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아직 지역사회에서는 퍼지지 않았다. 대유행의 조짐을 말하기도 이르다. 하지만 국민의 공포는 사실상 대유행 수준이다. 마스크가 동이 났다. 엄청난 숫자의 학교와 유치원 등이 문을 닫았다. 아예 혹시나 자신의 병의원에 메르스 환자가 찾아와 낙인이 찍힐까 문을 닫는 의료기관도 있다. 치명적 감염병의 대유행을 연상케 하는 현상들이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3차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등 정부의 발표가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이 되면서 시민들의 정부 신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인터넷에서는 메르스 환자를 진료한 병원 명단이 일부 오류가 섞인 채로 돌아다니고 있다. 또 메르스 예방 등과 관련해 엉터리 처방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계속 유포되고 있다. 메르스의 공기감염 여부와 관련해 일부 국내 전문가들이 그 가능성을 이야기한데 이어 외국 전문가까지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이를 전면 부인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고 있으며 국민 불안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에스엔에스(SNS)와 일부 언론에서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일반 국민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문답식으로 풀어보았다.
메르스, 신종플루와 같은 전형적 공기감염병은 아니지만 준공기감염병으로 취급해야
◇ 메르스 바이러스 최초 발견자인 이집트의 전문가가 공기감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는 국내 보도가 있는데 불안하다. 그런데 정부는 아니라고 한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전문가들 사이에 위험(메르스)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다를 때 일반인들은 더 위험하게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확대와 관련한 광우병 파동 때 이미 경험했다. 정부가 말하는 공기 전파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는 신종플루처럼 전형적인 공기 전파 감염병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첫 환자가 같은 병실에서 밀접하게 접촉하지 않은 다른 병상의 환자, 또 같은 병실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도 전파했다. 따라서 바이러스를 왕성하게 배출하는 환자가 공기 중으로 이를 퍼트릴 때는 밀접접촉이 아니더라도 준공기전파, 즉 탁 트인 공간이 아니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밀폐공간이나 좁은 공간(병실, 엘리베이터 등) 내에서는 감염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더욱 정밀 역학조사를 벌여야 확실하겠지만 사전예방 차원에서 준공기감염병으로 취급하고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길거리와 넓은 사무실 등 트인 공간에서는 설혹 주변에 환자가 있다 하더라도 1~2미터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는 등 밀접접촉하거나 악수하지 않는 이상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중동에서 이루어진 연구조사 결과 낙타 헛간의 공기 중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해서(검출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임) 공기감염과 바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다.
◇ 어린이를 둔 부모로서 메르스 확산이 걱정이 된다. 언론 보도에서는 어린이들이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와 노약자, 기존 질환자는 각종 유해독성물질과 감염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왔는데 어떤 것이 맞는가?
=메르스가 어느 특정 연령층에 대해서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거나 덜 작용한다는 것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바이러스는 대개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더 잘 감염을 일으키고 이 경우 질병의 예후도 나쁜 것이 일반적이다. 노인들과 천식 등 호흡기 질환자를 포함한 기존 만성질환자 등이 더 잘 감염되고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메르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감염병에 공통된 이야기다.
메르스의 진원지이며 최다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에서 어린이 환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바이러스 숙주인 낙타 등과 어린이 접촉이 적은 등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있는 것 같고,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주로 병원에서 2차, 3차 전파가 이루어져 메르스 환자나 감염자와 접촉한 어린이들의 절대 수가 적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우려스러운 지역사회 전파가 현실이 될 경우 어린이는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관리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한국인은 메르스에 약하다(?)-“낭설에 불과”
◇ 한국인들이 메르스에 취약하다는 일부 보도가 있던데 정말인가? 2003년 사스가 세계적인 대유행을 할 때 한국인들에게서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은 것은 김치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지 않은가? 메르스 바이러스와 사스 바이러스는 사촌지간이라는데 어떤 것이 맞는가?
=아프리카 흑인과 적도 인근 주민들 가운데 말라리아(원충)에 저항하기 위해 적혈구를 낫 모양(이 때문에 겸상적혈구빈혈증이란 유전질환에 걸리기도 함)으로 만드는 진화 적응을 한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감염병은 그런 사례가 없다. 인종에 따라 감염병 저항력에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느 인종이 강하다거나 약하다고 말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김치를 많이 먹어 한국인은 사스에 강하다는 속설도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도 없고 증명하기도 어렵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메르스에 취약하다는 이야기도 현재로서는 전혀 근거 없는 풍문에 불과하다.
◇ 애초 정부가 메르스는 사망률은 40% 정도로 매우 높은 편이지만 전파력은 낮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거꾸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이 진실인가?
= 정부가 메르스 발생 초기에 밝힌 메르스 관련 정보는 어디까지나 중동국가에서 나온 자료를 옮겨놓은 것이다. 중동국가와 우리나라에서 발생해 전파되는 메르스의 양상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사망률과 전파력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사망률은 발생국가의 의료수준과 환자 조기 발견 정도 등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직접 죽이는 약제나 백신은 아직 없지만 조기에 발견할 경우 위험상황으로까지 진행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이 있는 환자나 노약자의 경우 매우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메르스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 이런 분들은 특히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 메르스 환자를 주변에서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만약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기침을 하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가?
=기침은 여러 요인에서 비롯한다. 기존 폐렴 등 호흡기질환이 있거나 감기, 독감 환자들이 기침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도 증상이 심할 경우 잦은 기침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독감이 유행하지 않기 때문에 가까이서 기침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일단 의심하는 자세를 가지고 서둘러 피하는 것이 좋다.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손으로 가리고 하는 것이 최악, 차라리 그냥 해라
◇ 기침을 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손으로 가리라는 말을 하던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고 최악의 방법은?
=최악의 방법은 손으로 막고 기침을 하는 것이다. 만약 메르스 환자나 감기(독감) 환자가 그렇게 하면 손에 엄청난 양의 바이러스가 묻게 될 것이다. 그런 손으로 문고리를 만지거나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를 만지게 될 경우 나중에 이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만지게 되면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성이 높다. 트인 공간에서라면 차라리 그냥 재채기나 기침을 하는 것이 더 낫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손수건이나 옷소매로 가리고 기침과 재채기를 하는 것이며 집으로 돌아와 즉각 세탁해야 한다. 앞으로 손 씻기의 생활화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기침·재채기 바로 하기도 습관화해야 할 것이다.
◇ 바셀린을 바르면 메르스 예방효과가 있다고 하는 정보가 인터넷과 에스엔에스에 마구 떠돌아다니던데 정말인가? 좋은 예방법은 없는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평소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다. 면역력을 강화해주는 특정 음식은 없고 4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평소 운동을 해 체력을 기르는 것이 좋다. 또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과로·과음·흡연을 삼가는 것이 좋고 숙면을 취하는 것도 각종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 만약 몸에 고열이 있고 기침이 나면 어디를 가야 하나? 보건소에 가야 하나. 아니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하나?
=지금은 메르스에 대한 경각심을 모든 의료기관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좋다. 다만 이 의원, 저 병원 식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금물이다. 병원에 갈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악수하거나 가까이서 대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는 메르스뿐만 아니라 감기나 독감 등으로 의심될 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담화문(기자회견)과 사과 필요…왜 공익광고를 하지 않는가?
◇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메르스 예방법으로 낙타고기를 익혀 먹고 낙타유를 함부로 마시지 말라고 게시했다고 하는데 왜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정보를 버젓이 올려놓았는가?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동국가에서 필요한 정보를 그대로 올려놓았다가 미처 이를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물론 이런 정보는 혹 일반인들이 중동에 갔을 때 지켜야할 수칙일 것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부정확하거나 비현실적 정보 등을 빨리 재점검해야 하는데 정부의 위해(위험) 소통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매우 미흡한 것 같아 안타깝다.
◇ 국민이 이렇게 불안해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기자회견이나 담화문 발표 등을 통해 총력 방역 의지를 밝히고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로 인한 확산과 관련해 직접 사과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왜 즉각 대대적인 공익광고 등을 통해 시민들이 주의할 점과 행동요령, 당부할 점 등을 소통하지 않는가?
=그렇다. 이런 매우 위험한 감염병이 확산될 때는 국가 지도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매우 아쉽다. 불필요한 유언비어나 ‘괴담’을 잠재우고 메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협조, 즉 의심자와 접촉한 사람에 대한 자택 또는 시설 격리에 협조하는 일 등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보태야 메르스 유행을 저지할 수 있다. 감염병 대응은 전쟁이다. 임진왜란 때 관군과 의병이 힘을 합쳐 왜적을 물리쳤듯이 지금 당장 수백억 원을 들여서라도 공익광고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리스크 메시지를 불안에 떠는 국민에게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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