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5일 오전 8시 30분경 "현재까지 확진 환자가 생긴 원인은 의료기관 내 감염으로, 지역사회에 전파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확진환자 접촉자 및 의심환자에 대해 물 샐 틈 없이 촘촘히 (방역망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책"이라고 했다. 지난 3일 청와대가 첫 확진환자 발생 14일만에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결론을 내린 것과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인 것이다.
문제는 "의료기관 내 감염"을 "물 샐 틈 없이 촘촘히" 막는데 이미 실패했다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는 오후 3시 20분경 "D병원(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 양성자가 더 나올 수 있다"고 시인했다. 청와대는 "물 샐 틈 없이 촘촘히" 막는다고 하는데, 이 발언 이후에도 전혀 사태가 진전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초기 방역 실패에, 의료기관 내 감염 방지도 실패했다. 지역 사회 전파, 4차 감염 모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 잇따르지만, 의료 기관 내 감염도, 3차 감염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이름 공개는 여전히 불가 입장이다. 이미 폐쇄된 평택성모병원 이름만 공개하고 내원 환자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16일만에 전수조사다. 그나마 다른 병원들은 전수조사 얘기가 없다.
신뢰 추락 1 : 보건복지부의 헛발질
서울시가 나섰다. 복지부의 설명을 토대로, 3차 감염이 확인된 삼성서울병원 A의사가 의심 증상 및 확진 판정이 나오기 전, 대규모 행사에 두 차례나 참석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오버'라는 지적도 있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달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자체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장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시의 발표로 인해, 복지부가 그동안 35번째 환자의 활동 내용을 숨겨왔던 것이 드러났다. 복지부는 "서울시에 (환자가 참여한 행사 관련 자료 등) 협조 요청을 해 놓고 있었다"며 서울시의 비협조를 비판했지만, 지난 1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나온 사실을 일정기간 발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같은 태도는 더 많은 시민들을 불안감 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초동대응이 미흡"했다는 질타를 받은 상황이다. 일종의 '경고장'이다. 무능으로 일관하다 서울시의 선제적 대응에 뒤통수를 맡게 된 셈이다. 이런 복지부를 믿어야 했던 국민은 41명의 환자 발생 상황을 손가락으로 세면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신뢰 추락 2 : 새누리당의 헛발질
청와대와 한몸으로 움직여야 할 새누리당은 심지어 4일, 의료진 3차 감염이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러 전문가 의견을 청취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이 병원 의사 A씨의 3차 감염 확진 환자가 된 것을 복지부가 확인한 시점은 지난 1일이다. 3일간이나 쉬쉬했다.
4일 오전 해당 병원장은 새누리당의 전문가 긴급간담회에 참석해 "현재 방역대책본부의 격리 정책이라든가 이런 게 효과적으로 이용이 된다면 전파 고리가 끊어질 것이다", "시기가 언제가 될까가 중요하고 학교가 휴교하는 것도 큰 논리가 없다", "현재 확인된 메르스 확진 환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 경우라면 감염될 일이 없다"고 했다.
'틀리다'라고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같은 발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는 차고 넘친다. 만약 지난 1일 이 병원에서 의료진의 확진 사실이 곧바로 공유됐다면, 새누리당은 해당 병원장을 전문가 간담회에 불렀을까?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나온 인사의 발언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일까?
이런 사소한 해프닝들이 쌓여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프레시안>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언제까지 이를 숨기고 있었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도 든다. <프레시안>은 A의사의 3차 감염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지만 (☞관련기사 : [단독] 삼성서울병원 의사 메르스 확진, 정부 '은폐' 의혹) 정부는 뒤늦게 이 사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아 국민적 불신은 더욱 커진 셈이 됐다.
신뢰 추락 3 : 청와대의 헛발질
청와대의 대응은 어떤가? 청와대는 첫 확진 환자가 발생지 14일만에 '메르스 대응 민관 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민간 전문가 3인의 면면을 보자. 박상근 대한병원협회장,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간호사협회가 빠지고 병원협회가 유일하게 참석한 데 대해 뒷말이 나왔다. 예방 전문가나 방역 전문가도 없었다.
의료 산업과 병원 경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병원협회장은 "현 메르스 상황에 대해 아직 무차별 지역사회 전파가 아니라 의료기관내 감염이므로 필요 이상으로 동요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같은 발언의 신뢰성은 어느 정도 확보될까?
오히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인에 대해서는 정보공유가 중요하고 보건당국에 이를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공식적인 정보제공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특단의 대책이 실행되지 않을 경우 국민과 의료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보건당국에 병원명 공개를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병원협회보다 의사협회의 의학 지식이 떨어질까? 그렇지 않다.
병원협회만 청와대 TF에 포함된 현 상황과 "병원명 공개는 득보다 실이 크다"고 주장하는 청와대의 입장 간 상관관계가 없을까?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는 "병원명 공개로 인해 의료 산업 전반이 충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한 '초청받지 못한' 의사협회는 '의료 영리화 문제'로 인해 지난 2013년부터 청와대와 수년째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초청받지 못한 것은 그때문일까?
병원계의 입장만 반영하는 듯한 청와대의 '민관 합동 TF(태스크포스)'는, 오히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내렸다. 청와대가 입맛에 맞는 전문가들만 불러 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여론은 "병원이 손해보는 것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많아야 수십개에 불과한 병원명을 공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다수의 병원은 철저하게 관리되니 안심하고 찾으라는 확신을 주면 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통령이다. 지난 16일간, 정부의 무능을 '셀프 질타'한 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하는 '깜짝쇼'를 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신뢰'가 지금,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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