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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따지는 건 힘들지만, 뒷사람 생각하면…"

[온 가족 세계여행기] "베트남, 호객꾼에게 사기 당하다"

호이안과 훼를 거쳐 수도 하노이까지

이후 이동경로를 여러 고민 끝에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슬리핑버스를 오픈티켓으로 구입해서 베트남 중부를 거쳐 북부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픈 티켓은 주요 도시 어느 곳에서나 내려서 구경하고 언제든지 다음 행선지로 갈 수 있는 편리한 티켓이다. 가격도 합리적이며, 10시간 이상 이동하는 경우에는 밤버스를 이용하므로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는 1석 2조의 효과가 있다. 이층으로 되어있고 각자 한 칸씩 의자를 완전히 젖혀서 누워갈 수 있게 해놓은 슬리핑버스! 처음 타보는 버스라 설레기도 한다.
우리가 탄 버스의 여행객은 우리를 제외하고 모두 서양인이다. 대부분이 커플 여행객! 그러나 나이는 천차만별이다. 흔히 머릿속에 배낭을 멘 청춘 남녀가 그려지지만, 의외로 나이 지긋한 중년 이상의 노년 커플이 더 많다. 특히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각각 배낭을 하나씩 메고 버스를 타고 차를 마시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그들의 삶의 자세가 우리와 사뭇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외의 가족여행객도 하나 있었는데 우리보다 훨씬 어린 아이 세 명을 데리고 슬리핑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나이도 아이들도 그리고 불편함도 장애물이 아닌 듯 깃털처럼 가벼운 자유로움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의 피로감이 묻어나는 까칠한 피부와 부스스한 머리마저 자유로움으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자세는 언제 봐도 부럽다.

슬리핑버스를 타고 처음 도착한 호이안

어느 곳이나 그렇듯 터미널엔 호객꾼(일명 삐끼)이 접근한다. 호객꾼은 숙소사진을 들고 이것저것 다 제공한다며 제법 싼 가격을 제시한다. 그러나 정작 찾아간 숙소에서는 다른 가격을 얘기한다. 우리가 그 가격이 아니라고 말하자 숙소주인은 에어컨 없는 더 싼 방을 보여주는데 이 더운 나라에서 에어컨 없이 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데 말이다. 우린 애초에 터미널에서 제시한 가격과 다른 게 말이 되냐고 항의하는데, 숙소주인은 이곳까지 이동했는데 어디로 가겠냐는 듯이 배짱이다. 이런 협상엔 응할 수가 없다. 결국 그 많은 짐을 메고 다른 숙소를 찾았다.

호치민에서는 친구의 도움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나짱에서 휴식을 취하며 쉬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슬리핑버스를 타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처음타보는 버스라 설레기도 했지만, 밤 동안 버스에서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호이안에 도착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거기다가 호객꾼과 호텔주인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가 나서 1시간 남짓 배낭을 메고 다른 호텔을 찾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니 우리가족의 저질체력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일정이긴 했다. 그럼에도 도시의 명소를 구경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숙소에서 지도를 받아들고 시가지로 걸어 나갔다. 여행의 제1철칙! 과욕은 금물이다. 여기저기 구경한다고 욕심내서는 안되는데 일정이 바쁘니 오늘 호이안을 돌아봐야 한다며 영락없는 초보여행자 행동을 하고 있었다.

▲ 호이안의 올드 타운. ⓒ가온가람이 가족
▲한적한 호이안. ⓒ가온가람이 가족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된 곳,
베트남의 옛 도시를 가장 잘 보전하고 있는 곳,
시간이 멈춘 듯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러나 우리는 이 많은 수식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피곤했다. 터미널의 호객꾼부터 꼬이기 시작해서 도시 전체가 아기자기한 가게들로 가득했던 올드타운도, 200~300년 된 고가(古家)의 고풍스러움도, 홍등의 멋스러움도, 갤러리처럼 예쁘게 꾸며놓은 많은 상점들도 그냥 스쳐지나갔다. 다리가 아파서 꽤 많은 돈을 내고 인력거를 탔는데, 그 작은 시가지에 몇 곳에 내려주고는 끝이다. 사실 이 정도 시가지는 걸어 다녀야 하는데, 피곤도 하고 돈도 아깝고 뭘 봤는지 기억도 잘 안날 정도이니 말이다.

▲ 슬리핑 버스. ⓒ가온가람이 가족

특별한 느낌을 받지도 못한 채 돌아오는 길에 숙소를 못 찾아서 시가지를 몇 바퀴 돌고 나니 피곤에 지쳐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서로 여기로 가야한다 저기로 가야한다 큰소리도 나고 의견도 어긋나며 옥신각신한다. 한동안의 침묵이 계속되다가, 오늘따라 왜 이리 김치찌개에 소주가 당기는지, 애들도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한다. 사실 베트남은 어느 가게나 쌀국수가 있고 우리 입맛과도 잘 맞아서 음식에 대한 향수는 상상도 안했었다. 가는 곳마다 별 거부감 없이 잘 먹었고, 때로 향이 너무 강한 음식이 있을 뿐 음식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 10일정도 지나자 여지없이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나왔다. 이곳에서 김치찌개와 떡볶이를 먹을 수는 없고, 대신 식당에서 메뉴 2-3개를 시키고 집에서 싸간 고추장에 밥을 3개는 추가해서 싹싹 비벼먹었다. 사진 찍을 틈도 없이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쳐다보며 숙덕거리던지 말던지 상관도 안하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고추장 비빔밥을 먹고 나서야 다들 하하 호호 언제 싸웠냐는 듯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우리는 단지 고추장 하나로 그날의 피로감을 싹 날려버릴 수 있다는 가장 본능적인 행복감을 맛보며 서로에게 좀 더 배려하자는 가족회의로 결론 맺었다.

계속 슬리핑버스로 호이안에서 훼로
훼에 도착하여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며 적당히 잘 곳을 물색하는 도중에 오토바이로 투어를 해주는 아저씨들을 만났다. 4명이서 두 대에 나눠서 타고 우선 숙소부터 결정하기로 했다. 까다로운 둘째 때문에 숙소 정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장기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숙소로 결정하는 미니 호텔은 작기도 하고 시설도 볼품없다. 둘째는 계속 숙소가 마음에 안 든다며 입이 한발은 나와 있다. 우리는 1년동안 여행해야하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숙소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해도 무조건 싫은가 보다. 그러다가 자신도 매번 좋은 곳에서 잘 수 없는 건 알고 있단다. 그래서 우린 서로 타협을 했다. 한 도시를 갈 때마다 한명씩 번갈아가며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기로. 첫 번째는 둘째인 가람이. 역시 예상대로 수영장이 딸린 호텔을 잡는다. 가격은 꽤 비쌌지만 간만에 럭셔리 조식에 포식도하고 편안하고 호사스러운 호텔에 묵었다.

훼는 마지막 봉건왕조인 응우엔 왕조가 있었던 곳으로 많은 왕궁과 황제릉이 남아있으며 곳곳에 많은 사원들이 있어서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곳이다. 또한 마지막 왕조의 왕궁이 있었기 때문에 독립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상당한 피해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흐엉강을 끼고 여기저기 자리잡은 왕궁과 사원들은 잔잔하면서도 고즈넉한 아름다움으로 그들의 역사를 보듬고 있었다.

응우엔 왕조의 왕궁은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흐엉강변의 뜨득황제궁과 몇 군데 더 둘러본 사원들은 각자의 색깔에 어울리는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을 가는 도중 오토바이로만 갈 수 있는 좁은 길로 접어들어 달릴 때는 훼라는 작은 소도시만의 신선한 바람과 향긋한 냄새가 우리를 휘감는다. 으흠~~
그러던 중 유난히 눈에 띠는 엄청난 규모의 무덤들이 보인다. 알고 보니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의 무덤이었다. 우리는 바로 우리나라가 그 전쟁에 참전한 것을 사과했다. 평화주의자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아저씨들은 굿가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 짧은 순간 스쳐가는 표정에서도 전쟁으로 힘든 과거의 어두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토바이 투어는 기동성도 좋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가다가 점심도 아저씨들과 함께 먹으며 담소도 나눈다. 짧은 언어지만 서로 소통하는데 문제는 없다.

아저씨들이 소개한 싸고 맛있는 현지인 음식점. 물론 다 계약이 되어 있는듯 했지만 맛도 좋고 참 저렴하다. 아저씨들과 다함께 먹어도 1만원 정도. 우리와 같이 투어하면서 점심은 드시는지? 같이 먹길 권유해도 손사레를 치다가 여러 번 권유해서 함께 드신다.

두 명의 현지인 아저씨! 어느새 이름도 묻고 가족에 대한 얘기도 듣는다. 아저씨 이름은 Hoa와 Thuan. 각각 58세, 50세. 깡마른 몸에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성한이가 거의 없다. 삶의 피로감이 가득 느껴진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함박웃음에선 사람의 마음까지 정화하는 정겨움과 따뜻함이 있다. 우리는 아저씨들과 현지인 전통음식점에 가서 저녁도 함께 먹었다. 무슨 알 수 없는 잎에 싸인 찹쌀떡 같은 건데 피쉬 소스를 찍어 먹는 반넘이라는 음식과 돼지고기 꼬치구이 같은 넴느엉이라는 음식은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이렇게 하루투어를 마치고 내일 또 투어를 이어가기로 약속한다.

이런 순박한 아저씨들과 다음날 투어까지 마치고 하노이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이다. 아저씨들은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얘기한다. 우리는 버스터미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눈물을 보이시는 Hoa아저씨! 오토바이 안에서 뭔가 포장된 걸 꺼내서 우리에게 건네준다. 그 전날 반넘을 아내가 만들어 판다고 했는데 그걸 싸오신거다. 40개를 가져오려 했는데 다 팔려서 20개밖에 못 가져왔다며 미안하다고 하신다. 하노이는 대도시라 강도도 많고 소매치기도 많다며 지갑과 휴대폰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Hoa아저씨가 다시 오셨다. 봉지에 뭘 들고 오셨는데 애들 먹을 과자와 우리 먹으라고 커피를 사오셨다. 여행지에서 투어로 만난 우리를 마치 시골집에 방문한 손주 대하듯 과자까지 사주시는 아저씨의 심성을 보며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좋은 사람의 향취는 어느 곳에서나 늘 같은 감동을 주는 듯 했다.

▲ 순박한 훼의 아저씨들과 함께. ⓒ가온가람이 가족

멋진 하롱베이의 관광지이기도 한 하노이?

첫 단추부터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여행의 제 2철칙 "터미널에서 만난 호객꾼은 그냥 무시한다"를 어기고, 또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숙소와 함께 묶어서 하롱베이 투어를 싸게 해주겠다며, 음료수도 내주고 커피도 타준다. 1~4등급 배중에서 흥정을 해서 2등급 배를 3등급 정도 가격으로 타기로 결정했다. 정작 숙소는 물도 새고 시설이 형편없었지만 다음날 멋진 배를 타고 선상에서 와인도 마시며 우아하게 하롱베이의 밤바다를 감상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다음날 일찍부터 미니버스로 4시간 남짓 걸려서 하롱베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간단한 통성명으로 만난 영국인 할머니는 40년 전에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와봤다며, 한국을 너무 순박하고 좋은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서울은 40년 전과는 너무 많이 달라지고 엄청나게 큰 도시가 되었다며. 서로 가족도 소개하고 좋은 교감을 가져가던 영국할머니 일행은 우리와 다른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린 그 할머니 일행과 함께 배에서도 좋은 교감을 이어가고 싶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작은 보트를 타고 큰 배로 이동하는데, 수많은 멋지고 좋은 배들을 모두 지나서 칠도 다 벗겨지고 저기서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은 배에 올라탔다. 으앙~ 그동안 참고 있던 인내심이 폭발했다, 가이드에게 책자를 보여주며 우리가 계약한 배는 2등급인데, 이건 4등급 배라며, 말이 되건 안 되건 막 따졌다. 화가 나서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이다.

가이드는 미안하다며 자신은 순수한 가이드일 뿐이고 다시 하노이로 돌아가서 숙소 주인에게 부당함을 함께 얘기해주겠다고 화를 풀라고 하더니, 우리와 함께 배에 탄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왔으니 그렇게 부당한 건 아니라며 참으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를 가는 투어가격이 회사마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심지어 당일투어는 우리가 낸 가격에 1/5로도 투어가 가능했다. 하노이에는 워낙 많은 투어회사가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고무줄 요금이었다. 고무줄 요금과는 별개로 적어도 우리가 계약한 배는 태워주어야 하는데, 이건 명백한 사기다.

다음날 하노이로 돌아와서 숙소주인과 막장 대치를 했다. 서로 소리 지르고 화내고, 계약했던 호객꾼 불러와라, 3자대면 하자 등.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이게 사회정의의 문제로 여겨졌다. 결국 등급 간 격차에 따른 차액을 보상받으며 이 사건은 결론이 났다. 차액을 보상받는 문제가 아니라 1박 2일동안 망쳐버린 하롱베이 투어에 대한 보상과 재발방지를 약속받고 싶었으나, 언어적 한계도 존재하고 타국이라는 실질적 한계도 존재해서 차액보상이라는 타협점으로 결론 난 것이다.

이날 숙소주인과 막장대치하면서 충돌을 싫어하는 남편은 "그냥 가자" 나는 "안 된다"로 갈등하다가 남편과 둘째아이는 다른 숙소를 찾으러 가고 나와 큰아이 둘이서 무려 3시간을 외롭게 투쟁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나의 이 막장대치가 이후 이곳을 지나가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은 될 거라는 거다. 부당한 것을 그대로 참고 넘어가는 것은 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그날 큰 아이에게 부당함을 말하는 과정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는 현장교육을 한 셈이 되었다.

이렇게 훼에서는 시골할아버지 같은 따뜻한 정으로 눈물 젖는 감동을 받은 반면, 하노이에서는 관광객 등을 치고도 소리치며 화내던 장사치의 몰염치를 경험하고서야 베트남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수많은 전란을 겪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낸 베트남! 그러나 그 고속성장의 달콤함이 만들어 낸 각박함 역시 그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을….

▲ 하롱베이. ⓒ가온가람이 가족

(다음은 소박하며 조용한 나라 라오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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