서 나왔다는 게 실망스럽다"고 직격탄을 쏘았다. 당내 비노계를 중심으로 혁신위 구성에 대한 불만이 나온 데 대한 반박이다. (☞관련 기사 : '김상곤 혁신위'에 호남·비노 반발)
최인호 부산 사하갑 당협위원장은 "저와 가까운 곳부터 혁신을 찾겠다"며 "가까운 곳은 사람도, 관행도, 제도도 될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소위 '친노'라면 그에 개의치 않겠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노무현의원실 비서관, 참여정부 청와대 부대변인 등을 지내 친노계로 분류된다. 최 위원장은 "일반인들이나 당내 일부에서 얘기하는 친노의 문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혁신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이동학 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 당의 '종이(페이퍼) 당원'이라는 존재는 당애 애정을 갖는 당원들을 비웃고 있다"며 "'종이 당원' 명부를 당장 불태워야 한다"며 당원 명부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당원 명부 문제는 새정치연합 뿐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정당들이 가진 고질병 중 하나다. 당직자 대표 격인 이주환 당무혁신국 차장은 "10여년간 당직 생활을 하며 보고 듣고 느낀 문제점을 가감 없이 말하겠다"고 했다.
정치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고민도 나왔다. 우원식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활동 경험을 강조하며 "정치적 민주화 세력이 50년 만의 정권교체의 주역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에는 경제민주화 세력, 현장에서 민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국민과 호흡해 온 인재들이 당으로 모일 수 있게 해서 민생 위기 10년을 끝낼 주역을 만들고 키우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춘숙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23년 동안 여성운동을 하며 약자·소수자와 함께 살았지만, 아무리 정책 대안을 내고 개별적으로 소리를 질러도 되는 게 없어 '정치가 문제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은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보면서 자치와 분권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국민의 생명·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는 국가가 될 것이라 느꼈다"며 "자치와 분권의 가치를 정확히 구현해 내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3시간 회의 끝 '향후 일정', '논의 과제' 논의…구체 논의는 "다음 회의에서"
혁신위 대변인을 맡은 정채웅 변호사는 회의 결과에 대해 "오는 15일 새정치연합 최고위원들과 상견례를 갖기로 했다"면서 "혁신안을 마련하는 과정과 실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각 의제별로 순차적으로 얘기해 보름에 하나씩 한 분야별로 혁신안을 발표하고 관철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브리핑 후 기자들과 만나 "(혁신안 내용이) 심도 있게 논의된 것은 아니고, 어떤 분야를 어떤 방식으로 논의할 것인가 논의 주제와 방식에 대해서만 얘기했다"며 "구체적 내용은 얘기를 못했고, 다음 회의 때 분야별로 자세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은 향후 일정, 논의할 의제, 혁신안 실천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고, 다음 회의에서는 당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혁신안의 대강을 논의해 보기로 했다"며 '일정·의제만 논의했는데 회의 시간이 왜 3시간 이상 걸렸나?'라는 질문에는 "위원들 각자가 생각하는 혁신 방안을 각자 다 얘기하다보니 길어졌다"고 했다.
혁신위가 차후 다룰 의제는 당의 정체성, 리더십, 조직구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공천제도 개혁이다. 그러나 혁신위에서 가장 먼저 논의될 분야는 당 정체성과 리더십 등 정당개혁 과제가 될 확률이 높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당무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서 "혁신위는 먼저 정당혁신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을 만들 것이고, 그 힘을 바탕으로 공천혁신, 정치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혁신위 공동대변인인 임미영 위원장은 "공천과 관련해서는, 원혜영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위원회(공천혁신단)도 있었기 때문에, 그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도 논의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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