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팔레스타인에 떨어진 6만발 포탄보다 무서운 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팔레스타인에 떨어진 6만발 포탄보다 무서운 건…

[인터뷰] 14일 가자지구 취재 마치고 돌아온 강원대 김상훈 교수

2014년, 2년 만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포탄이 떨어졌다. 이 공격으로 20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67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김상훈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하루에 2000발이 넘는 포격이 떨어지던 가자지구 현장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한국에 전했다.

김 교수는 2006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을 비롯해 2009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취재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이전에 그가 겪었던 전쟁과 조금 달랐다. 김 교수는 이번 전쟁의 특징으로 "폭격의 밀도가 높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이스라엘이 전쟁 기간 동안 6만 발의 미사일과 포탄을 떨어뜨렸다며 "거의 하루 종일 폭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터지는 것이 아니라 반경 300미터 안에 하루에 몇 번씩 포탄인지 미사일인지 모를 각종 폭발물이 터졌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의 포격이 거의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비극적인 죽음과 상흔만큼 무서운 것은 서로를 향한 분노와 증오였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절망적"이라며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풀어야 하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양측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야 하는데 이들은 서로 본 적이 없다. 서로의 장벽에 갇혀 있는 셈인데, 이 상황에서 서로가 교감하는 것은 미사일과 로켓, 포탄, 전투기밖에 없다"며 미움과 증오만 쌓여가고 있는 현지의 상황을 전했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면서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를 카메라에 담는 일이 고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아름답고 즐겁고 멋진 일도 보고 싶지만 반대되는 것도 보고 싶었다. 그곳(전쟁터)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전쟁터 취재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 김상훈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전쟁터, 특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폭격이 있었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취재를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상훈 :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전쟁터 취재를 다녔다. 그 중에 이스라엘과 관련된 곳이 많았다. 2006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때 레바논을 갔었고, 2009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때 이스라엘과 웨스트뱅크(서안지구)에 갔었다. 또 지난해 초 이집트 시위에도 갔었고. 지금까지 제가 취재했던 흐름으로 볼 때 이번 사태도 연관이 있어서 가자지구에 직접 들어가서 현장을 보기로 결심했다.

프레시안 : 이번 취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다면?

김상훈 : 이런 질문이 답하기가 제일 힘들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굳이 꼽으라면 건물 폭격으로 숨진 사람의 시신 조각을 찾았던 순간이 있었는데 씁쓸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소름 끼치기도 했다. 한 마디로 표현을 하기 힘들었다.

건물이 폭격을 받고 12시간 정도가 지난 뒤에 건물 폐허 사이에 끼어있는 시신을 꺼내지 못해 사람들이 다들 건물만 쳐다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위에 시신 조각들이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다.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주변의 시신 조각들과 함께 있었던 것을 전혀 몰랐었다. 건물 위에 매달려있는 시신을 보느라고 자기 주변에 살점이 떨어져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서 나중에 떠올려보니, 시신조각과 우리가 함께 있었고, 그걸 밟고 돌아다니면서 건물 위에 있는 시신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하루 평균 2000발의 포탄이 가자지구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의 위협인지 와 닿지는 않는다. 현장에서의 느낌은 어땠나?

김상훈 : 거의 하루 종일 폭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터지는 것이 아니라 반경 300미터 안에 하루에 몇 번씩 포탄인지 미사일인지 모를 각종 폭발물이 터졌다. 300미터 정도면 사람이 몸으로 느낄 정도의 진동과 소음이다. 100미터 정도면 살상 반경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거리다. 파편이 날아올 수도 있고. 현장에서 머무르던 호텔의 천장 마감재나 외벽 타일이 떨어지고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이렇게 피부에 와 닿는 폭발이 매일 있었다.

폭발 빈도수가 높거나 호텔 근처로 자주 떨어지면 잠을 자기도 힘들 정도였다. 불안감에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호텔이 지진날 때처럼 흔들려서 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멀리서 들리는 포성과 총소리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프레시안 : 현지주민들 표정은 어땠나? 기사를 통해 보니 잠시나마 휴전을 했을 때 사람들이 시장에도 가고 그랬다는데.

김상훈 : 한 자리에 서서 둘러보면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오열하는 사람도, 혼절하는 사람도 있다, '만상'(萬象)이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 웃을 일도 있다. 시신이 궁금해서 만져보는 사람도 있고.

프레시안 : 길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나?

김상훈 : 지역에 따라 좀 달랐다. 슈자이야나 쿠자 등 폭격이 심한 곳은 거의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가자시티의 병원이나 학교 근처는 이스라엘의 포격이 좀 덜하다는 것을 사람들도 알기 때문에 이 주위에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취재 기간 중 묵었던 호텔이 가자 항구 바로 앞이었는데, 4명의 어린이들이 해변에서 포탄을 맞은 곳이 바로 호텔 앞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유엔건물이랑 적십자 건물이 있어서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그래서 그 호텔을 잡은 건데, 이번에는 소용이 없었다.

유엔 건물, 적십자 건물과 제가 묵고 있는 호텔 사이에도 폭격이 여러 번 이뤄졌다.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2~300미터 떨어져 있는데 그 건물 사이에 포탄이 날아온 것이다. 이스라엘이 정말 정밀폭격에 자신이 있는 건지, 뭘 믿고 저렇게 우리 근처에 쏘나, 이러다가 우리나 유엔 건물이나 적십자 건물에 맞으면 어쩌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래 외신기자들이 묵는 호텔은 폭격을 잘 안하거든.

프레시안 : 현장 사진을 보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연기가 구름처럼 올라오던데, 대부분 이 정도로 위력이 센 포탄이었나?

김상훈 : 주변 건물에 가급적 피해를 주지 않고 건물 하나만 무너뜨리려는 포탄도 꽤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학살을 하려고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정확하게 때리려고 노력은 했으나 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런데 슈자이야는 좀 달랐다. 마을의 한 부분이 완전히 없어졌다. 가자시티나 다른 지역은 정밀하게 건물 한 채만 부분적으로 폭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슈자이야는 몇 블록 안에 있는 건물이 다 무너져 있더라.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프레시안 :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팔레스타인이 통합정부를 구성하면서 이스라엘이 강경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현지에서 보기엔 어땠나?

▲ 김상훈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김상훈 :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하마스가 예전보다 궁지에 몰려 있다는 상황이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 봉쇄정책으로 하마스를 압박하는 데다가, 하마스에 우호적이었던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이 축출되고 엘시시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하마스의 입지가 좁아진 측면도 있다. 하마스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조금 더 강경하게 이스라엘에 대처했고 그게 이스라엘의 심기를 건드린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뚫어 놓은 땅굴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정책으로 사방이 막힌 가자에서 외부와 이어주는 통로는 땅굴이다. 일종의 '생계형'인데, 이스라엘 쪽으로 뚫은 땅굴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국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격을 통해 이 땅굴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하는 것 같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땅굴을 다 부수기 전까지 전쟁을 끝낼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하는 방식을 두고 "잔디 깎기"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라는 잔디를 완전히 뽑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약화시키는 정도의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이후 2012년, 2014년 등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주기적인 성향이 있다. 공습을 길게 끌지 않고 대략 한 달 정도, 사망자는 약 1000~2000명 정도가 발생한다는 특징도 있다. 어느 정도의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공습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면 국제 여론도 이스라엘에 안 좋아지고 경제적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단기간에 자신들의 공격 목표를 달성하고 이후 하마스의 활동을 힘들게 만들어 놓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다.

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완전히 뿌리 뽑아버리면 이들보다 더 강경한, 예를 들면 지금 이라크의 IS같은 세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아닌 우려도 있는 것 같다. 하마스 정도는 자신들이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이번에 약간 특이했던 점은 하마스가 끈질기게 휴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하마스가 이루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전쟁을 이어간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하마스가 휴전을 거부하면서 팔레스타인의 희생자가 늘어나는 것을 통해 반(反)이스라엘 감정을 고취시키고 내부결속을 다지고자 하는 목적도 일정 부분 있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일부 한국 언론은 이번 사태를 이스라엘의 '학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황상 학살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하마스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전쟁, 충돌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양측의 화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실제 민간인도 많이 죽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학살이라는 생각도 든다. 직접 현장에서 보셨을 때는 어땠나? 학살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나?

김상훈 : 최대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봤다. 이스라엘이 고의적으로 학살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나름대로 이스라엘은 민간인 희생자를 피하려는 노력은 했다. 하지만 문제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 속에 녹아 들어있다는 것이다. 가자지구가 특정 지역에 인구가 밀집된 데다가 하마스가 돌아다니는 동선이 민간인 지역이랑 겹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간이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것은 열 도둑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이스라엘의 공습을 보면 한 명의 도둑을 잡기 위해서 열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있더라도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측을 최대한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프레시안 : 이스라엘이 나름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측면도 있다고 하던데?

김상훈 : '낙온더루프'(Knock on the roof, 지붕을 노크하다)라는 미사일이 대표적인데,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민간인들에게 친절한 방법을 쓰고 있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폭격이 예정돼있을 경우 이스라엘은 그 근처 집이나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전화를 통해 알려준다고 한다. 아니면 폭발력이 굉장히 약한 미사일을 건물 옥상에 쏴서 폭격할 건물을 미리 알려준다고 한다. 그게 '낙온더루프'라는 미사일이다. 이후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면 진짜 미사일이나 포탄을 쏘겠다는 것이다.

공격할 건물을 미리 알려주니 인도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직접 현장에서 보고 당해보니 이 미사일이 굉장히 무서운 것이었다. 우선 이스라엘은 폭격하려는 모든 건물에 미리 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아니다. 무기저장소나 기타 건물을 부수는 것이 목적일 때는 이 미사일을 먼저 보내지만, 무장단체 전투원이나 관련자를 사살하고자 할 때는 경고 없이 때린다. 게다가 이 미사일로 죽은 사람도 있다. 이 미사일이 떨어진 지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실제 폭탄이 떨어지기 때문에 늦게 피신해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 김상훈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어떤 미사일이 낙온더루프, 즉 경고 미사일이고 어떤 미사일이 실제 공격 미사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머물던 호텔 로비 바깥쪽에 로켓을 맞은 적이 있었다. 사방이 창문으로 되어있는 호텔 로비에 섬광이 들어올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일단 모든 외신기자들이 그 자리를 피했는데 이후 기자들 간 의견이 분분했다. 경고 미사일인지 본 폭탄인지, 어떤 종류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한 시간을 실랑이한 적이 있다. 만약 이 와중에 본 미사일이나 포탄이 떨어졌다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 학살이라면,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죽이지는 않았겠지, 설마' 라고 믿고 싶다. 물론 민간인이 많이 죽은 것은 사실이다. 현장에서 그런 모습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서방기자들도 민간인 사망 보도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마스 로켓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양쪽을 다 갔다 와 보니 비교가 되는데, 사실 이스라엘이 가자에 가하는 포격에 비하면 하마스의 로켓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자에 떨어진 정도의 폭격을 평생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이 느끼기에 하마스의 로켓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사람마다 자기가 사는 곳, 처한 환경에 따라 위협이나 고통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제가 이스라엘 쪽에 있을 때, 하마스 로켓이 날아온다고 사이렌이 울리면 저는 가자지구 방향 쪽으로 엄폐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방탄조끼를 입고 방공호로 들어가고 엎드리고 하면서 엄청 호들갑을 떤다. 이런 경보가 이스라엘 곳곳에서 하루에 10~20번 정도 나오는 것 같다. 가자지구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느끼는 증오심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느끼는 증오심과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상훈 : 제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는 것 같다. 갈 때마다 공부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현장에서의 느낌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뿔 달린 악마처럼 보고 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가자지구를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주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스라엘을 증오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한 다리만 건너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지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14일 동안 가자지구에 있었는데, 현지에서 제 통역을 담당하던 사람의 지인이 2명이나 죽었다. 한 번은 통역의 친구, 또 한 번은 통역의 친구의 형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장례 행렬에 어린아이들이 깃발을 들고 뛰는 경우가 많은데, 그 깃발은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아랍해방전선 등의 깃발이다. 이들은 무력으로 해방을 추구하는 세력들인데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이스라엘을 쳐부수자는 내용이다. 이렇게 깃발을 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보면, 아이들은 깃발을 든 것이 자랑스럽다며 커서 지하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칭찬해주고 격려해준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이런 말을 하고 지하드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싫겠지. 물론 이스라엘도 자국의 아이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애들도 조심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살폭탄 조끼 입고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고 교육한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절망적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풀어야 하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향해 분노만 내뿜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사람들이 서로 만나야 하는데 이들은 서로 본 적이 없다. 서로의 장벽에 갇혀 있는 셈인데, 이 상황에서 서로가 교감하는 것은 미사일과 로켓, 포탄, 전투기밖에 없다. 대화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강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나 싶다. 영국의 어떤 신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타이슨(복싱 선수)이 어린아이를 엄청 때려서 열 받은 아이가 타이슨에 침을 뱉었고, 여기에 화가 난 타이슨이 아이를 또 때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

왜, 나는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한국인 사진가였나

프레시안 : 7월 31일까지 가자지구에서 취재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한국 언론이 이런 현장에 접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김상훈 : 우리나라 언론사는 팔레스타인 뉴스가 속된 말로 장사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별로 없고 읽지도 않는데 왜 굳이 기자를 보내서 돈을 쓰냐는 것이다.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현지에서 취재를 위해 이동중인 김상훈 교수 ⓒ김상훈
실제 전쟁터에서는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취재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그런데 원고료는 턱없이 적다. 목숨을 걸고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을 하는 셈인데, 언론사는 기자를 보내지 않고, 프리랜서는 돈이 없어서 못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책임의 문제도 있다. 만약에 취재기자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으면 회사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사는 전쟁터에 취재기자를 보낸 적이 거의 없어서 대비책이 없다. 만약에 취재기자가 죽거나 다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을 때 누구 하나 명확한 대답을 해주는 곳이 없다. 회사 차원에서도 보상 대책이 없다는 거다.

가자지구를 들어가려면 이스라엘이 발급하는 기자증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저를 공증해줄 언론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사는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지기를 꺼리기 때문에 공증해주질 않는다. 그래서 외신을 끼고 들어가는 것이다.

외신은 우리나라 언론사와는 좀 다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가자지구 현지에 방탄차와 통역을 항상 대기시켜 놓고 있다. 이들이 전쟁터 취재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게다가 역대 BBC 사장 중에는 본인이 인질이 돼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다. BBC는 전쟁을 취재하기 전에 훈련과 교육을 시키고, 만약에 무슨 일이 일어날 때는 그에 맞는 매뉴얼과 보상 대책이 있다. 물론 기자한테도 이런 사실을 미리 알려준다.

프레시안 : 여행금지국가나 전쟁터를 취재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 당국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김상훈 : 여기서도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들의 조치가 좀 다른데, 우리는 웬만하면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프랑스는 2009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당시 이스라엘 정부에 가자지구에 자유롭게 들어가 취재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스라엘 정부에 항의했다. 왜 취재기자들을 못들어가게 하느냐며.

2006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취재 때 레바논 최전방에서 겪은 일인데, 스페인은 기자들이 대사관에 전화해서 자신들이 이동하는 차량에 이스라엘이 전투기로 폭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더라. 그러면 대사관이 이스라엘 정부에 전화해서 폭격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기자들에게는 안전한 길을 알려준다.

그래서 저도 이걸 보고 우리나라 대사관에 전화해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정부에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거기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간 것이냐며 한 소리 들었다. 이스라엘 정부한테 이야기할 것 같지 않아서 관두라고 하고 혼자 이동했다. 서너 시간 정도 지나니까 잘 빠져 나갔느냐고 연락이 오더라.

정부에서 위험지역에 취재를 보내지 않는 것을 우선시하다보니 방송국에서도 안들어가려고 하더라. 절차가 복잡해서 못 가는 경우도 꽤 있고. 현실적인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취재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국 독자들이 국제적 이슈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는 것 아닌가?

김상훈 : 독자의 관심이나 소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독자의 책임인 부분도 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언론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언론이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그만큼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들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즉 언론이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도 있는데,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무엇이든지 알수록 관심이 생기게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접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무관심해진 것은 아닐까. 어느 쪽으로 관심을 유도할지도 언론의 책임 중 하나다.

프레시안 : 중동문제가 이제는 어느 정도 일정한 패턴으로 자리 잡은 느낌이 있다. '또 전쟁 났구나' 그런 느낌. 그래서 인간의 고통이 그저 소비가 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의 핵심은 사진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내면적인 고통을 전하고 이에 대한 공감을 사람들한테서 끌어내는 것일텐데, 지금 우리나라 언론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상훈 : 주변 사람들을 통해 외신을 번역한 기사를 통해서는 멀게 느껴졌던 것이 한국 사람의 눈을 통해서 보고 들으면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인이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미국 사람이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겠나? AP 통신에서 건물 2~3채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사진을 보는 것보다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이 있는 호텔에 창문이 깨지는 사진을 보는 것이 훨씬 피부에 와 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언론이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해줘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해야 하는 것

프레시안 : 전쟁터를 찾아다니다 보니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을 것 같다. 이게 결코 흔한 일은 아니지 않나? 외상 후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등도 있을 것 같은데.

김상훈 : 예전에 2006년 레바논에 갔다 온 뒤에는 트라우마 같은 것이 좀 있었다. 전투기 소리를 들으면 식은땀이 난다든가, 구덩이 안에 시신이 있는 경우를 하도 많이 봐서 구덩이만 보면 시신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기도 했다.

▲ 김상훈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그런데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 기본적으로 감정의 폭이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라 덤덤하게 잘 넘어갔다. 일단 전쟁터에서도 최대한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전쟁 발발지역의 취재 작업은 계속 이어갈 생각인가?

김상훈 :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들, 예를 들면 정글이나 문화체험이나 뭐 이런 것들은 제가 시간을 내면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전쟁은 그렇지 않다. 때가 아니면 볼 수가 없는 거니까. 전쟁은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시간'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인생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김상훈 : 인생의 목표가 '죽기 전에 많이 보고, 느끼자. 그리고 내가 죽은 후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자.'다. 저는 기본적으로 지구에 50~60년 정도 여행을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시간이나 돈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50년 정도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

저는 제가 여행 온 지구의 아름답고 즐겁고 멋진 것도 보고 싶지만, 반대되는 것도 보고 싶었다. 제 생각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일이 전쟁이다. 저는 다행히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에 태어나지 않았나? 억지로라도 찾아가서 보지 않으면 제가 보지 못하는 곳 중의 하나가 전쟁터다. 그곳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사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상훈 : 어떤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하기보다는, 보는 사람들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고, 각자의 해석에 맡기고 싶다. 메시지보다는 기록의 의미가 더 크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