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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 그 긴 시간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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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 그 긴 시간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기고]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사회적 쓰나미랄까? 대한민국이라는 5000만 인구를 실은 한 척의 배가 세월호 참사라는 파도에 휩쓸린 후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처음 대한민국호(號)는 작은 풍랑이라고 가벼이 여기고 닻도 밧줄도 챙기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세월호 참사는 풍랑이 아니라 태풍임을,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킬 수도 있는 쓰나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호는 이 거대한 사건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쓰나미를 피하지 않고 전면에 서서 싸운 사람들이 있다. 쓰나미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세월호 유가족, 그리고 아직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조차 불리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 그들이 이 거대한 사회적 재난에 맞서 피해자 구조, 진상 규명, 사회적 안전 대책을 요구하며 하루하루 싸워 왔다. 우리는 곁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눈물 흘리고, 분노하고, 서명하고, 광화문과 광장으로 나갔지만, 전사(戰士)는 그들이었다. 이 책은 그들이 왜 진도대교를 건너 청와대로, 국회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꼬박꼬박 세금 내면 나라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정치권력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는지 알려준다.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생명처럼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존재하고 있는 일상은 삶도 죽음도 아닌, 굳이 표현하자면 삶과 죽음이 겹쳐져 있는 시간이다. 살아있지만, 세월호와 함께 잃어버린 자녀의 기억 속에 머물며, 다른 세상에서 자녀와 만날 날을 꿈꾼다. 사랑했던 아이와의 소소한 추억, 들어주지 못한 아이의 소망, 떠나기 전 아이가 남긴 단편적인 말과 행동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가족들은 아이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오래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아이의 방을 치우지 않은 사람들도, 주변의 권유로 아이의 흔적을 지운 가족들도 모두 저녁이 되면 학교에서 또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린다. 아이가 지나다니던 길을 걸을 때나 동네 이웃 사람들을 만날 때, 즐겨 찾던 음식점 앞을 지날 때 가족들은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아이의 음성을 듣는다. 아이는 세월호와 함께 떠났지만, 여전히 가족들 곁에 있다. 가족들이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부모들의 슬픔과 분노, 그리움의 서사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비

1년, 그 긴 시간의 의미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처벌은커녕 반성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왜곡된 소문만 무성해지는 탓일까?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무심한 사람들 앞에서 '슬픔을 멈추지 않을 권리'를 부르짖는 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구술자들은 도대체 사건이 왜 발생했고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존심을 지키며 오순도순 살아오던 그들에게 2014년 4월 16일은 자기 생의 의미를 완전히 전복당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날의 사건과 이후의 삶은 그들에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필자는 세월호 가족들의 경험이 기록되고 읽히고 전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과 아이들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의미의 구성이 그것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의 배가 우리 눈앞에서 서서히 침몰해갔고, 살릴 수 있었던 수십 분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가라앉는 배 속에 갇힌 아이들에게 '탈출하라'는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 그 날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304명의 생명을 잃고도 말단 관료 몇 사람을 구속하는 것으로, 탐욕스런 선주(船主) 한 사람을 탐정 놀이 하듯 뒤쫓는 것으로 진실을 덮으며 흘러간 1년. '해피아'라는 말은 떠올랐지만 그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고 진상 규명 위원회는 아직 소집도 되지 못한 채 흘러간 이 시간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정부가 사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하고, 사건의 진행 과정에 속수무책이었으며, 진상 규명을 회피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아직 세월호 참사와 아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2014년 4월 16일은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국민의 눈앞에서 생중계되었던 날, 돈과 권력과 지위를 사고 팔아온, 야합으로 얽힌 정계와 재계, 관료들의 동맹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오합지졸(烏合之卒)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생생하게 드러났던 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1년은 세월호와 함께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의 죽음이 남겨진 이들에게 던져준 숙제를 풀어가려는 고민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구술자인 건우 엄마 노선자 씨, 미지 아빠 유해종 씨, 승희 엄마 전민주 씨와 언니 승아 씨, 소연 아빠 김진철 씨, 호성 엄마 정부자 씨, 창현 엄마 최순화 씨, 지성 아빠 문종택 씨, 수현 아빠 박종대 씨, 채원 엄마 허영무 씨, 준우 엄마 장순복 씨, 세희 아빠 임종호 씨, 다영 아빠 김현동 씨, 제훈 엄마 이지연 씨는 이런 고민과 노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모두 같은 방향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진도에서부터 청운동, 광화문, 국회, 그리고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의 크고 작은 도시들까지 뛰어다녔던 적극적인 부모들도 있지만, 몸이 아프고 직장을 다녀야 해서 대책위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있는 곳, 하는 일은 달랐지만, 그들의 기억은 모두 4월 16일에 머물렀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엄마, 아빠를 간절히 부르며 숨을 거두었을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에 있었다.

배꼬리만 남았을 때 사실 절반은 희망이 없었어요. 부모니까 희망을 가졌지만 '저런 상태에서 살 수 있을까?'…. 사흘째, 배꼬리가 거의 안 보였어요. 나흘째,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죠. 그때도 사람들은 에어포켓 얘기를 했어요. '저 암흑 속에 승희가 있구나' '저 바다 속에 내 새끼가 있구나' 그런 생각만 하고. 깜깜한 바다를 바라보며 울기만 했어요…. 내 새끼가 죽었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구나…. 그러면서 죽지도 못하고 배꼬리만 바라보다 왔어요. 아무도 승희를 지켜주지 않는데 나는 따라 죽지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죠. 엄마라는 사람이 그랬어요.(신승희 학생 어머니 전민주 씨 이야기, pp.70-71)

소연이 장례식 끝나고 바로 죽어버리고 싶었어유. 한밤중에 24시간 편의점에 가서 소주 대여섯 병을 마시고 정신을 잃어버린 적도 있어유. 길바닥에서 자고 있으면 119 구급차가 와서 실어다주고, 다시 또 실어다주고 그랬어유.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살 의욕이 없었어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대책이 없어유. 머리에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어유. '아, 이러다간 안 되겠다'혀서 분향소에 나가기 시작했어유. 가족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맘이 편하고 좋더라고유. 내가 열심히 해줘야 딸내미가 우환이 좀 줄 것 아녀유. 지도 그렇게 가서 얼마나 억울하겠시유. 거기다가 아빠까지 맨날 술 먹고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딸이 걱정이 많을 것 같아유. 어떻게 누가 죽였는지 알게 해줘야지. 그걸 못하면 아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열심히 하고 있어유. (김소연 학생 아버지 김진철 씨 이야기, pp.103-104).

가라앉는 배 안에서 생명을 잃어갈 딸을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라는 사실이 고통스러워서, 꽃다운 어린 아이가 왜 그렇게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알려주는 것이 아빠의 도리라는 뒤늦은 깨달음 때문에, 가족들은 노숙농성을 하고 성명서를 돌리고 구술을 해 왔다. 그렇지만 가족들의 삶이 다시 온전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슬픔과 분노, 우울과 절망을 떨쳐버리기에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5월 15일. 사고 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못 올라온 사람들이 스물두명이었어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혹시나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이 자기일까봐 다들 공포에 떨었어요. 체육관에서 한사람 한사람 줄어가는데 그 마음은 표현할 수가 없어. 초조하…, 딸이 유실됐나, 인원이 줄어드니까 머릿속이 온통 다 그런 생각밖에 안 나. 막상 내 딸이 나왔는데 나머지 유가족을 못 보겠더라고. 그날 미지 데리고 오는데 그간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더라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 사람들이 어깨 툭툭 치면서 축하한다고 그래. 근데 거기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냐고, 그 상황에서.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 씨 이야기, pp.52-53).

아이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라, 죽은 아이를 찾지 못할까봐, 모두가 떠나간 진도체육관에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웠다는 이야기는 구술자 대부분의 공통된 경험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가 퉁퉁 불어버린 시신으로 돌아온 부모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조심스럽게 주고받아야 하는 이 기막힌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때문에 가족들은 살아있지만, 그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사람들을 생존자와 사망자, 실종자로 나누고 그들의 가족을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으로 구분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족들 모두 '생존자'로 불러야 할 것 같다. 한계를 넘는 비인간적 상황 속에서 견뎌왔기 때문이다.

승희 보내고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인생에 즐거운 것도 없고, 삶에 의욕도 없고, 사람들도 싫고. 사람들은 위로라고 하는데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안 들려요…. 일도 진작 그만뒀어요. 장례 치르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면 좀 나아지겠지 하고 나갔는데 오산이더라고요. 이틀 나갔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내가 죄인 같아서 밥을 먹는데도 눈물이 나오고. 어휴 저게 자식 죽었는데 저렇게 잘 먹나 그렇게 손가락질할까봐 겁도 나고…. 아는 사람이랑 마주치기도 싫어서 출퇴근 시간에는 문 밖으로 나가지도 않아요. 옆집에서 문소리 나면 신발장 앞에까지 나갔다가 멈취서고. 애들이 그렇게 죽은 게 우리 부모 책임은 아니잖아요. 자식이니까 부모가 죄인이 되는 거지만 사실은 국가책임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싫더라고요.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 씨 이야기, pp.76-77).

우울함이 가득한 승희엄마 전민주 씨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오히려 이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의 죽음이 그들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여행 기대에 들뜬 아이의 가방에 과자를 챙겨주고 용돈 만원이라도 더 주려고 몇 번씩 망설였던 부모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 여행길 나서는 아들딸에게 선생님이랑 어른들 말씀 잘 따르라고 당부했던 부모의 탓이 아니라는 것.

책임은 다른 곳에 있다. 낡은 배를 불법적으로 개조하고 마구잡이로 짐을 실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은 감독기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전혀 안전을 지킬 능력과 책임의식을 갖추지 못했던 해경과 안전행정부, 대형사고 앞에서도 통일된 지휘체계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던 총리와 장관들, 구조보다는 비용과 기득권 수호에 분주했던 관료와 경찰 그리고 기업가들, 여러 차례 지시를 내렸다지만 현장에선 전혀 통하지 않았던 청와대의 통솔력, 아직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 '대통령의 일곱 시간' 등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너무 많다.

세월호의 유가족과 실종자가족은 그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웠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유가족과 실종자가족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세월호가족'이며 한국사회의 '시민'이 되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남의 일을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밀양이든 쌍용자동차든 사회문제가 됐던 것들. 나는 그들의 외침에 하나도 관심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사건의 한가운데 있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들도 똑같이 그렇겠구나 싶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변한 게 별로 없고. 80년 광주도 결국 10년, 20년 가고…. 이 일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 되겠고, 또 누군가의 엄청난 희생이 있어야겠고, 외면도 있겠고…. 그들이 주는 떡고물 하나에 움직이고 고마워하며 작고 평범한 국민들은 그러고 살아가는 거구나…. 너무 너무 큰 것과 싸워야 하는 것 같아요.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의 이야기, pp.231)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 위에 있다.

<매일미사>에 나오는 묵상글 중에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지금 여기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을 보여줄 것"이라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그래,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해야겠구나. 힘들어도 기운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또 멈춰서는 거예요. 그럼 세상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살아서 '수장'을 당해야 했던 내 아이는, 아니 아이들은 소중한 삶을 이유 없이 빼앗겼는데 그건 뭔가. 팽목항이라는 지옥의 공간에서 울부짖었던 부모들에게 제발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까.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의 이야기, pp.232)

그렇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니 계속해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던 수많은 생명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지금까지 팽목항과 광화문, 청운동, 여의도, 그리고 세월호 집회와 간담회에서 보냈던 긴 시간들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세월호가족들, 생존자들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그 가혹한 시간의 고통도 언젠가는 열매를 맺으리라는 것, 그 열매는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빛이 되리라는 것,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또 기억하리라는 것, 그런 것들이 아닐까. 그런 의미화(意味化)를 위해 우리는 세월호 가족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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