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연행됐네요. (ㅋ)"
지난 18일 오후 10시 33분. 하나의 카톡이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20~30대 조합원 모임(이하 2030모임)' 카톡방을 울렸다. 황용운(35) 조합원이 세월호 추모 집회에 갔다가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이었다. 곧이어 일명 '닭장차' 사진이 올라왔다.
2030모임 카톡방에 걱정 어린 조언이 쇄도했다. 사람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라고들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조합원도 있었다. 황 조합원은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그는 꼬박 하루 반을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부가 시민 목소리를 두려워하나 봐요"
5월 18일을 맞아 황 조합원은 광주에 갔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광주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그는, 이번 기회에 하루 연차 휴가를 내고 5·18 묘지에 가보기로 했다. '불꽃원정대'라고, 이름도 뜨거운 광주 원정대가 출발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뻔했다. 18일 서울에 돌아오니 웬걸. '가만히 있으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서 그는 못 볼 걸 봐버렸다. "몸싸움하는 사진, 용혜인 씨가 경찰 앞에서 얘기하는 동영상, '가만히 있으라'고 적힌 종이 팻말이 찢긴 사진, 국화꽃이 떨어진 사진"을 봤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집에 갈까" 잠시 고민했던 그는 '못 볼 걸 봐버린' 업보로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경찰벽이 뚫린 데로 걸어 들어가니 공교롭게 용혜인 씨가 발언하고 있었다. 그도 발언 순서를 기다렸다. 그러던 차에 바로 앞에서 한 여성이 경찰에게 스피커와 마이크를 빼앗기는 것을 봤다.
처음에 그는 "(경찰의 대응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조곤조곤 얘기하고" 화단에 서 있었다고 했다. 곧이어 해산 명령이 나왔고, 사람들이 스크럼을 짜고 이순신 동상 주변에 눕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눈 깜짝할 새 용혜인 씨가 사지가 들려서 잡혀가는 걸 봤다. (☞ 관련 기사 : "이게 국가인가"…경찰, '촛불 행진' 100명 무자비 연행)
집에 갈까 한 번 더 고민하던 그는 "일면식도 없지만, 나보다 10살 어린 용혜인 씨"를 보고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행 과정은 위험해 보였다. 황 조합원은 "여성분은 여경이 연행해야 하는데, 스크럼을 짜고 누워 있는 여자들 몸으로 남자 경찰들 손이 훅훅 들어가니 성추행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찰이)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결국 만류하던 그도 경찰 4명에 잡혀 연행됐다. 걸어서 가겠다고 했지만, "양옆에서 잡고 뒤에서 밀듯이 질질 끌려" 갔다.
새벽 3시 반경 그를 비롯한 연행자 10명이 도착한 곳은 성동경찰서였다. 2030 카톡방의 조언대로 그는 '진술 거부'를 하기로 했다. 할 일 없이 앉아 있으니 배가 고팠다. 연행자 한 명이 경찰에게 돈을 주며 밥을 시켜달라고 했다. 경찰이 1시간 반 뒤에서야 연행자들에게 각각 김밥 한 줄씩을 사줬다. "김밥 한 줄밖에 안 사줘서 배가 고파…." 그의 불만 중 하나였다.
19일 오후 8시 30분께, 프레시안 2030모임 조합원 두 명이 황 조합원을 면회했다. 그는 "조합원 두 분이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더라"며 "여기까지 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고맙고 감격했다"고 말했다.
그가 감격할 동안 2030 카톡방도 분주했다. 면회를 다녀온 조합원들은 "언제 나올지 위에서 지침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한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꼬박 하루 반을 "할 일 없이 갇혀 있던" 그는 20일 오후 3시께야 나왔다. 소감을 물었더니 "이런 분들(평범한 시민들)까지 잡아간 게 딱 봐도 보이잖아요? 왜 잡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세월호 사건도 이해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간 거거든요. 정부가 시민 목소리를 두려워하나 봐요"라고 했다.
"나에게 프레시안 2030모임이란? '눈에 안 보이는 연대'"
원래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정치적인 관심을 어떻게 표현할 줄 몰랐던" 황용운 조합원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멘붕'이 왔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경찰이 파업 중인 철도노조 간부를 붙잡기 위해 '경향신문사 침탈'을 강행하자 본격적으로 "열 받았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후원하다가 바로 프레시안 조합원이 됐다.
오프라인 조합원모임에 갔었던 그는 18일 광화문에서 최형락 프레시안 사진 기자를 만났다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기자들 나가라고 했는데, 최형락 기자가 경찰과 스크럼 짠 사람들 중간에 끼어서 유유히 사진 찍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황 조합원에게 프레시안 2030모임이란 무엇인지 물었더니 "눈에 안 보이는 연대" 같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서로 피상적인 관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만나면서 '아, 우리가 이렇게 끈끈하게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서로 간에 끈들이 있구나."
조금은 슬픈 후문 하나. 2030모임에서는 한때 황 조합원을 위한 '두부 회동'이 추진됐다가 무산됐다는 후문이 돌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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