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공단 (주)휴브 글로벌의 불산 누출 사고 현장의 CCTV가 공개되었다. '작업자 과실이 부른 사고...,보호 장구가 있었는데 덥고 귀찮다고 착용 안 해...'등 억울하게 사망한 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형 산재사고가 터질 때 마다 추상적인 '안전 불감증', '작업자 과실'로 마무리 되고 결국엔 현장의 아무런 개선 없이 또 다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되돌이표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불산 누출 사고는 전형적인 관재(官災)다. 사고는 아직 진행형이지만 우리 사회가 무엇을 짚어 봐야 하는지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번 사고가 관재라는 증거는 불산 같은 위험 물질에 대한 예방과 사후대책에 있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법 제도, 허술한 관리 감독, 사고 발생 이후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지한 대응으로 사고피해가 확대되는 등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번 사고를 통해 안전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여지없이 드러났고, 그 속에서 노동자와 주민들이 희생됐다.
첫째, 화학 산업의 사고와 관련해서 7개 부처와 14개의 법률이 적용되고 있지만, 사전예방과 사후 대책에 있어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주)휴브 글로벌은 유독물질인 불산을 연간 165톤이나 취급해 왔으나 공정안전보고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구미공단 1803개 업체 중 공정안전관리 대상 사업장 등록 업체는 49개로 전체의 2.7%만 관리 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해화학물질 관련법도 30인 미만이라는 이유로 적용제외다. 수많은 관련법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대부분이 대상에서 빠지고, 기초적인 신고조차 기업의 자율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부처와 법 제도는 오히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부의 면피용으로만 유효하다.
둘째, 노동부 안전보건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산업단지 산재예방을 위해 세워진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와 (주)휴브 글로벌은 6km 이내였다. 그러나 노동부는 불산 취급 사업장인지, 관리 감독 대상인지조차 몰랐다. 더구나 5인 미만 사업장은 현행법상 안전교육도 적용제외다. 산재의 80% 이상이 중소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 하지만 국가 산업 단지에 위치한 사업장들도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
셋째, 집단 산재 발생에도 본청 차원의 지침은 없었다. 사고 관련 1359명의 노동자가 건강이상을 나타냈다. 그러나 노동부의 지침이 없어 조업중단이나 건강진단이 제 각각 이었고 영세 사업장은 노동자들이 자비로 진단 및 치료를 했다. 사고발생 12일 만에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구미지역, 그러나 구미공단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공단의 업체와 노동자들이 '계속 일해도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하루 수백통의 문의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넷째, 터지고 또 터지는 동일한 유형의 사고들은 못 막는 것이 아니라 안 막는 것이다. 화학 산업 사고는 대형사고일 뿐 아니라. 유독성 물질 때문에 2-3차 사고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이에 울산, 여수, 대산, 인천 등 화학 사업장이 많은 산업단지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울산 미포 온산공단은 471개 업체가 유독물을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전국 유통량의 33.6%이다. 액체 위험물은 전국 저장량의 35%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울산 국가 산단에서 발생한 화재 폭발사고만 188건이다. 작년 2011년 8월에도 울산 현대 EP공장 유증기 폭발로 3명이 사망했다. GS칼덱스, 여천NCC, LG화학 등 석유화학업체 60여개가 밀집되어 있는 여수 산단의 경우에는 2005년 염화수소 노출사고로 65명이 중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6월에도 금호 미쓰이 화학공장에서 군사용 독가스인 포스겐 노출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여수시청은 시민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는 반면 사고와 관련한 사업장 통보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8월에 LG화학 청주공장에서 1.4다이옥산 폭발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전신화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같이 이번 사고가 안전보건의 총체적 부실관리 체계에서 발생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과실로 몰고 가고 있는 행태는 제2의 구미 불산 사고를 부르는 방조행위와 같다. 안전수칙을 위반한 노동자를 거론하기 이전에 안전수칙이 교육되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현장에서는 안전교육을 전혀 하지 않고 허위 증명 서류만 작성하거나, 작업과는 상관없는 시간 때우기 식 교육을 하고 있다. 더욱이 화학물질 관련 교육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조차 노동자는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하다 직업성 암으로 죽어갔다. 더욱이 산업안전보건법은 5인 이하 사업장을 안전교육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영세 사업장, 화학물질 취급이라는 2중의 위험을 안고 있는 사업장 노동자에게 안전교육을 법적으로도 보장하지 않고, 정부의 별도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사고 당시 노동자가 모두 사망한 상태에서 보호 장비가 있었는데 본인들이 착용하지 않았다고 하는 일방적인 보도를 하는 행태도 문제이지만, 현장의 보호구 지급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방수가 전혀 안 되는 싸구려 안전화, 습기가 차서 오히려 감전 위험이 있는 절연장갑, 화학물질 차단 효과가 전혀 없는 방진 마스크, 노동자 보호가 아니라 반도체 생산품 보호를 위해 지급되는 방진복, 한 여름에는 땀이 흘러들어 시야를 흐리는 안전모.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무늬만 안전'인 보호구 지급이 횡행하고 있다. 지급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보호구 지급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소규모 사업장은 지급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보호구를 지급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있다. 보호구 지급은 안전대책에 있어서 전시 행정의 대표적인 표본중의 하나다.
피자 배달 노동자의 곡예운전의 이면에는 무조건 30분 안에 배달해야 하는 '30분 배달제'와 부족한 인력 문제가 있다. 한 건이라도 더 빨리 처리해야 먹고 사는 퀵 서비스 기사 노동자의 현실이 위험한 운전을 강요한다. 주문하고 1분 내에 햄버거가 안 나오면 배상하겠다며 모래시계를 주문대 위에 자랑스럽게 내놓은 맥도날드, 차량들이 고속 주행하는 새벽에 청소차 뒤에 발판을 만들어 사람을 매달고 쓰레기 처리를 하게 하는 시청. 이래도 노동자의 안전불감증 타령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산재는 공장과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고는 사업장의 사고가 지역 주민의 삶과 건강에도 직결된다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위험요소는 대기분출과 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지는 화학물질 사용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생활 곳곳에 널려 있다. 외국에는 거의 사라진 와이어 가잉 방식의 타워크레인 설치로 무너진 타워는 주택가, 도로변을 덮쳐 시민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금지된 발암물질이 사용되는 한국 자동차는 운전자의 건강권을 위협한다. 감염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병원은 환자와 가족을 병들게 한다. 절반 이상의 지하철역에서 검출된 석면의 방치는 불특정 다수의 폐암으로 이어진다. 아파트 공사에서 여과 없이 사용되는 각종 접착제, 도장제는 내 집 마련의 행복감을 잊게 만드는 새집증후군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생산현장의 사고, 직업병 문제들은 담장 밖 일반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과 직결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고의 진원지인 사업장의 문제를 외면한 채 문제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불이 났는데, 불씨는 그대로 두고 연기를 막겠다며 아우성치는 꼴이다.
무엇보다 산재사고의 직접적 피해자인 노동자가 사전에 위험을 알고 방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자신이 취급하는 불산 등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더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가 아니면 유해화학물질 유통량 공개 등의 정보에 접근 할 수 없고, 내용도 기술적으로 되어 있어 설사 조사 및 공개 사업장 대상 범위가 확대 된다 해도 노동자나 시민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현장의 안전교육, 특히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교육은 중소 사업장이 스스로 하기에는 전문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별도의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중소 영세 사업장에 대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중소 영세 사업장 산재문제에 있어 지난 십수년간 명예산업안전감독과 제도의 개혁을 요구해 왔다. 무대책으로 방치되고 있는 노동자의 생명권 문제를 노동자 스스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비단 화학 사업장의 사고뿐 아니다. 일 년에 23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십수년간 죽어갔다. 우리나라의 현장 사고는 반복성 사고이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서 용광로에서 죽는 사망사고가 2년 만에 다시 재연되고, 벽체에 고정하지 않아 타워가 무너지는 사고가 태풍 때 마다 발생한다. 그래도 산재예방대책은 요지부동이고 현장에서는 오늘도 내일도 노동들이 죽어 나간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가 메아리 없는 안전불감증 타령이나 산재사망 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작업과실 운운에서 그치지 않고, 산재예방 대책을 전면 재점검 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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