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미일 군사동맹이 한층 강화된 데 대한 반작용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국방비 대폭 증액을 추진하고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 사출 실험을 하는 등 미일의 군사 압력에 대응하는 모습입니다. 반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종말단계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도입 요구의 수위를 높이는 한편 한일 군사동맹 현실화도 압박하고 있습니다.
6자회담 및 9.19 공동성명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대가 높았던, 꼭 10년 전의 상황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현재의 동북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더욱 짙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특히 당시 외교 협상을 주도하며 한반도 평화만들기의 주역이었던 한국은 이제 미일 대 북중의 군사 대치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단한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외교안보적 위기 상황에 대한 자각이 우리 정치권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 측의 반응은 지난 <프레시안 뷰 84호(4월 30일)>에 전해 드린 바 있습니다. 향후 3년간 매년 4백억 달러 규모의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지난달 중국을 다녀온 군사전문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대미 협상에 의한 갈등 방지를 추구해왔던 중국은 첫째 한국의 사드 배치 움직임, 둘째 미국과 필리핀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 체결, 마지막으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에 대해 크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대외 정책에서 군부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군사비 대폭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 편집장은 안보 위협에 대한 최상의 대비책은 "누가 뭐래도 국방비 증액이다. 힘에는 힘으로 맞받아칠 수 있는 국방력을 보유한 것 이상으로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국방비 증액은 예견된 대응이라는 것입니다.
(☞관련 기사 : "한반도 사드 배치, 중국 뒤통수 맞았다 생각")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8일 SLBM의 수중 사출 시험을 했고 다음 날 이를 공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SLBM 기술이 아직 초보 단계이고 무기화되려면 5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내 언론은 "킬체인도, 사드도 소용없게 됐다"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SLBM 시험은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대한 나름의 대응조치라고 지적합니다. 비록 허장성세일망정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일종의 무력시위라는 겁니다. 또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적어도 당분간은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미협상을 모색하기보다는 군비 강화에 의한 내부 단속 쪽으로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합니다. 어차피 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협상의 가능성이 줄어든 만큼 군비 강화를 통해 북한 주민을 결속시키는 한편 미일에 대해 자위력을 과시하겠다는 얘깁니다. 김종대 편집장이나 정세현 전 장관 모두 북한이 앞으로 (SLBM 발사에 필요한) 3천톤급 잠수함 개발, 또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각종 무력시위를 통해 남측을 위협하고 북측 주민을 결속시키려 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실제로 일본 <교도통신>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이 되는 오는 10월 10일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또한 북한은 21일로 예정됐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 방문을 불과 하루 전에 무산시켰습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반 총장의 19일 발언에 대한 반발로 분석됩니다만, 사전 합의된 유엔 사무총장의 방문을 전격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심화에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북한은 군비 강화를 통해 체제의 생존을 도모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습니다.
한편 한국에 대한 미국의 사드 도입 요구는 한층 거세지고 있습니다. 18일 서울을 방문한 케리 미 국무장관은 용산기지의 주한 미군 장병들에게 "우리는 모든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드와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하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프랭크 로즈 국무부 군축·검증 담당 차관보는 19일 워싱턴에서 "미국은 사드를 한반도에 영구적으로 배치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제임스 윈펠드 합참 차장도 전략문제연구소(CSIS) 강연회에서 "미국은 사드의 한국 내 배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제까지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 국방 분야 인사들에 한정됐던 사드 발언에 국무부 인사들이 가세한 것에 주목합니다. "미국은 (오는 6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거쳐 올해 10월에 서울에서 열릴 한미연례안보회의(SCM) 때 사드 배치를 본격 협의하거나 최종 결정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그토록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드 배치를 한국이 받아들일 경우 한중 관계는 커다란 시련을 겪을 것이 분명합니다.
한편 <한겨레> 20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오는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양국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만일 성사된다면 2001년 6월 이후 4년만입니다. 나아가 회담이 열릴 경우 양국간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일 군사동맹이 현실화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한국의 부정적 태도로 실제 협의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합니다만,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강력히 원하는 미국의 압력을 한국이 뿌리칠 수 있을지 의심이 듭니다.
미국과 일본은 자신들의 국익과 국가적 목표에 따라 군사동맹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해 동아시아에서의 기존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죠. 미일의 군사적 압박에 중국이 대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일은 중국 견제를 위해 '북한 위협'을 동원합니다. 중국을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북한의 군사 위협 때문에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한다는 논리죠. 협상의 길이 막힌 북한으로서는 군비 강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한때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이라크의 후세인, 핵개발을 포기하고 서방과 관계 정상화를 했던 리비아의 가다피가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 일, 중, 북 모두 자신들의 대외정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의 외교 목표는 당연히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현재의 한국 외교는 이러한 외교 목표를 제대로 추구하고 있는가? 대답은 '아니다'인 것 같습니다. 그저 '북한 도발로부터 한국의 보호'라는 낡은 망령에 갇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있는 형국입니다. 과도한 '대미 예속'이 한국을 안보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한겨레>의 한 칼럼은 최근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북한의) 모험주의와 (한미의) 안보장사를 싸잡아 비판했습니다.
"모험주의는 일차적으로 북쪽 체제의 경직성에 원인이 있다. 항상 위기와 대처능력을 과장해 보여줌으로써 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극장국가의 속성상 선택의 여지가 좁은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간 미국·한국 등 관련국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풀고 평화구조를 만들어가기보다는 대결을 추구하고 자신의 의제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모험주의와 안보장사)
일리 있는 비판이긴 하지만, 저는 한반도 정세 불안의 근본 원인은 미일의 과도한 군사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는 우리 입장에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 갈등 상황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인식을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정세의 악화를 막는 첫 걸음입니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가 논의되는 마당에 국정원이 첩보 수준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설'을 공개하고 대통령이 이를 바탕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이달 말 샹그릴라 대화를 주관하는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팀 헉슬리 아시아지부 이사가 한국 정부는 올해도 참석 의사만 밝히고 연설은 하지 않겠다고 통지했다며 "한국은 국가안보 정책을 설명할 좋은 기회를 내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 국방부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어려움 때문이라는 설명을 해왔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정책적) 입장이 있을 것 아니냐"며 "만일 없다면, 그건 내가 다 걱정되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낯 뜨거운 일이고,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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