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5명 사망, 소방관 18명 부상, 주민 1만2000명 병원검진, 212헥타르의 농작물 고사, 가축 4000여 마리 폐사, 주민보상액 380억 원.
2년 전인 2012년 9월, 구미 휴브글로벌 사업장 불산누출사고의 피해규모이다. 우리나라 화학물질사고기록에 남을 만한 이 엄청난 피해는 사고사업장과 불산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관계기관과 불산과 같은 위험 물질에 대한 사고 대응 매뉴얼이 없는 가운데 일어났다.
당시 공중파 3사를 비롯한 언론을 통해 이슈화된 화학물질관리의 문제는 우리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연이은 2013년 1월에 터진 삼성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는 사고지역인 경기도에서 '화학물질관리 지방조례'가 통과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같은 해인 2013년 상반기에는 사고발생 사업장에 매출액 5퍼센트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수십 년간 개정안 내용을 준비한 전문가는 '내가 죽을 때까지 만들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평가를 할 정도였다. 이처럼 여론에 밀려 급히 통과된 개정안은 당연히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화학물질사고 예방과 대처에 핵심인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보장 조항이 많이 부족한 채 2015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증가하는 화학물질사고
구미불산 누출사고 2년이 지난 지금, 화학물질사고는 안타깝게도 계속 증가추세이다. 2013년 한해에만 총 87건이 발생해 예년 평균 12건에 비해 7배 이상 급증했다. 정부는 2013년 한해에만 주요사고가 터질 때마다 중대재해 및 화학사고 예방대책 등을 수차례 내놓았지만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정부가 화학물질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차게 설립한 화학물질안전원 개원 이후인 2014년 1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7개월간 사고접수 건수가 76건에 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는 지난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구미불산 누출사고를 계기로 제·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평가법을 규제개혁대상으로 지목했다. 사고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규제완화의 뜻을 밝힌 것이다. 또한, 화학업체 지도점검을 1년에 4차례에서 1차례로 줄이고, 사고에 따른 영업정지 범위는 사고가 난 현장으로 한정하며 화학물질 성분은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보고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등 재계의 끊임없는 요구에 호응하고 있다.
구미불산 누출사고의 피해가 커진 것은 아무도 그 물질이 어떤 물질이며 얼마나 위험한지,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가 무시되는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정책과 법제도가 유지되는 한,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화학물질 사고는 제2의 세월호 참사의 전주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일과건강'과 민변 변호사들은 2012년 5차례의 내부 워크샵을 통해 2013년 주요사업으로 ‘화학물질사고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포럼과 토론회를 통해 지역사회알권리법안과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 발족논의를 진행하였다.
우리 동네 위험물질을 밝혀라!
2014년 3월 20일 27개 시민사회단체로 발족한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올바른 화학물질 사고예방을 위해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지역주민 알권리 보장’과 사고 시 '비상대응체계' 마련을 위한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가 보장된 법제도적 장치로 지난 5월 15일 국회의원 53명이 공동발의한 ‘지역사회 알권리 보장을 위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지역사회알권리법)’이 국회상정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 화학물질사고예방은 주민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1986년 제정한 '응급계획과 지역사회 알권리법'이나 캘리포니아의 주민발의 65호, 캐나다 토론토의 지역사회알권리 조례안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주민이 화학물질정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어느 정도 지역사회에 참여하느냐가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핵심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대로 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공개된 물질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고 시 대응체계도 체계적이지 못한 실정이다. 때문에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외국사례처럼 법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법안의 주요내용은 우리주변 인근 공장에서 지역사회로 배출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을 주민들이 알고, 주민이 참여하고 동의하는 화학물질 관리 및 비상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이와 관련된 제반 정보가 주민들에게 단순히 통보되는 것이 아닌 지역별위원회라는 체계를 통해 소통되고 관리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현행제도는 화학물질 관리계획수립을 중앙 환경부에서만 세우게 되어있는데 이 권한을 지자체에 주어 도나 시차원의 주민대표를 포함한 민관이 참여하는 화학물질관리위원회를 꾸리고 이 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화학물질 정보공개와 사고 시 비상대응계획을 수립, 시행하자는 것이다.
둘째로, '일과건강'을 대표청구단체로 하여 10개 단체와 2727명의 주민청구인단이 지난 5월 23일 국립환경과학원을 상대로 1차 '전국사업장 화학물질 사용량 및 배출량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하였고, 6월 23일 환경부를 상대로 2차 '전국사업장 화학물질 유통량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배출량정보를 제외한 사용량과 유통량에 대해 기업의 영업‧경영상 비밀과 자료보호 요청자료라는 이유로 공개거부 처분을 내렸다.
지난 5월 국립환경과학원을 상대로 진행된 1차 정보공개 청구결과 그나마 공개된 배출량 자료도 공개대상물질과 공개기준에서 한계점을 갖고 있다. 공개된 자료는 전국 조사대상 1만6547개 사업장 중 20퍼센트에 못 미치는 3268개 사업장 정보에 국한되어 있어 전체 규모를 알 수 없는 근본적 문제를 갖고 있다. 이는 환경부가 고시한 조사대상의 기준에 의한 것으로 조사 업종(39종)과 조사 물질 수(415종)와 물질의 연간 제조‧사용량 1~10톤 이상(I그룹물질 16종의 경우 1톤 이상, II그룹 물질 399종의 경우 10톤 이상)으로 제한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동네 위험지도 제작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당국은 기업의 영업비밀과 자료보호라는 명목 하에 국민의 당연한 알권리를 외면하고 있다.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지난 9월 환경부를 상대로 한 화학물질정보 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통해 기업비밀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법원의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길 바라고 있다.
또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1차 청구결과 부분공개된 2012년 배출량 정보를 토대로 우리주변 어떤 사업장에 어떤 유해화학물질이 있으며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 사고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을 국민들에게 손쉽게 전달하고자 '우리동네 위험지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10월까지 개발하여 무료로 제공될 예정이며 현재 프로그램 개발비 마련을 위해 소셜펀치 후원함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또한,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 사회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이어 화학물질 대형참사를 막기 위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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