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 헤쳐 겨우 찾던 곳, 안내판은 세워졌으나 허전함이...
문준영 기자 moonsoyo@jejusori.net 2015년 04월 02일 목요일 07:5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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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총체적 모순' 간직한 다랑쉬굴 20년만에 주변정비…다른 유적지는 '요원'
4.3 67주기를 이틀 앞둔 1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 다랑쉬오름. 제주시만 해도 요란스러울 정도로 화창했던 날씨가 이 근방에 들어서자 순간 차분해졌다. 안개가 밀려왔고 싸늘함 마저 느껴졌다.
"예전엔 풀숲을 헤치고 밭담을 넘어서 가던 곳인데… 세월이 많이 변했네요."
다랑쉬굴을 찾기 위해 기자와 동행한 최희영 제주4.3연구소 사무국장이 먼 발치에서 오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4.3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이 곳만 수십 차례 찾은 그였다. '다랑쉬굴'이라고 뚜렷이 적힌 표지판을 따라가보니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이어졌고, 새로 단장한 주차공간이 나왔다. 들꽃에 둘러 쌓인 오솔길을 따라 걷기를 몇 분. 눈 앞에 그 곳이 나타났다.
다랑쉬굴. 누군가에게는 떨리는 이름이고, 누군가에게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의 장소다. 1992년 4월, 구좌읍 중산간에 있는 이 굴에서 4.3희생자 유해 11구가 발견되면서 제주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참혹하게 몰살당한 모습 그대로 발견된 시신들은 초토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 12월 18일 당시 9연대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로 밝혀졌다.
4.3 당시 여느 마을처럼 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주민들은 야만적인 토벌대를 피해 깜깜한 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9연대 등 토벌대가 굴 입구에 지핀 연기에 질식해 모두 숨졌다. 굴을 발견한 토벌대는 처음엔 입구에 수류탄을 던졌으나, 그래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선택한게 연기였다.
이 참혹한 역사의 현장과 그 진실은 4.3연구소와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에 의해 40여년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다랑쉬오름 동쪽 해발 170m에 위치한 곳. 수직형으로 직경이 60cm.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입구. 발견 당시에는 수풀이 우거져 제대로 찾기조차 어려웠다. 4.3의 총체적 모순이 응축된 매우 상징적인 공간인데도, 이러한 상황은 그 후로도 20년가량 계속됐다. 2013년 전까지는 반듯한 표지판 하나 세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곳이 4.3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특히 발견 이후의 과정 때문이다. 4.3을 대하는 당국의 석연찮은 태도가 드러났다. 유해 11구는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곧바로 화장장으로 옮겨진 뒤 바다에 뿌려졌다. 이 과정이 석연치않았다.
매장이 아닌 화장으로 결정된 것도, 유해의 화장장 이동이 갑자기 앞당겨져 취재진과 도의원들이 그 현장을 놓친 것도, 유해를 뿌릴 유족들과 함께 배에 올라타려는 취재기자를 경찰이 가로막으려 한 것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어쩌면 4.3이 여전히 '금기'를 강요받았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는 의혹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당시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장이었던 양조훈 제주도교육청 4.3평화교육위원장은 최근 펴낸 책 <4.3 그 진실을 찾아서>에서 2011년 추가 취재를 통해 당시 '유족대표'를 맡았던 이가 사실은 유족 신분이 아님을 밝혀냈다. 직계가족도 아닌데다, ‘6촌으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정인의 의도에 휘말렸거나, 아니면 '보이지 않은 손'의 움직임에 동조했다는 두 가지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막으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랑쉬굴 유해 처리 과정이 일본 유력지 <요미우리 신문>에 크게 보도됐고, 같은 해 6월 10일 제주교육대학에서는 '다랑쉬굴 4.3희생자 추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후 대학 동아리별로, 관심있는 이들끼리, 시민사회에서 이 곳을 계속 찾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제주민예총 주관으로 이 곳에서 해원상생굿이 펼쳐졌다.
사실 최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다랑쉬굴은 웬만한 전문가가 동행하지 않으면 찾기 힘든 장소였다. 풀숲이 우거진 데다 제대로 된 표지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4.3유적지 순례를 목적으로 혹은 역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곳을 찾으려는 사람들끼리 그들만의 표식을 해둬야 했다. 지금도 다랑쉬 굴 근방에는 땅에 박힌 쇠꼬챙이 위에 빈 물병을 거꾸로 꽂아놓고 천으로 두른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누군가 근방에서 다랑쉬굴을 찾지 못한다는 급한 전화가 4.3연구소로 걸려오면 '거꾸로 꽂힌 물병을 찾으라'고 조언을 해주기 위한 일종의 나침반이다.
최희영 사무국장은 "예전에 '도저히 다랑쉬 굴을 못찾겠다'는 전화가 오면 휴대전화를 오랜 시간 서로 붙잡고 '시멘트길이 끝나는 곳에서 몇 미터 앞으로 가라', '돌 계단을 찾아라'는 식으로 대화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세월은 변했고 이 곳도 점차 모습을 갖춰갔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제주도에서는 2013년 가을 약 1700만원을 들여 인접 도로를 정비하고 주차공간도 마련했다. 이제는 표지판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고, 밭을 가로지르는 대신 오솔길을 몇 백 미터만 걸으면 된다. 내용이 다소 짧은게 아쉽지만, 현장의 의미를 풀어 설명한 안내판도 설치돼있다.
주변 정리에는 행정당국 뿐 아니라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도 힘을 보탰다. 2013년 유족청년회는 진입로 입구에 안내표지판과 디딤돌을 설치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이후 정기적으로 풀베기 작업을 벌이며 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2005년 제주도는 제주4.3유적지 보존.복원 종합정비계획을 통해 19곳을 '우선 정비해야 할 곳'으로 선정했다. 물론 다랑쉬 굴도 여기에 포함됐다. 하지만 정비가 완료된 곳은 8군데뿐. 2011년부터는 아예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국비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4.3평화공원의 3단계 사업이 마무리되면 이들 19곳 정비사업에 약 6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제주도 측에 밝힌 바 있다. 그때까지는 급한대로 도비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데,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감안한다면, 국비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앞으로 60억~70억원은 더 있어야 19곳에 대한 정비가 마무리될 수 있다"며 "국비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최희영 사무국장은 "제주의 모든 4.3 관련 장소를 보존하거나 복원할 수 없다면 그 중에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몇 군데는 잘 정비해놓을 필요가 있다"며 "다랑쉬굴도 앞으로 이 상태로만 잘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다랑쉬 굴을 뒤로하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 최 사무국장이 또 다른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어떻게 하면 4.3 유적지 정비가 완벽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던 참이었다.
"사실 그게 어려운 게 대부분 사유지 위에 있어요. 안덕 '큰넓궤'(4.3영화 '지슬'의 주요 무대) 있죠? 얼마 전 그 근방을 방문해보니 한 대형 레저기업에서 '해당 지역의 분묘들을 이장해달라'는 안내판을 세운 걸 봤어요. 그 땅을 구입한 거죠. 혹여나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그곳으로 가는 경로를 막아버린다든지, 통과할 수 없게 해버리면 손 쓸 도리가 없는거죠. 그래서 이게 참 쉽지 않아요. 모든 곳을 다 매입할 수도 없는거구요."
67년이 지났지만 4.3의 '완전 해결'을 위한 기다림은 이렇게 길다. 그의 고민거리가 완전히 사라질 날은 언제일까.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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