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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대가가 '고용 불안'이라면…"

[복지국가SOCIETY] 노동 존중,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길

"우리는 경제의 힘을 500대 기업들의 이익이 얼마인지로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지, 식당 종업원이 일자리를 잃을 걱정 없이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낼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위의 인용문은 노동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중의 일부이다.

경제의 힘을 측정하는 지표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 GDP 규모, 수출 실적 등의 지표들로 한 국가의 경제를 평가한다. 그러나 이 수치들은 노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공장에서 차를 생산하고, 가게에서 계란을 판매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은행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등 우리의 노동이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따라서 경제의 힘은 그 토대인 노동의 가치와 존엄이 존중받을 때 더욱 더 커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경제는 우리 국민의 노동을 바탕으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고속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순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이 되었고, 이들의 연간 영업 이익은 수십조 원에 이른다. 국민의 물질적 삶의 수준도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매년 증가하여 어느덧 3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이런 수치들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경제대국이다. 그런데 이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 낸 노동자들, 즉 우리나라의 보통 사람들은 어떤 보상을 받고 있나? 3만 달러에 이르는 1인당 국민소득에 걸맞은 생활을 누리고 있는가? 노동에 대한 대우로 측정되는 우리 경제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 지난 24일 민주노총 총파업 현장에서 한 조합원이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경제성장의 대가로 국민에게 돌아오는 보상

보상 ① : 고용 불안정

노동에 대한 대가는 비참하다. 첫째, 고용 불안이다. IMF 사태로 수십 만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어 많은 가정이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 평균근속년수 및 비정규직 비중 비교.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속년수(한 회사에 계속 근무한 기간)는 약 5.3년으로 OECD 회원국가 중에서 가장 짧다. OECD 회원국의 평균 근속년수는 10년이다. 특히 고용형태별로 보면 2003년 하르츠 개혁 이후 미니잡과 파견 근로자 등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한 독일보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크다. 또한 고용 자체가 불안한 비정규직의 규모 역시 한국이 약 23.8%로서 OECD 평균 11.79%의 약 두 배에 이른다.

▲ OECD의 해고 규제지수(2013년). 주 : 수치가 높을수록 규제가 강함.

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말대로 과도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정규직 정리해고 규제지수를 살펴보면 어떤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이 가장 낮다. 즉, 해고 요건을 완화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크게 높인 스웨덴과 덴마크보다 한국 정규직의 정리해고가 훨씬 쉽다. 요컨대, 한국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고용 형태에 무관하게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상존해 있다. 정규직이 약간 '덜' 위험할 뿐이다.

보상 ② : 소득 격차의 심화

▲ 소득 격차와 저임금의 비율의 국제 비교.

둘째, 나날이 악화되는 소득 격차이다. 상위 10%와 하위 10% 임금 노동자들 간의 소득 격차는 지난 10년 사이에 3.83에서 4.71로 크게 벌어져 OECD 평균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 같은 소득 격차의 원인은 저임금 노동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25.1%로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물론,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규직은 노동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돼 왔음을 감안하면, 소득 격차의 궁극적인 원인은 저임금 노동자 수가 대폭 증가했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20대 대기업이 쌓아두고 있는 사내유보금은 2009년 322조 원에서 2013년 589조 원으로 83%가 증가했고,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 역시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들이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 비율, 즉 노동소득 분배율은 49.9%로, 국내 기업들의 평균 노동소득 분배율(59.7%)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경향신문 보도 참고).

재벌 대기업들이 '고용 없는 성장'과 '비정규직 고용 확대'를 추구하면서 정작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는 데 기여한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데는 크게 인색했고, 부의 대부분을 자신들이 가져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금 격차의 심화로 인해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어 갈등하는데, 이런 상황을 만든 기업들은 방관자가 되어 배만 땅땅 두들기고 있는 형국이다.

보상 ③ : 장시간 근로

▲ 노동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과 평균 임금.

셋째, 긴 노동시간이다. 주 40시간제가 의무화된 지 약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2163시간)은 OECD 국가들 중 최상위 수준이다. 이에 비해 연간 평균 임금(3만6354달러)은 OECD 평균(4만3772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대선 공약으로 나올 만큼 여가 시간이 부족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의 단계적 적용과 특별 연장근로(8시간) 허용'을 입법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법으로 정해진 근로 시간 한도 자체가 현행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까지 늘어날 수 있다. 게다가 지금도 고용노동부는 8시간 이내의 휴일근무를 연장근무가 아니라고 봄으로써, 휴일에는 휴일수당 외에 연장수당 없이도 근무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법원 판결만 남은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추가 수당 없이 피와 땀을 더 착취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수년간 경제 성장을 위해 고생한 대가로 우리 국민이 받는 대가는 절망적이다. 재벌 대기업을 비롯한 소수의 사회 기득권층이 부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얼마 남지 않은 파이를 수십 만 명의 국민이 나눠먹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해고의 위험에 떨고, 사회에 나온 청년들은 얼마 없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거나 낮은 임금의 불안정한 직장에 몸담아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커져가고 아픈 아이를 돌보기는커녕 가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 결과 사회 전체적으로 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가계로 소득이 이전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지갑을 꼭꼭 닫으면서 민간 소비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계의 부담 능력을 일찌감치 넘어선 가계부채는 가파르게 상승하여 2013년도 말에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 탓에 출산율은 1.18명으로 세계최저 수준이며, 이로 인해 2040년에는 경제활동인구(15세~64세)가 15% 줄어들 것으로까지 예측되고 있다. 노동의 위기가 한국경제 전체의 위기로 확산하는 모양새이다.

▲ 지난 24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마트 노동자들의 도보 행진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경제의 힘을 되살리는 방법

노동이 불안해지면 노동자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노동은 경제, 더 나아가 한 사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토대이기에, 노동이 흔들리면 국가 전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 경제성장도, 시장도, 재벌 대기업도 그리고 피땀 흘려 일군 민주주의도 모두 노동에 기반을 두고 서 있다. 따라서 노동이 제대로 서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첫째, 재벌 대기업 위주의 경제 및 산업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유연성 확보를 위해 낮은 단가로 중소기업들에 아웃소싱을 함으로써 비용을 전가시킨다. 이 과정에서 '을'의 위치에 서는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저임금 노동자들을 다수 고용한다. 따라서 이같은 수직지배적인 하청관계를 개혁하여 대기업과 하청기업 간, 그리고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안정한 고용구조와 임금 격차를 개선해야 한다.

둘째, 노동 문제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참여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현재 노동계, 재계, 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제도인 노사정위원회가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노동시장 개혁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된 데서 알 수 있다시피 이 기구는 정부 주도의 '탑-다운 방식'으로 운영되어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강요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협상 기간 또한 정부가 3~4개월 정도로 짧게 강제적으로 못 박아놓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당사자 문제를 보더라도 노동계 쪽을 대표하는 한국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관계까지 폭넓게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노동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계와 재계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하되 사내하청이나 간접고용 등의 비정규직 대표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이들의 발언권을 존중해주고 이들에게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셋째, 조세 및 복지 정책을 연계하여 시행해야 한다. 세계화 추세에 따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개방경제 구조 하에서는 외부적 요인에 따라 시장이 급변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화에 성공한 스웨덴과 덴마크 모델에서 알 수 있다시피, '유연성'은 동시에 '안정성'을 동반해야 한다. 이들 국가들은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동시에 해고 시 기존 월급의 100%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1년~4년간 제공하여 충격을 줄였다.

또한 보편적인 공공 복지정책을 확충하여 개별 기업들에 맡겨진 기업복지를 축소함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GDP 규모나 성장률과 같은 물질적 지표에만 집착하는 경제는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소중히 여기고, 국민이 제공하는 노동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경제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온정적인 조치만으로는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의 경제를 살리고 노동자들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하긴 어렵다. 노동의 가치와 존엄이 제도적으로 인정되는 사회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체제,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들을 개혁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토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노동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고 싶다.

참고 자료

정이환. "국제비교를 통해서 본 한국의 고용불안정". <경제와 사회> 103호. 2014.
배규식. "한국 고용시스템의 문제점 분석과 신고용시스템으로의 전환". 2015.
정이환. "한국 고용체제의 성격과 개혁방향 모색". 2015.
배규식. "한국 고용시스템의 문제점 분석과 신고용시스템으로의 전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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