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엔 긴장감 속에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선언을 기린다는 명분 아래 5월 초부터 이스라엘 곳곳에서 여러 이름의 행사들을 가진다. 음악회나 댄스파티가 열리고 시가행진도 벌이면서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하다.
독립선언 67주년을 맞는 올해도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는 아니다. 유대인들의 축제를 바라보는 '아랍계 이스라엘 사람들'(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계 후손들)의 속내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이들 아랍계의 '마음의 조국'은 이스라엘이 아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상복 입고 우는 나크바(Nakba)의 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건국선포 바로 다음 날을 '나크바'(Nakba, 대재앙)의 날(5월 15일)로 기린다. 지도상에 없던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불쑥 나타남으로써 그야말로 대재앙이 시작됐다. 13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 가운데 약 75만 명이 살던 집과 땅을 잃고 쫓겨나기 시작한 날이기에, 뼈아픈 역사의 기록에서 지우고 싶은 우울한 날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날 가게와 학교 문을 닫는다. 어떤 이들은 상복을 입고 슬피 울며 하루를 보낸다.
이스라엘은 독립 선포한 뒤 벌어진 주변 아랍국들과의 전쟁(1차 중동전쟁)에서 이겼고, 2차(1956년), 3차(1967년), 4차(1973년)의 잇단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중동의 지역 패권국가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특히 이스라엘이 전격전을 펼쳐 6일 만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6일 전쟁'이라 알려진 3차 중동전쟁에서는 영토를 4배로 늘렸다. 오늘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한 것도 바로 그때의 일이다.
거의 70년 전의 나크바 이후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강공책에 따른 팔레스타인 점령, 억압통치와 인권 침해, 그에 맞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과 폭력의 악순환까지. 이런 표현은 몇십 년 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나타내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아랍계, 이스라엘의 2등 시민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비드 벤구리온이 텔 아비브 박물관에서 읽어 내려갔던 독립선언서는 '종교,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스라엘 거주민들에게 사회정치적인 권리의 평등을 보장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그저 듣기 그럴듯한 그야말로 속 보이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이스라엘 인구는 약 800만 명(2014년 통계).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곳곳의 유대인 정착민 34만 명, 이스라엘이 1967년 이래 점령 중인 시리아 골란고원의 정착민 2만 명, 동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이른바 ‘뉴타운’(사실상의 정착촌)의 유대인 20만 명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아랍계, 즉 팔레스타인 출신 200만 명은 교묘하게 제도화된 여러 억압적 차별구도 아래 이른바 ‘2등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민족국가?
강경파가 지배하는 이스라엘 정치권을 보면 중동평화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리쿠드당의 지도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보수-종교 연립 내각은 오로지 유대인들의 생존논리만을 앞세울 뿐이다. 강한 민족이 약소민족을 힘으로 눌러선 안 된다는 나치의 교훈을 잊은 지 오래인 모습이다.
그 중심엔 이스라엘 강경파 우두머리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있다. 지난 연말 네타냐후는 일부 각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민족국가"라고 못 박은 '유대민족 국가 기본법'을 국무회의에서 밀어붙였다. 법안의 주요내용은 유대교 율법을 기본으로 하는 입법을 제도화하고, 국가 공식 언어에서 아랍어가 제외시키는 것이다.
이런 강공책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고, 이스라엘 정치권도 요동을 쳤다. 결국 연립정부는 무너졌고 지난 3월 17일 예정에 없던 때 이른 총선을 치러야 했다. 여러 여론조사 지표로 미뤄 네타냐후가 선거에서 패배할 것으로 보였다.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막가는 네타냐후의 강공책이 이스라엘 경제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네타냐후의 정당인 리쿠드당은 대승을 거두었다. 리쿠드당 의석을 18석에서 30석으로 12석이나 늘렸다. 네타냐후의 승리 요인으로는 선거 막판에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이 수도를 삼는 방안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며 강경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결집시킨 결과로 풀이됐다.
2개 국가 해법에 냉소적
3.17총선에서 승리한 네타나후는 그에 강경 정치노선에 동조하는 군소정당들을 끌어모아 5월 6일 총리 4선을 확정지었다. '크네세트'라는 이름의 이스라엘 의회(120석) 가운데 61석을 차지한 집권 연립세력은 네타냐후의 리쿠드당(30석), 쿨라누당(10석)과 더불어 3개의 극우 종교정당들인 유대인가정당(8석), 샤스(7석), 연합토라유대주의정당(6석)이다.
네타냐후와 손을 잡은 정당들은 하나같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이는 입장으로 알려진 강경파들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공존을 생각하는 구도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중동평화의 구도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개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에 냉소적이다.
현재진행형인 나크바
네타냐후와 같은 극우 강경세력이 생각하는 이스라엘 생존법은 △팔레스타인을 지금처럼 21세기의 식민지로 묶어두고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가면서 △이스라엘 안의 아랍계를 2등 시민으로 차별하면서 이스라엘을 유대인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쪽이다. 팔레스타인 강경 정파인 하마스(Hamas)를 제치고 온건정파인 파타(Fatah)만을 상대로 하는 중동 평화회담은 겉치레일 뿐이다.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정치권을 지배하는 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의 전망은 흐리다. 중동평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네타냐후와 그에 동조하는 강경파 유대인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먼저 네타냐후가 물러나지 않는 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정치적 기상도는 먹구름일 수밖에 없다. 70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져 온 팔레스타인의 나크바(대재앙)가 그칠 날은 언제쯤일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