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에어 차이나 보잉기가 이슬라바마드 창공에 진입했다. 국빈 자격으로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시진핑의 전용기였다. 파키스탄은 하늘에서부터 영접에 나섰다. 중국-파키스탄이 합작한 JF-17 전투기 다섯 대가 호위무사가 되어 비단길을 깔아주었다. 각별하고, 깍듯했다.
시진핑은 파키스탄 최대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형제의 집을 방문하는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나와즈 샤리프(Nawaz Sharif) 총리는 양국의 우정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며, 꿀보다 달콤하고, 철보다 강하다"며 장단을 맞추었다. 그로서는 학수고대하던 방문이었다. 21세기 파키스탄의 재건을 위해서도, 2018년 그의 재선을 위해서도 중국의 선물 보따리가 간절했다.
시진핑은 파키스탄 역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연설하는 외국 정상의 영예를 얻었다. 답례로 '1+4' 협력의 청사진을 밝혔다. 1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을 일컫는다. 경제회랑은 一帶(일대)와 一路(일로)를 잇는 중추이다. 파키스탄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기점으로 삼은 것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이렇게 빗대었다.
"일대일로가 萬國(만국)이 참여하는 교향곡이라면,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은 그 교향곡의 전주곡이 될 것이다."
4는 네 가지 사업을 지칭한다. 과다르(Gwadar) 항, 에너지, 인프라, 산업 공단 순이다. 이 4대 사업에 중국이 투자하는 비용은 460억 달러, 우리 돈으로 50조 원이다. 일국에 대한 투자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경제회랑이란 신장에서부터 아라비아 해에 자리한 과다르 항까지를 도로와 철도, 송유관, 광섬유 케이블 등 온/오프라인으로 연결하는 계획이다. 총 거리 3000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사업이다. 그럼에도 15년, 즉 2030년까지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경제회랑은 양국의 연결망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서부를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와 연결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과다르-카슈가르(Kashgar) 철도는 중앙아시아의 철도망 증설로 이어질 것이다. 카슈가르에서는 키르기스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Andijan)까지 연결된다. 그곳에서 다시 카스피 해와 코카서스 지역까지 이어진다.
도로도 못지않다. 히말라야를 통과하는 1300킬로미터 카라코람(Karakoram) 고속도로는 수리, 확장할 계획이다. 카라치(Karachi)와 라호르(Lahore) 간에는 6차선 1240킬로미터 고속도로가 새로 깔린다. 덩달아 라호르, 카라치, 라왈핀디(Rawalpindi) 등 파키스탄 지방 도시들의 교통망도 향상될 것이다.
에너지 프로젝트도 중요하다. 파키스탄은 만성적인 전력 부족에 시달려왔다. 지금도 하루에 절반 가까이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 여기서도 중국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일단 2018년까지 150억 달러 규모로 1차 화력 발전소를 건설한다. 2018년 이후에는 180억 달러 규모로 2차 화력 발전소를 짓는다. 두 번을 합치면 파키스탄의 전력 공급량이 현재의 두 배로 증가한다.
화력 발전소 지원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청정 에너지 사업도 동시에 펼치기로 했다. 수력, 태양광, 풍력 발전소도 만든다. 제룸(Jhelum) 강의 수력 발전소는 2020년부터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다. 그간 파키스탄의 사회 불안은 상당 부분 전력 부족에 기인했다. 앞으로는 중국산 전력으로 생활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샤리프 총리의 재집권 전략이다.
2008년 미국 의회에서 승인된 파키스탄 지원금은 70억 달러였다. 일단 규모에서 차이가 크다. 그것도 대부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 안보 지원이다. 게다가 그 내실을 따지면 무기 재고 처분이 상당하다. 파키스탄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여 국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중국형 상부상조(Win-Win)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실제로 파키스탄 국민들의 중국 호감도는 80%까지 치솟았다. 반해 미국은 15%에 그친다. 미국과 서방은 글로벌 테러리즘의 온상이 된 파키스탄을 '실패 국가'로 낙인찍기 일쑤였다.
물론 중국의 시혜가 일방적 일리 없다. '철의 형제'는 역사적 산물이다. 파키스탄은 비공산권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국가들 중의 하나였다. 양국이 국교를 수립한 해는 1951년이다. 보답으로 중국은 핵무기 등 민감한 기술을 전파해 주었다. 한때는 중국의 아시아-아프리카 원조의 3분의 1이 파키스탄으로 향하기도 했다. 냉전기 제3세계에 대한 중국의 관대함을 선전하는 전시장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21세기 실크로드의 첫 삽을 뜨는 모델하우스가 되었다. 중국개발은행과 중국공상은행 등은 금융을 지원하고,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들은 인프라 사업을 펼치는 첫 번째 훈련장이 된 것이다. '철의 형제'는 '전천후 동반자'가 되었다.
과다르 항 : 남아시아의 허브
경제회랑 건설의 백미는 과다르 항이다. 과다르 항에 이르기 위해서 3000킬로미터의 연결망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략적 가치가 크다.
일단 과다르-신장의 송유관은 아프리카와 중동의 가스와 석유를 중국에 공급하는 바다의 지름길이 된다. 말라카 해협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현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 비용은 절반으로, 시간은 3분의 1로 줄어든다.
철도와 도로 또한 중국과 중동을 잇는 내륙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해양과 대륙, 일대와 일로를 잇는 거점에 과다르 항이 자리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잇는 축이기도 하다. 30억 인구의 시장 통합에 파키스탄이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과다르 항은 시진핑의 방문에 맞추어 개장했다. 하지만 그 잠재력이 만개하는 것은 국제 공항이 완공되는 2017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회랑이 완성되는 2030년에 극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40년간 항만 운영권을 확보해 두었다. 16억 달러를 더 투자하여 국제 공항을 신설하고 항만과 연안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도 건설할 계획이다.
여기에 최근 발표한 이란과 파키스탄 간의 가스관도 과다르 항을 통과하도록 했다. 장기적으로는 과다르 항 일대를 남아시아의 자유무역지대로 만들 계획이다. 동북아의 홍콩이나 동남아의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허브 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동반 성장'한다.
실제로 신장은 황해보다 아라비아 해가 더 가깝다. 우르무치에서 보면 상하이는 카라치보다 두 배나 더 멀다. 그래서 신장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경제회랑이 완성되는 2030년대가 되면 중화 세계와 이슬람 세계는 신장을 통하여 (재차) 직통하게 될 것이다. 중화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협력하면 할수록 과다르 항은 번창할 것이며, 파키스탄 또한 번영을 구가할 것이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이미 파키스탄의 최대 무역국이 되었다. 2007년에서 2014년 사이 교역량은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역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환점이었다. 경제회랑 건설로 이 추세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광저우, 상하이, 선전, 이우 등 동부의 연안 도시에도 파키스탄 상인들이 속속 등장했다.
20세기 영국이나 미국에서 활약하던 파키스탄 디아스포라들이 구대륙으로 이주하여 '중국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카슈가르와 광저우에서 열리는 무역 박람회에도 번갈아 참여하고 있다. 당장은 의류와 가정용품 등 소규모 일용품에 편중되어 있지만, 경제회랑이 발족하면 그 풍경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다.
파키스탄 상인들도 중화 세계와 아랍 세계의 연결자가 된다. 본디 파키스탄 일대는 고대부터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의 교차점이었다. 장건(張騫)이 파키스탄에 달한 것은 자그만 치 2000년도 전이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은 안보적 함의도 크다. 파키스탄의 정치적 안정은 신장으로까지 파급을 미친다. 신장 위구르 자치주의 분리주의자들이 활동비를 구하고 군사 훈련을 받는 곳이 파키스탄 북서부 와지리스탄(Waziristan) 주와 아프가니스탄이기 때문이다. 즉, 신장을 독립시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이들의 거점이 파키스탄이었다.
이들은 소련 해체 이후의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과 같은 독립 국가를 염원한다. 2013년 톈안먼 광장 테러의 배후이자, 2014년 쿤밍 기차역에서 일어난 칼부림의 주역이었다. 그들의 방침은 중화 세계와 아랍 세계의 연결망을 끊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교통망을 테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운남성의 성도 쿤밍 또한 동남아로 향하는 연결망의 축이었다.
중국판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는 담을 쌓고 벽을 세우는 쪽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다. 중국은 길을 닦고 망을 엮어 중화-아랍 네트워크를 복원하려고 한다. 유럽형 세계 체제(Inter-State System) 이전의 유라시아형 세계 체제(Trans-State System)를 재건하고 갱신하는 최전선에 우루무치-과다르 항 경제회랑이 있는 것이다.
유라시아몽
시진핑은 이슬람 국가 중 유일한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을 들린 이후에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곧 국제 사회로 복귀하여 '보통 국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이란에는 이란-파키스탄 가스관을 지원하기로 했다. 즉, 테헤란-이슬라바마드-자카르타-우루무치를 크고 넓게 연결하여 이슬람세계와 중화세계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쌓아둔 국부를 십분 활용하여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공재를 이슬람 세계에 제공하려는 것이다. 기독교-이슬람의 문명 충돌과는 일선을 긋는 문명 간 연합의 탐색이다.
이슬람 세계만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시진핑이 이슬라바마드를 방문하기 이틀 전,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파키스탄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최초로 합동 군사 훈련에 합의했다. 또 러시아는 이란에 방공 미사일을 수출하기로 했다. 즉 '보통 국가화'하고 있는 이란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국가들은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등이다.
고쳐 말해 이란의 정상 국가화란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거두고 '역사의 종언'(서구화, 민주화)의 막차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서로는 터키, 북으로는 러시아, 동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파키스탄 및 인도 등과 협동하여 '유라시아 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류는 제도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군사 안보적으로는 상하이협력기구이며, 경제적으로는 일대일로이다. 상하이협력기구는 확대일로이다. 7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정상 회의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란, 터키까지 두루 아우를 기세이다.
유라시아의 (재)통합은 비단 중국몽에 한정되지 않는다. 로마 제국 때부터 내려온 유러피언 드림이기도 하다. 중국발 일대일로에 미국과 유럽의 반응과 대응이 사뭇 다른 기저라고도 하겠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과 한무제의 서역 원정을 계승하여 유라시아의 大一統(대일통)을 처음으로 완수한 이가 '13세기의 사나이', 칭기스칸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가 마침 몽골의 울란바토르이다. 칭키스칸 광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마르코 폴로 라운지'에 앉아 있다. 게다가 거리 이름은 '서울의 거리'이다.
'서울의 거리'에 있자니 서울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북방인은 세계를 아래로 내려다본다. 동아시아가 왼편에 있고, 유럽이 오른쪽에 있다. 유라시아가 한 눈에 조감되고, 한 손에 잡힐 듯하다. 절로 신라와 페르시아가 이웃사촌처럼 보인다. 나라별로 토막 났던 국사들이 하나의 지구사로 합류한다.
그러자 한반도의 남/북과 우크라이나의 동/서도 겹쳐 보인다. 하나의 세계 속에 한반도의 위치가 또렷하게 포착되는 것이다. 하여 동북아에서 미일 대 중러의 신냉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허황한 구도에도 말려들지 않을 수 있다. 오식과 오인이 오판을 낳는다. 동북아의 局地(국지)에 함몰되어 유라시아의 大局(대국)을 놓쳐서는 곤란하겠다.
신냉전은 천부당만부당이다. 신냉전과 탈냉전의 갈등이다. 유라시아의 (재)통합을 추구하는 세력과 유라시아의 분할과 분열을 꾀하는 세력 간의 길항이 있을 뿐이다. 유연한 視座(시좌)의 확보가 사활적이다.
5월 9일, 전승 기념일 70주년을 울란바토르에서 지켜보았다. 목하 유라시아의 時勢(시세)를 상징하는 각별한 행사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70주년의 의미를 '北方(북방)'에서 조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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