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먼저 눈물을 뿌렸다. 구천을 떠오는 4.3영령들을 모시는 고유 의식 그 자체였다.
한라산 자락에 뿌옇게 내려앉은 안개는 최근 희생자 재심사 문제로 심란한 유족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 했다.
박근혜 정부를 대표해 제67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이완구 국무총리는 "정부는 제주가 산업·교육·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동북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자유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위령행사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불참,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제67주년 4.3희생자추념식이 4월3일 오전 10시 안전행정부 주최, 4.3평화재단 주관으로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이완구 총리를 비롯해 원희룡 제주도지사,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 등 각계인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됐다.
추념식에 앞서서는 오전 9시10분부터 위령제단에서 불교,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4대 종단 성직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종교 추모의례가 진행되기도 했다.
날씨가 변수였다. 우여곡절 끝에 추모식이 야외에서 열리긴 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날 새벽까지만 해도 강풍이 몰아치며 미리 설치했던 천막들이 쓰러지고 날아가면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제주도는 이날 오전 6시까지 현장 상황을 주시하며 실내 행사로 전환할지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다행히 바람이 잦아들면서 유족 1만여 명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
궂은 날씨로 주요 인사들도 위령행사에 지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오전 10시 위령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준비에 자리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이날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김학용 비서실장, 김영우 대변인, 이진복·최봉홍·유의동 의원 등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할 예정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빠듯하게 시간을 맞췄다. 문재인 대표와 주승용·오영식·정청래 최고위원, 4.3특별법 제정의 산파 역할을 했던 추미애 의원, 제주출신 강창일·김우남 의원도 한자리에 모였다.
이 외에도 정의당 천호선 대표 등 국회의원 의석수를 가진 3개 정당 대표가 모두 참석해 4.3영령과 유족, 제주도민을 위로하는 한편 4.3의 완전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지원을 약속했다.
위령제가 진행된 한라산 자락에는 안개가 짙게 깔렸다. 67년의 기다림 끝에 국가행사로 위령행사가 진행됐음에도 희생자 재심사 문제로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 판 까닭인지, 가랑비까지 흩날리며 유족들의 눈물과 뒤섞인 듯 했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4.3 관련단체와 경우회 등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을 건의했음에도 이뤄지지 않아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먼저 단상에 오른 정문현 제주4.3유족회장은 인사의 말씀을 통해 "아직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며 "유족을 대표해 그 동안의 4.3으로 인한 낡은 이념 갈등을 끝내고 화해와 상생의 장으로 나와 달라"고 제안했다.
정 회장은 "정부도 과거 국가폭력의 잘못에 대해서 새로운 갈등보다는, 치유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최근 희생자 재심사 논란을 자초한 정부에 쓴 소리를 건넸다.
원희룡 도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올해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진정한 4.3해결의 시점으로 생각한다"며 4.3문제 해결의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원 지사는 먼저 "국가 기념일 지정의 후속조치로 4월3일을 전후해 '제주특별자치도 4.3추념기간'을 공식적으로 지정, 운영함으로써 도민 공동체의 추모·관용·화합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겠다"며 '공동체적 관용정신'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어 그는 "4.3유적과 기록유산의 국가 및 국제적 공인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올해 시작된 4.3평화상을 세계적인 상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민통합과 세계평화의 가치 구현'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원 지사는 또 "자라나는 아이들이 민족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주도하는 미래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 하겠다"며 미래 세대 교훈 전승의 원칙을 견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원 지사는 "앞으로 지속적인 추가 진상조사와 더불어 희생자 및 유족 파악을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4.3평화재단에 연구조직을 신설하고 희생자 상설신고 시스템을 법제화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이완구 총리는 추념사를 통해 "4.3의 아픔은 잊혀지지 않는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 가운데 하나다. 4.3희생자 영전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며 4.3영령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 총리는 "정부는 그동안 특별법을 제정해 4.3 사건의 진실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앞으로도 4.3으로 희생된 분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모든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과거의 시대적 아픔을 이겨내고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총리는 "특히 올해는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라며 "제주4.3평화공원 조성, 남북교류협력사업, 그리고 제주평화포럼 정례화 등을 통해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여기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도 큰 뒷받침이 되고 있다"면서 "작년에는 1200만명이 넘는 내·외국인 관광객이 제주를 찾아왔으며, 풍력발전 등 청정산업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4.3사건에 대해서는 "어느덧 67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4·3의 아픔은 잊혀지지 않는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 가운데 하나"라며 "앞으로도 4·3으로 희생된 분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총리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은 것과 관련해 "이제 우리는 과거의 시대적 아픔을 이겨내고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의 추념사를 끝으로 '갈등과 반목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제주의 평화마음 세계로·미래로'를 주제로 한 추념식이 끝나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4.3유족들은 궂은 날씨 속에도 헌화와 분향을 하며 67년 전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간 4.3영령들을 위무하며 영면을 기원했다.
국가추념식으로 치러진 이날 위령행사는 제주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에서도 3~4일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전 국민적 추모의 정을 모아내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도쿄(4월18일)와 오사카(4월19일)에서도 추도행사 및 위령제가 열릴 예정이다.
한편 이날 추념식 진행 과정은 KBS제주방송총국을 통해 30분간 전국으로 생중계 됐다. 제주MBC, JIBS, 제주KCTV는 도내에 생중계 방송했고, 제주CBS라디오는 음성으로 67주년 4.3희생자추모식 전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제주의소리> 역시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추념식 진행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렸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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