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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유해물질, 이젠 앱으로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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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유해물질, 이젠 앱으로 확인하자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정부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2012년 9월 27일 경북 구미시 구미 4공단에 있는 휴브글로벌이란 기업체 공장에서 허연 연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이 연기는 인근 마을을 향해 퍼져갔다. 그 정체를 잘 모르는 주민들은 무방비로 노출됐다. 일부는 뒤늦게 자동차를 타고 멀리 도피했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은 당시 이 유독 가스를 들이마셔 건강 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은 뒤늦게 이 연기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 유독 가스임을 알고 진저리를 쳤다. 정부 당국과 회사의 허술한 유독물질 관리와 노동자의 실수로 저장탱크에 있던 불산(불화수소산)이 다량으로 누출돼 불화수소 가스가 인근 마을을 덮친 것이다. 구미 산동면 봉산리 마을 주민들은 아직 벼가 누렇게 익을 때도 아닌데 모든 벼와 활엽수들이 칙칙한 누런색으로 변하고 말라버린 것을 보고서야 이 물질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마터면 '한국판 보팔 사건'이 될 뻔했던 구미 휴브글로벌 불화수소 가스 누출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주민들이 자신의 거주지 인근 어떤 공장에서 어떤 유독 물질을 얼마만큼 다루는지를 알 수 있게끔 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시민단체와 유해물질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고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피해를 막거나 줄이자는 뜻에서였다.

보팔 참사란 1984년 인도 보팔시에서 '메틸 아이소사이안'이란 유독물질 저장탱크에서 유독 가스가 새어 나와 주민 1만여 명을 숨지게 하고 60만여 명이 실명 등 장애와 부상을 입은 20세기 최대의 화학물질 사고다. 이 참사를 계기로 미국은 1년여 뒤 '위기 대응 및 주민 알 권리법'을 제정했다. 이러한 점을 예로 들며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도 이런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구미 휴브글로벌 사건 뒤 2년여가 훌쩍 흐른 지난 5월 6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는 화학물질 정보 '우리 동네 위험지도' 앱 공개 시연회가 열렸다. 안드로이드체제에서 구동되는 이 앱은 '알 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란 민간단체가 아름다운재단 지원과 소셜 펀치, 다음희망해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총 2657명의 시민들이 낸 기부금 1000여만 원으로 제작한 것이다. 시민들이 앞장서 정부가 할 일을 대신한 셈이다.

▲ '알 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우리 동네 위험지도' 제작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찾아갈 예정이다 ⓒ알 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

기업 이익보호에만 열중하는 정부, 생명과 안전을 위해 들고 일어난 시민


구미 사건을 비롯해 그 뒤 삼성전자, 엘지 등 대기업 공장과 중소기업 공장 등에서 불화수소뿐만 아니라 염소가스 등 각종 유독가스 누출 사고가 잇따랐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주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손발은 늦거나 기업 이익 보호에만 열중했다.

▲ 앱에 나타난 울산지역 위험지도 모습. ⓒ일과 건강
이에 참다못해 지난 2014년 3월에 '일과 건강' 등 26개 시민사회단체는 '알 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를 발족하였다. 이 단체는 화학물질 사고 예방을 위해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지역주민 알 권리 보장'과 사고 시 '비상 대응 체계' 마련을 위해 '지역사회 알 권리법 제정 운동', '화학물질 정보공개 청구 운동', '우리 동네 위험지도 제작·보급 운동' 등 3가지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과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지난해 5월 15일 '지역사회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지역사회 알 권리법)'을 함께 만들어 국회의원 53명 명의로 공동 발의하였다. 이 법은 올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이번에 제작·공개한 화학물질정보 '우리 동네 위험지도' 앱은 주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의 극히 일부분만 담고 있다. 이 앱에 담긴 위험 정보는 2012년 환경부가 공개한 3268개 사업장 1만2700개 화학물질 배출량과 이동량 정보를 기본으로 한 것으로, 전체 사업장의 19.7%에 불과하다. 80% 이상은 여전히 정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불친절한 정부 씨'를 대신해 '친절한 알림 씨'가 되기 위한 시민단체의 땀이 오롯이 담겼다. 화학물질 사업장 정보 공개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정부가 하루빨리 제대로 된 동네 위험지도를 만들도록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 깔렸다.

환경부, 기업 영업 비밀 핑계로 화학물질 유통량 정보공개 거부

10개 시민단체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위험 정보를 알리기 위해 '일과 건강'을 대표청구단체로 하여 지난해 환경부를 상대로 '전국사업장 화학물질 유통량 정보공개 청구'를 하였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 정보가 기업의 자료 보호 요청자료이며 영업·경영상의 비밀로서 국가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이 불복해 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 제작한 앱은 사업장별, 물질별 위험성 정보를 제공하는데 검색지점 반경 500미터, 2킬로미터, 5킬로미터로 각각 구분해 사업장을 동심원 색깔로 표시했다. 반경 안에 있는 어린이집(녹색), 초등학교(주황색)를 동시에 표시했다. 또 사업장별 물질 상세정보는 물질별 카스(CAS, Chemical Abstract Service)번호, 배출량, 위험성 정보를 표시했다.

물질별 위험성 정보는 색깔로 위험성 정도를 표기했으며 사고 대비 물질과 발암성 물질은 검색 기능을 추가해 집어넣었다. 앱은 화학물질의 위험 특성과 함께 인체에 끼치는 증상, 노출됐을 때의 응급조처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 앱은 독립 언론인 <뉴스타파>가 환경부의 '최근 3년(2012-2014)간 화학물질 사고 현황' 자료를 입수해 지난 1월 27일 제작·공개한 인터랙티브 지도를 링크해 놓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환경부에 보고된 화학물질 사고는 총 200건이다. 장소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사고 27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173건의 사고만 지도상에 표시했다.

사고 지점은 짙은 주황색 점으로 표시했고, 사고지점 반경 1킬로미터의 범위는 옅은 주황색 원으로 표시했다. 사고지점을 클릭하면 사고 장소, 일시, 누출된 화학물질 등 상세한 사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화학물질 운송 도중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와 학교 실험실 사고를 제외하고 사고 지점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주민이 얼마나 거주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안종주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이번 앱 제작을 계기로 주민들이 앱에서 제공하는 위험 물질 취급사업장 방문과 지역별 오프라인 지도 및 앱 소개 전단 가정에 배달하기, 지역별 사고 사업장 주변 앱 시연 영상 촬영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리기 등 지역별 감시 활동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또 올해 안으로 아이폰용과 이동 경로 설정 후 주변 위험 정보 검색기능을 추가한 버전 1.5를 보급하고, 내년에는 생활환경 속 위험정보인 생필품과 학용품 등에 사용된 화학물질과 방사능 물질 등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는 버전 2.0을 제작·보급하는 등 '우리 동네 위험지도'의 내용을 더욱 알차게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실한 환경부의 화학사고 정보 파악-사업장도 몰라

한편 지난해 1월 화학물질안전원 설립 이후 2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접수·조치한 화학 사고 상황 보고서 총 76건의 사고를 환경부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화학물질 정보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추가적인 공개 필요성이 더욱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감시네트워크는 밝혔다.

76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4건(45%)이 사고 사업장 정보 자체가 없었으며 특히, 사업장이 아닌 화물차, 학교 사고 27건을 제외할 경우 69.4%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다. 또 사업장 정보는 있으나 해당 사고 물질 배출량 정보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배출량이 0킬로그램인 경우가 각각 6건, 3건으로 정보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비율이 11.8%였다.

이번 분석에서는 화물차, 학교 사고 비율이 전체의 35.6%(27건)으로 나타나 전국 화학물질 운송차량과 학교 실험실에 대한 안전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그리고 67%에 해당하는 51건의 사고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아, 일반 시민들은 사고 발생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치를 생각해볼 때 정부가 위험정보를 제때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시민단체들이 시민들의 손때 묻은 돈을 모아 동네 위험지도를 만들어 보급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위험(위기)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소통의 첫걸음이 이와 같은 위험 지도 제작·보급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하길 바란다. 기업의 이익 지킴이가 아니라 국가 본연의 임무인 시민의 생명 지킴이로 정부가 거듭나야 한다.

▲ 환경부 화학물질사고 상황보고서 분석 결과.
▲ 환경부 화학물질사고 상황보고서 분석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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