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0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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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죽인 학살기동대, "발가벗은 유대인들, 피 뒤집어쓴 채 기어갔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4]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㉒
"이것은 전쟁이 아니고요, 일방적 학살입니다!” 국제사회를 향해 이즈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외치는 절규다. 지난 1년 넘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엄청난 재난을 겪어왔지만, 국제사회는 팔짱을 끼고 바라보기만 해왔다. '전쟁이 아닌 일방적 학살'이란 절규는 이번이 처음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알아보려 현지 취재를 갈 때마다 필자는 그런 말들을 듣곤 했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대원 1명 죽자 258명 살해…민간인 사살 '면죄부' 학살자들, 희미해진 '살인의 기억'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3]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㉑
제1차 세계대전에서 상등병이었던 히틀러는 (겉으론 다소곳하면서도 속으로 그를 낮춰보는) 장군들에게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전쟁에서) 폭력은 가장 잔인하게 사용돼야 한다." 전쟁에서 잔인한 폭력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히틀러의 말은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틀린 것은 아니다. '온건한 폭력'이란 ('정직한 사기꾼'이란 말처럼) 모순어법이다. 문제는 나치 독
시신으로 피범벅된 마을…평범한 독일인들, 어떻게 냉혹한 살인기계가 됐나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2]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⑳
나치 독일은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하고 1940년 4월 서유럽(벨기에, 네델란드, 프랑스)으로 전선을 넓혔다. 이어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함으로써 유럽 전역을 전쟁의 불길 속에 빠트렸다. 히틀러는 2개의 전선(서유럽과 동유럽)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이는 전시지도자가 됐다. 7,000만 독일 국민의 단결을 이끌 겸 히틀러는 대규모 정치집회를 자주
독일 유대인들, 유럽 동부로 쫓겨나며 '최종 해결' 당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1]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19
지난 주 글에서 히틀러가 독일 총통에 오른 지 딱 6년째를 맞은 1939년 1월30일 제국의회 연설에서 "유대인을 절멸(Vernichtung)시켜야 한다"고 외쳤다는 점을 살펴봤다. 이미 오래 전부터 히틀러와 그의 충성스런 지지자들 사이에선 "독일을 유대인이 제거된(judenrein)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주고받았다. 히틀러는 자신의 '나
게토 간 괴벨스, 포로수용소 들른 힘러…그들은 왜 무표정이었나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90]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18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언자 노릇을 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언젠가는 독일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돼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가장 먼저 비웃었던 것이 유대인이었다. 한때는 독일에 사는 유대인이 공허한 웃음을 뱉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목구멍에 턱 걸려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다시 예언자가 되고 싶다. 유럽 안팎의 국제 유대인 금융세
"나는 정치판의 코흐"라던 히틀러, 아프리카로 유대인 400만 보내려 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89]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17
중동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져 왔던 살육이 지난 10월7일로 딱 1년을 맞았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4만2,500명, 부상자까지 합치면 14만 5,000명에 이르렀다. 그 1년 동안 세계는 그저 지켜만 봐왔다. 최근에는 레바논 공습으로 2,100명쯤의 사망자가 나왔다(부상자 1만여 명).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예언자' 히틀러, 유대인 절멸 앞서 갈취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88]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⑯
전쟁 상황을 담은 다큐(기록필름)들을 보면, 패전국의 군인이나 관료들은 막판에 기밀서류들을 불태워 없애기 바쁘다. 문서 소각은 군사기밀이 드러나는 것을 막고 포로 학살 등 전쟁범죄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다. 1945년 4월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버티던 히틀러는 그런 걱정을 하질 않았다. 지난 주 글에서 짚었듯이, 어떠한 중요한 조치나 결정사항을 문서 형태로
문서로 증거 안 남긴 히틀러, 입으로만 '유대인 절멸' 지시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87]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⑮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가 앞장 서 부추겼던 '수정의 밤'(Kristallnacht)을 다룬 지난 주 글과 관련, 독자 한 분이 메일을 주셨다. "이즈음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하는 짓을 떠올리면, 나치에게 박해받는 기사를 읽으면서 유대인들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는 잘못이지만, 유대인에게 동정심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
"본때 보여주라"는 히틀러와 괴벨스, 결국 아이들도 '약탈'에 나섰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86]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⑭
[한 영국 신문의 베를린 특파원은 '그 방탕한 파티는 새벽 일찍부터 시작되었고, 열한 곳의 시나고그(유대교회당) 중 아홉 곳이 거의 동시다발로 불에 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영국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쇠막대기와 벽돌로 무장한 반쯤 취한 군중들이 베를린 웨스트엔드에서 (유대인 상점과 유대교회당) 유리창을 부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미국과 영국이 유대인 난민 외면하자 히틀러는 웃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85]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⑬
"그것은 단지 서막이었다. 책을 불태우는 그곳에서, 결국 사람도 불태우게 될 것이다." 위의 글은 지금도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는 19세기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가 쓴 비극 작품 <알만조르>(Almansor, 1821)의 한 구절이다. 베를린 훔볼트대학 맞은편 광장에는 그 대학 동문인 하이네의 윗글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아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