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기자회견을 자청했겠습니까? 자칫하면 4.3 진상규명과 화해와 상생의 정신이 물거품이 되게 생겼습니다."
제주4.3중앙위원회 위원인 임문철 신부는 대단히 심각한 어조로 최근 4.3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토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와 이선교 목사 등 13명이 4.3중앙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한 63명에 대해 희생자 결정을 무효로 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보는 듯 했다.
문제는 4.3특별법 주무부처이자 피고로서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행정자치부가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선임조차 하지 않은 채 뒷짐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원고를 지원하는 보수단체는 서울지역 로펌을 소송대리인으로 꾸리고 전문 변호사 3명을 투입, 치밀하게 대응하고 있다.
임문철 신부는 "그동안 일부 보수단체나 명망가들이 제주4.3에 대해 공격을 해 왔지만 지금처럼 집요하게 4.3을 흔들려고 한 적이 없다"며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신부의 말처럼 보수단체의 4.3흔들기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보수단체는 2009년 4.3특별법 제2조 2호에 규정된 '수형자 등에 대한 희생자 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4.3위원회가 결정한 희생자 1만3564명 중 1540명에 대한 결정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4.3위원회를 상대로 2차례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또한 4.3위원회의 희생자 결정과 관련해 행정소송 2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2건의 국가소송(민사)을 제기하는 등 지금까지 6건의 소송으로 국가 차원의 4.3희생자 결정 및 명예회복 활동 자체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2012년 3월 대법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 등 일부 보수인사들이 제기한 제주4.3희생자 결정무효 확인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사법당국이 제주4.3 흔들기 시도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3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보수단체는 이번엔 소위 '불량위패'론을 꺼내들며 4.3 희생자 재심을 요구하더니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것이다.
그 당시와 현재 박근혜 정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부의 태도다. 당시 보수단체가 제기한 6건의 소송은 행자부가 소송대리인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아예 소송 대응은 커녕 오히려 보수단체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4.3유족은 물론 제주도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임 신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보수단체들이 헌법소원심판과 행정소송, 국가소송 등 총 6건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 보수단체들이 패소했다"며 "4.3특별법에 근거해 구성된 4.3위원회가 법률이 정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희생자를 결정한 것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이 법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임 신부는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며 "67주년 4.3추념식에 앞서 제주를 방문했던 행정자치부 차관이 보수단체의 주장과 일치하는 '희생자로 결정된 몇몇 분들에 대해 재심을 해야 한다'는 4.3특별법에 위배되는 발언을 했다"고 정부 태도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또 임 신부는 "소송 당사자이자 피고인 행자부는 소송 대응에 가장 중요한 변호사 선임조차 하지 않은 채 공무원에게만 소송업무를 맡겨 놓고 있다"며 "지난 4월23일 1심 공판이 진행됐지만 변호사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됐고, 4.3중앙위원회에 재판 진행사항에 대한 보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행자부가 소송에 소홀히 대응해 희생자 결정을 무효화하라는 판결이 난다면 해당자의 위패를 치우고, 각명비에서 이름을 지우고, 무덤을 대신해 유족들을 위로해주고 있는 행불인 표석을 없애야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2000년 4.3특별법 제정, 이후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 진상조사보고서에 근거한 대통령의 사과까지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진실과 화해, 상생의 공든 탑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임 신부는 "보수단체가 주장하는 것은 희생자 결정 무효 하나만이 아니"라며 "희생자 결정 무효화를 기점으로 정부의 4.3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고, 4.3평화공원, 대통령 사과, 4.3특별법까지 고치려 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임 신부는 "오죽하면 4.3중앙위원 신분인 제가 기자회견을 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자칫하면 제주4.3의 진상규명과 화해, 상생 모두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임 신부는 "행자부는 이제라도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며 "제주지역 시민사회 역시 범도민대책위를 꾸려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단체가 제기한 4.3희생자 무효 소송 2차 공판은 오는 7월16일 열린다. 지금의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는 제주사회의 여론을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