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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후예'들이 '민주주의 투사'로 둔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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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후예'들이 '민주주의 투사'로 둔갑하다

[유라시아 견문] 우크라이나 : 신냉전과 탈냉전

신냉전 : 역사의 반복

우크라이나를 살피노라면 기시감이 거듭 인다. 20세기의 온갖 積弊(적폐)가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경제는 수렁이다. 2014년, 국내총생산(GDP)은 7.5% 감소하고 물가는 20% 상승했다. 정치 불안으로 해외 투자도 대폭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허나 IMF 개입이 독배라는 점이 더욱 큰 문제이다. '쇼크 독트린', 재난 자본주의가 재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IMF는 언제나 선봉대였다. 1970년대 남미부터 1990년대 동아시아까지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다. 새천년에는 아일랜드와 그리스를 '부채 식민지(Debt Colony)'로 만들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새 영토로 삼았다. 의례 구조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농업 조항이 눈에 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번째 옥수수 수출국이자 5번째 밀 수출국이다. 비옥한 흑토 덕에 천혜의 곡창 지대를 가졌다. 그 풍요로운 국부의 원천이 생명공학 기업들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넘어가고 있다. 승자는 예상 가능하듯, 몬샌토와 듀퐁이다. 2014년 이후 몬샌토는 14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투자했다.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착착 진행됨으로써 농경지를 손쉽게 탈취할 수 있었다.

쿠데타로 쫓겨난 전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ich)가 결사코 막고자 했던 사태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를 '세계화의 덫'에 빠트리고, 농업 기반을 외국 자본에 팔아넘기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삽시간에 전개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실상은 엉뚱하게 알려지고 있다. 비난의 표적은 IMF가 아니라 러시아와 푸틴이다. 서방의 오래된 기만책이 기막히게 먹혀들었다. 매체를 동원한 여론 조작이다.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은 그곳 주민들의 '민주적인' 의사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착시가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그만큼 서방은 선전 선동에 능란하다. 아무런 물증을 제시하지 않고도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 또한 결코 낯선 풍경만은 아니다. 거짓 정보를 흘려 이라크를 침략하고 석유지대를 탈취했던 예전의 악습과 상통한다.

선전 선동은 우크라이나에서도 기승이다. 러시아를 공산주의에 빗대는 시대착오가 만연하다. 곧 전면적 반공주의를 관철시키는 새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정보기관은 이미 공산당 당수 표트르 시모넨코(Pyotr Symonenko)를 체포했다. 이유가 가관이다. 러시아를 방문해 TV 인터뷰에 응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악취가 풍긴다.

이쯤에서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촉발한 유로마이단 운동의 기원을 추적할 필요가 있겠다. 70년을 거슬러 오른다. 1945년 5월, 독일이 패망했다.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는 나치를 추종하는 일군의 무리가 남았다. 소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연합(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 OUN)이다. 이들은 패전 후에도 소련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1949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서자, 해외로 거점을 옮겨 우크라이나 '해방'을 위해 전복 활동을 계속했다.

서방, 특히 미국은 이 조직을 적극 활용했다. 지도자 미콜라 레베드(Mykola Lebed)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나치 협력의 이력은 문제 삼지 않았다. 소련에 맞설 냉전의 전사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연구 기관과 출판사를 차려주었다. 반공, 반소적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도록 물심으로 지원했다. 라디오 방송을 하고, 반공 강연을 다니고, 신문과 책을 발행했다. 이른바 '문화 냉전'의 전위였다.

이처럼 OUN은 미국의 보호 아래서 수십 년간 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고취해왔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역사도 교묘히 고쳐 썼다. 반소/반공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면으로 친나치 전쟁 범죄의 흔적은 슬며시 지워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이들이 대거 우크라이나에 진입했다. 망명자들이 집필한 역사 교과서도 우크라이나로 반입되었다. 나치즘에서 배양되고 미국에서 숙성되었던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고스란히 전파된 것이다.

이들은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민주화'의 허울 아래 세(勢)를 더욱 키워갔다. 그리고 10년 만에 '민주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몰아내는 민간 쿠데타에 성공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친나치 시절의 반러시아, 반유태주의를 재차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다. 러시아인과 유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동부를 상대로 내전을 추동하고 있다. 전체주의와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 20세기의 병폐가 집약되었다.

멀찍이서 흡족한 나라는 미국이다. 유럽과 러시아를 다시 갈라 침으로써(Devide and Rule) 유라시아의 재통합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의 전장으로 더욱 끌어들일 태세이다. 그리하여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소진시키고 궁극적으로 '체제 전환'을 도모한다.

러시아의 소위 '자유주의'적 반체제 인사들은 이 大局(대국)을 좀체 간파하지 못한다. '민주 대 독재'라는 흘러간 노래만 부른다. 지금 푸틴이 물러서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전철을 밟게 된다. 자국의 자원은 헐값에 넘어가고, 중앙아시아마저 덤으로 바치는 꼴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KGB에서 잔뼈가 굵은 푸틴은 좀체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왕년의 얼치기 자유주의자 옐친처럼 어리숙하지 않다. 이미 민스크(Minsk) 합의를 주도함으로써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AP=연합뉴스

탈냉전 : 역사의 반전

푸틴과 보조를 맞춘 이는 독일의 강골, 메르켈이다. 그녀도 미국의 흑심을 좌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극우 세력을 은밀히 지원하여 군사적 개입을 도모하는 호전책을 방관할 수 없었다. 미국의 군사 지원이 시작되면,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교전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제3차 세계 대전의 양상이다.

게다가 미국은 NATO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참전할 것이다. 고쳐 말해 독일마저 휘말려 들어가는 것이다. 탈냉전 이후 최악의 위기였다. 하여 수작을 부리기 전에 선수를 쳤다. 서둘러 모스크바와 키에프로 날아간 까닭이다. 그래서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마주앉아 중지를 모아냈다. 물론 민스크 협정은 미봉책이다. 하더라도 상징성은 대단하다. 미국을 배제함으로써 동유럽의 정전과 안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은 점점 더 미국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여 러시아가 서방의 봉쇄로 고립되어 있다는 진단 또한 좀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서나 통하는 그릇된 통념이다. 오히려 푸틴이 독일에 제안했던 대유럽(Greater Europe) 구상에 대한 호감이 갈수록 늘고 있다.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유라시아 고속철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독일의 기술력과 러시아의 자원과 중국의 시장을 커다랗게, 또 촘촘하게 엮어내는 것이다. 이 솔깃한 구상을 독일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러시아는 도리어 전 방위적 외교를 펼치고 있다. 올 여름 큰 결실을 맺는다. 브릭스(BRICs) 정상 회의와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동시에 주최하기 때문이다. 다극화 세계의 교두보인 브릭스는 올해 말 개발 은행을 출범시킨다. 세계 인구의 5분의 2를 차지하는 국가들이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무역체제를 선보인다.

SCO 역시 확대일로이다. 곧 남아시아의 대국, 인도와 파키스탄이 가입한다. 여기에 서아시아의 터키 또한 SCO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거듭된 구애에도 유럽연합(EU) 가입이 좌절되었다. 이슬람 국가라는 점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SCO는 종교와 문명이 다르다고 타박하지 않는다. 올 초 중국과 러시아산 무기 구입을 결정함으로써 터키 또한 유라시아로의 노선 변경을 본격화했다.

畵龍點睛(화룡정점)은 이란이 찍을 듯하다. 핵 합의가 타결됨으로써 국제 제제를 받고 있는 국가는 가입을 보류하는 SCO 헌장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곧장 이란과 파키스탄을 잇는 천연가스 연결망 사업을 발표했다. 테헤란과 이슬라마바드가 베이징과 한 줄로 엮여든다. 7월 정상 회담에서 이란이 SCO의 정식 회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 치푸라스 총리가 모스크바에서 푸틴을 만나 그리스의 돌파구를 여는 장면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양국이 공유하는 동방 기독교의 전통을 회고하고, 나치즘에 함께 맞섰던 제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을 나누었다. 같은 시기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총리는 방콕을 방문 중이었고, 태국의 국방부 장관은 베이징에서 군사 회담을 하고 있었다. 또 베트남은 1월에 닿을 올린 유라시아 경제 연합(EEU )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동과 서, 남과 북으로 유라시아의 재통합이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좌/우를 가르지도 않고, 민주/독재를 가리지도 않는 大同(대동)세계의 새 물결(New Wave)이다.

New World와 New Age

우크라이나의 혼란을 통해 미국이 꾀하는 것은 유라시아의 三分(삼분)이다. 유럽, 러시아, 중국을 나누고 쪼개는 것이다. 러시아는 NATO로 견제하고, 중국은 한-미-일 연합으로 봉쇄한다. 전자가 환대서양 동맹이고, 후자가 환태평양 동맹이다. 냉전기의 패권책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 없는 반복은 반동적이다. 실로 대서양은 19세기가, 태평양은 20세기가 절정이었다. 어느덧 신세계(New World)야말로 구체제(Ancien Régime)가 되고 있다. 역사는 늘 그렇듯, 돌고 또 돌아간다.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터키 등은 하나같이 유라시아의 고전 문명을 계승하는 유구한 나라들이다. 21세기의 '신형 대국관계' 또한 이들로부터 도출되지 싶다. 오래된 세계를 갱신함으로써 더 멋진 신세계, 新天地(신천지)를 일구는데 의기투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만이 특별난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슬람권은 향신로(Spice Route)를 재발견하고 있고, 인도는 면화길(Cotton Route)을 주목하고 있다. 유라시아를 가로질렀던 누들 로드(Noodle Road) 또한 빠트릴 수 없겠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막다른 곳에서 비단길과 향신길과 면화길과 국수길이 다시 만나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생생한 再生(재생)과 還生(환생)의 현장들을 차근차근 밟아갈 것이다. 우선 인도양의 바닷바람부터 가볍게 쐬어보기로 한다. 興(흥)을 돋구는 배경음악으로는 뉴에이지(New Age)가 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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