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화해와 상생, 도민대통합을 논하는 자리에 뜬금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새마을운동 등 소위 '용비어천가'가 흘러나와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2일 오후 2시 제주상공회의소 5층 회의실에서 열린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제주 4.3 도민 대토론회'에서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최홍재 기획단장의 주제 발표 내용이 4.3토론회와 엇나간 것이어서 참석자들로부터 비판을 샀다.
이날 최 단장은 '지금은 국민대통합시대'란 주제발표에서 '김정은 북한 체제가 곧 급변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새마을 운동은 국민대통합 주요 사례'라는 등 '화해와 상생' 또는 '대통합'이라는 이날 4.3도민 토론회 개최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발표내용으로 시간을 할애했다.
최 단장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란 소주제를 통해 '한국은 작지만 큰 나라'라고 소개한 후,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전 세계 15위에 달하며, 무역 8위 등이다. 6.25전쟁 직후, 아프리카 가나보다 못살았던 나라가 지금은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어 "6.25전쟁으로 빈곤에 허덕이던 1960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외로 나가 '우리나라에 고속도로를 뚫겠다'며 돈을 빌려왔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예찬론으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면서 최 단장은 갈등 조장의 원인을 '국민들의 불신'이라고 한술 더 떴다. 갈등의 사례로 광우병 파동과 FTA 반대과정의 촛불집회 등을 대표적 예로 꼽았다. 급기야 발표를 듣던 일부 참석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최 단장은 아랑곳없이 "새마을 운동 당시에는 전국민이 다같이 잘 살기 위해 하나 됐다"고 언급했다.
압권(?)은 따로 있었다. 이날 최 단장이 "대한민국 대통합 사례로 단연 최고는 지난 1987년 6.29선언"이라고 말하는 순간 토론회 상당수 참석자들은 발표 자료를 덮어 버렸다.
6.29선언은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의원 겸 대통령 후보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 특별 선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독재에 반대한 국민들이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원이 공식 지정되자 들고 일어난 6월민주화항쟁의 시발점이 됐다.
최 단장이 말한 '대통합'은 독재에 맞서 일어난 국민들과 그 하나된 목소리가 아니라,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는 데 치중했다.
실제로 최 단장은 '6.29선언'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이 큰 뜻을 가지고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한국판 명예 혁명"이라고 까지 치켜세웠다.
최 단장은 또, "영국과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도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대한민국 처럼 피를 적게 흘리고 합리적으로 화합하면서 민주화된 나라가 없다"며 "대한민국 대통합 사례중 가장 훌륭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발표가 끝나기 직전 최 단장은 "우리는 민관 갈등을 최소화 하고 예방하려 한다. 국책사업을 할 때 국민, 주민들과 차분하게 얘기를 해나갈 예정"이라며 "사전에 갈등을 예방할 목적이다. 제주 강정 마을이 (해군기지 건설로)아팠듯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을 마쳤다.
최 단장의 발표가 끝난 뒤 양조훈 제주4.3평화교육위원장이 '4.3 대통합을 위한 제안'을 발표했으며, 모든 발표가 끝난 뒤 유철인 제주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고, 이성찬 제주4.3희생자유족회 고문, 김대옥 재향경우회 제주도 서부지부 부회장, 한석지 제주대 교수, 김계춘 제주매일 주필이 지정토론을 펼쳤다.
최 단장은 자기 발표가 끝난 뒤 자리를 떴다. 토론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유철인 제주대 교수는 "오늘 발표내용은 마치 정부 정책 홍보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언급되지 않아 아쉬웠다. 자리에 함께 했다면 묻고 싶다"고 점잖게(?) 비판했다.
토론이 끝나고 4.3희생자 유족인 송승문(66)씨는 "최 단장 발표는 아카데미나 생활 지도자 연수에나 어울릴 만한 내용이었다"고 촌평했다.
송 씨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 기획단장이라고 해서 기대감을 갖고 토론회에 참석했다. 4.3 화해와 상생을 위해 어떤 말을 할지 기대했는데, 4.3이란 단어는 자료집에 단 한차례도 나오지도 않았다.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또다른 참석자 정 모씨(53)는 "새마을운동의 성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4.3도민대토론회에서 '화해와 상생' '도민통합'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과거정권에 대한 용비어천가만 일방적으로 늘어놓은 것 같아 이런 토론회를 왜 했는지 한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날 4.3 도민 대토론회는 새누리당 제주도당이 주최했다. 4.3희생자 유족회 뿐만 아니라 재향경우회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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