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존엄한가?" 누가 내게 물으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사람의 존엄이 지켜지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대답을 망설일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의 가슴이 그토록 참담하게 무너져 내렸던 것은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이렇게나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생생히 목도해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 자체가 바닥에 뒹구는, 아무리 세상이 망가져도 무너지지 말아야 할 최소한 선마저 모조리 무너져 내린 느낌이라고 할까.
4.16 이후의 세상은 달라야 한다는 말들이 터져 나왔던 것은, 그렇기에 한탄이 아니라 의지와 구체적 실천을 담은 선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었다. 4.16 참사가 응집시켜 터뜨린 대한민국의 민낯을 목도한 이들이 고통스러운 성찰을 통해 걷어 올린 가치 하나는 '인권'의 회복과 확장이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0일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제안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는 4.16 참사 이전과 단절하고 다른 사회를 열어가기 위해 우리 스스로의 존엄을 선언하자는 운동이다. 우리가 빼앗긴 권리,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풀뿌리 토론을 올 한 해 전국적으로 벌이고 이를 바탕으로 오는 2016년 4월 4.16인권선언을 선포하려는 계획이다. 나는 이 인권선언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인권', '선언'이라는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4.16 이후 달라질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란 질문 앞에 '인권'을 고민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이면서 가장 강력한 실천을 요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을 말하기는 쉽지만 지켜가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적 시스템을 잘 쌓고 유지·발전시킬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권의 가치를 수시로 꺼내어 재확인하고 인권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그 후퇴는 매우 심각한 수준에,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수년간의 역사에서 목도했다.
단원고 10반 고(故)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 씨는 "이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줄 알았는데 4.16참사 이후에 죽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자식들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는 것만 잘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렇게 먹고 사는 일에만 골몰하는 사이 정작 우리 '사회'는 내 자식들의 목숨을 사지로 몰아넣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나아갔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돈 앞에서 저울질 당하고, 부패와 비리는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부정의를 문제제기할 민주적 소통구조는 작동하지 않고, 그러한 결과 한국은 어디를 가도 안전함을 보장받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이때 안전함이라는 것은 비단 '사고를 당하지 않거나 사고에서 구조될 안전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올해 4월에 있었던 <금요일엔 돌아오렴> 경주 북콘서트에서 만난 한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그이는 부산에서 아이의 아토피를 고치기 위해 대도시가 아닌 경주로 이주해왔다고 말했다. 생협에 가입하고 먹거리와 생활환경을 바꾸니 아이의 아토피는 줄어들었다. 그러던 중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그이는 경주에 있는 월성원전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인식했고, 두려움을 느꼈다. '안전'한 곳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지은 지 30년이 넘는 노후 핵발전소와 멀지 않은 땅이었던 것이다. 경주에는 핵발전소에 이어 핵 폐기장까지 들어설 계획이 수립되었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그이는 반핵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4.16 세월호 참사를 마주한 것이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밀양을 살다> 기록에 참여하면서 만났던 밀양 주민 구미현 씨의 이야기가 겹쳐서 떠올랐다. 구미현 씨도 병을 고치기 위해 대도시 부산의 삶을 정리하고 밀양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주했다. 깨끗한 밀양의 자연은 구미현 씨에게 건강한 몸과 마음의 여유를 선물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을 누린지 고작 3년 만에 마을 뒷산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76만5000 볼트의 초거대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특별하고 드문 사례가 아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는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곳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한 삶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있거나, 아주 운이 좋으면 된다. 그런데 그 어느 쪽도 민주적으로 사회시스템이 발전된 사회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스템에 기대지 못하고 각자도생하는 것이 장려되는 사회는 이미 '공동체'라 부를 수 없다.
4.16 인권선언은 가장 먼저 '안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것을 요청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이어진 투쟁과 연대의 경험 속에서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의 문제로 참사에 대한 인식을 확장했다. '내 아이의 안전'은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지킬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취약한 개인이나 집단에 위험을 떠넘기거나 방치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희생을 발생시킨다. "죽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김현동 씨의 말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만이 모두가 안전해지는 길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정의와 인권 같은 공존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행복하고 존엄한 삶을 이루는 길임을 만나는 이들에게 당부한다. 4.16 인권선언은 그렇게 우리가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될 원칙과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원리에 대해 깨닫는 이야기다.
4.16 이후의 달라질 세상은 그 토대를 튼튼하게 쌓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4.16인권선언을 향해 가는 풀뿌리 토론을 통해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 세월호 참사에 연루되었는지를 촘촘히 밝히기를 바란다. 정치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당연하게 여기거나 외면해왔던 것들을 낯선 것으로 꺼내어 놓고 새롭게 공부하고 토론하기를 바란다.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존중되어야 하는 가치와 권리,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을 함께 찾고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참사 앞에서 느꼈던 참담함이 무력감에 머물지 않도록, '잊지 않겠다','달라지겠다'는 약속의 말이 껍데기만이 아닌 알맹이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모여 '인권'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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