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이날 대한민국은 통곡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현실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제자리다. 선체 인양은 기약도 없다. 세월호 유가족을 바라보는 일부의 불편한 시선도 사실이다. 세월호의 교훈을 어떻게 새기고 기억해야 할까. 제주에서 안산 단원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또렷이 기억하며 조용히 치유를 꿈꾸는 공간을 마련하는 이가 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어느 조용한 곳에 '기억공간 리본(re:born)'을 짓고 있는 황용운(36) 씨가 그 주인공.
그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치부를 여과 없이 드러낸 세월호 참사를 절대 잊지 않으면서, 그 기억이 희망으로 다시(re) 태어나길(born)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기억공간 리본(re:born)'이다.
기억공간 리본을 만드는 황용운 씨는 제주와는 별 인연이 없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었다. 최소한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팽목항 앞바다에 침몰하기 전까지는.
그러나 지난해 그날, 약 2시간 20분 만에 300명이 넘는 승객들을 태운 세월호가 시커먼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황 씨의 삶은 크게 바뀐다.
지난 2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조천읍 선흘리 소재 기억공간 리본에서 만난 그는 "되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부조리한 일을 보면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고 말문을 뗐다.
그동안 공연·강연 기획 일을 하며, 남들 눈에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도 비쳐져 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살아오면서 동네 파출소 한 번 가본 적이 없을 만큼 무난한 삶을 살았던 그가, 세월호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집회라는데 자진해서 참석했고 경찰에 연행돼 보기도 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대체 왜 그러냐'고 걱정하셨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스스로 '뭘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계속 했어요. 머리 식히러 가끔씩 여행 가던 제주에도 한 동안은 가지 못하겠더라고요. (단원고 희생 학생들에게) 미안해서요. 그런 고민 끝에 세월호 희생학생들을 위한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가 만들고 있는 기억공간 리본은 제주시내에선 한참 떨어져 있는 조천읍 선흘리 3982번지에 위치해 있다. 처음엔 폐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만든다는 계획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쓰지 않는 창고를 리모델링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진행 중이다.
1톤 트럭 다섯 대가 채워질 규모인 창고에는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한 전용공간인 '기억공간 리본'과 독서·공연·작은 숙박이 가능한 '공존공간 선흘창고 및 바람공간 스튜디오'가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어떤 이는 노래로, 어떤 이는 글로, 또 어떤 이는 사진으로.
사고 발생 1년이 지나도 수백 명이 왜 그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는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이 후진적 사회에 저마다의 재주와 능력으로 세월호가 잊히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황 씨는 "제가 만들고 있는 기억공간 리본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활활 타오르다 어느 순간 꺼져버리는 흔한 불꽃이 아닌, 비록 불꽃이 화려하거나 크진 않지만 오랫동안 주위를 은은하게 밝혀주는 촛불이 되는 장소를 만들고 싶은 게 소망이란다.
"맨 처음에는 억울하게 잠든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주변 지인들과 논의하면서 추모 보다는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죠. 간절히 그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본래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잖아요. 추모에서 기억으로 톤다운(Tone down, 좀 더 누그러뜨리다) 시킨 셈이죠."
그는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기억'을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학생들이 오고싶어 했던 제주라면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 맞다. 단원고 학생들이 여기(제주)에 오려고 하다가 세월호 사고가 났지', '청소년들조차 지켜주지 못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지'라고 떠올렸으면 해요. 반성을 담은 마음으로 말이죠. 그것은 사회적 의미가 개인적 의미로 변환되는 일이잖아요. 그런 역할을 맡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키는 일은 분명 개인이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일에서 기억공간 리본의 탄생에 십시일반 힘을 보태고 있다.
제주 조천읍에서 바람도서관을 운영하는 박범준 대표, 폐목재 재활용 기업 'RE'의 신치호 대표, 김상수 거문오름블랙푸드육성사업단장, 유호근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 사무국장, 안산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복지관 네트워크 '우리함께'의 박성현 사무국장 등을 비롯해 지역 주민까지 많은 이들이 36살의 당찬 청년 황용운 씨를 응원하고 있다.
6년간 근무했던 아름다운가게에서 맺은 인연들도 큰 도움이 됐다. 토박이 제주사람들도 벌써부터 정을 주기 시작했다.
산과 자연이 좋아서 나이 50이 되면 귀촌하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은 황 씨에게 세월호는 귀촌을 10여년 앞당기게 한 사건이다.
아직 창창한 30대에 불과한 황 씨가 "완전한 세월호 진실규명이 되면 그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라고 기꺼이 말할 만큼 황 씨에게 세월호 사건은 매우 유의미하다.
누군가는 '이제는 묻어두자, 그만하자'고 말하지만, 희생자 유가족도 아닌 그가 세월호를 놓지 않는 이유는 '책임감, 미안함'이다.
누가 황 씨에게 부여한 책임감도, 그가 미안해야 할 일도 아닐 수 있지만, 거꾸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미안해하고 기억해야 할 책임감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가.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서 '아, 내가 (대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이건 내가 죽을 수도 있었고 앞에 있는 기자 분이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이잖아요. 모두에게 벌어질 일이었는데 우린 살아난 것이죠. 결국 우리는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으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삶입니다. 각자 분명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살아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오고 싶었던 제주에서 기억공간을 만드는 일은 제가 해야 할 일이고 또 하고 싶은 일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로 제주에서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황 씨. 당분간 기억공간 리본을 많은 이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
"교통사고처럼 배도 사고가 날 수는 있죠. 그렇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국가가 제대로 구조한 인원이 있나요? 왜 그 많은 생명들을 눈앞에서 구조하지 못했는지, 침몰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제가 일했던 아름다운 가게의 목표가 '나눔과 함께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인데, 세월호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세상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겁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 추모하는 일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그의 마지막 당부다.
기억공간 리본은 4월 16일 세월호 사고 1주기에 맞춰 문을 열 계획이다. 이날은 서울과 안산에서 이미 진행된 '4·16 세월호 참사 기억 프로젝트, 아이들의 방' 전시회가 이곳에서도 열리게 된다.
'아이들의 방'은 희생 학생들의 빈방과 유품 사진을 전시하는 행사다. 기억공간 리본에서는 1년 동안 '아이들의 방' 사진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16일 오후 2시 기억공간 리본 및 전시회 개장을 기념해 뮤지션들의 세월호 추모공연도 함께 열린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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