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원 오브 뎀' 사건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영원히 기억하는 사건으로 만들려는 것은 다시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이와 비슷한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들이나 비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건을 엄청난 참사로 키운 세력, 사건 발생 뒤 해결 과정에서 참사를 들먹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정치 세력들은 물론 세월호 참사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 즉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는 후안무치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진상조사특별위원회, 양식 있는 지지 국민 간의 갈등은 어찌 보면 하루라도 이 사건을 빨리 잊고 싶어 하는 쪽과 영원히 기억하려는 쪽과의 가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권과 '묻지 마. 따지지 마'식 박 정권 지지자들은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세월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경제 살리기와 민생에 매진해야 하고, 유가족들은 고통을 훨훨 털고 일어나 생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유가족이나 모든 국민의 바람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충족돼야 할 것들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가동할 수 있게끔 하는 시행령안 제정과 시행이 최우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부처, 새누리당 등 누구도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으려 한다. 고집불통 수준이다.
도로 포장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자동차가 씽씽 달릴 수 있을 터인데 곳곳에 싱크홀이 생기고 움푹 파인 도로를 고치지도 않은 채 '빨리 달려라'고만 재촉한다면 큰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 딱 이러하다.
그나마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기로 한 것은 제대로 된 시행령 제정과 특별위원회 가동과는 별도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물론 아무 탈 없이 하루빨리 배를 정상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것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가정해놓고 그 후속 조처도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물론 이는 특별위원회가 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기념관+박물관+안전 체험관 등 다목적 안전 역사 공간으로 만들어야
세월호 인양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자 세월호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우석훈 같은 이는 세월호를 기념관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월호를 기념관 구실뿐만 아니라 안전 박물관, 안전 체험관 등 다목적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하고 제안한다. 이런 일을 모두 하는 데에 세월호 선체만으로는 공간이 좁다면 인양한 세월호 옆에 세월호와 어울리는 모양새의 다른 건축 공간도 함께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세월호가 인양된다면 인천이든, 안산이든 부두에 정박해두고 그 인근을 안전 체험 공간, 안전 배움 공간, 추모 공간이 어우러지게 하여 코흘리개 어린이부터 초·중·고등학생, 어른 가릴 것 없이 이곳에 언제라도 찾아오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손 대대로 대한민국에서 절대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가 왜 벌어졌으며, 어린 학생 등 승객들이 숨져갈 때 국가는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참사 후 정치 세력들과 국민 사이에서 어떤 갈등과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낱낱이 기록한 기록물과 영상물, 유품 등을 이들 공간에서 전시하여야 한다. 희생자들의 사진뿐만 아니라 당시 참사에 관여한 인물과 위기관리를 부실하게 한 책임자 등을 대통령부터 장관, 선장, 선주 등에 이르기까지 얼굴들을 낱낱이 관람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이런 형태의 세월호 공원이 조성된다면 자신의 치적만 내세우려 하고 치부는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감추려 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장(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공원은 한마디로 안전을 소홀히한 사회 지도자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소통의 광장이며, 안전의 중요성을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달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우뚝 설 것이다. 이는 정치적 이념과 보수 진보를 모두 뛰어넘는 일이다.
세월호 공원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큰 안전 참사들을 모두 보여주어야
세월호 공원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일어났던 굵직굵직한 안전 사건들, 예를 들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서해 훼리호 침몰 참사 등과 같은 사건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물들도 함께 보여주고, 안전과 생명 관련 각종 회의와 학술 세미나 공간도 마련하자. 물론 세월호 참사처럼 당시 책임 있는 당사자들을 빠짐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을 정해 안전을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한 소방관이나 자원봉사자, 민간 의인들에게 상을 주는 일과 함께 세월호 백서를 만드는 일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는 정부에 맡겨서 될 일은 결코 아니다. 세월호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각계각층의 여론을 고루 모으고 위험 관리, 위험 소통, 사회학, 법학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백서편집위원회를 꾸려 2015년의 대한민국 국민과 미래의 주역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또 해마다 4월을 안전의 달로 정해 세월호 관련 동영상이나 다큐멘터리 상영, 재난 영화 상영·연극 상연, 세월호와 재난 관련 만화 웹툰, 애니메이션 제작·배포, 재난 역학과 재난 사회심리학, 재난 정신 의학 등의 학술대회와 심포지엄, 안전 경진대회, 안전과 생명과 관련한 정책·제도 개선 토론회 등도 이루어져야 한다.
1950~1960년대 일본 미나마타에서 일어난 유기수은에 의한 미나마타병을 다루는 미나마타학이라는 것이 있다. 전 세계 환경 보건이나 환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오면 이 비극의 공해병인 유기수은 중독 집단 사망 사건이 일어난 미나마타(水俣)에 한 번은 들른다고 한다. 세월호 공원이 있는 곳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의 안전·위기 관리 관계자들이 자연스레 들를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꿀 필요가 있다. 세월호와 관련한 각종 문제를 다루는 학회가 자연스레 생기는 것도 기대해본다.
세월호 참사는 아픔의 역사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아픔과 고통의 굴레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 될 것이다. 만약 박근혜 정권이 진정 국민의 슬픔을 알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앞서 제안한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대의를 택해야 한다. 그 길로 가는 첫걸음은 유가족의 눈높이에 맞춘 시행령 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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