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미국이 저지른 '비밀 전쟁', 라오스의 상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미국이 저지른 '비밀 전쟁', 라오스의 상처

[온 가족 세계여행기] 여행의 시작

여행의 첫날이다.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창밖과 문밖에서는 오토바이소리, 아침 준비하는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광고하는 소리 등 낮선 소리들이 들려온다.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다른 경험과 다양한 상상을 생각주머니에 담아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풍습에 익숙해지는 것! 우리는 이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첫발은 인도차이나 반도 3국! 베트남과 라오스 그리고 태국이다.

그 외에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미얀마를 가보고 싶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 제약과 댕기열 등의 발병 경보로 아쉬움을 뒤로 했다. 경로는 베트남 남부의 가장 큰 도시 호치민으로 들어가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베트남의 몇 개 도시들을 거쳐 하노이까지 올라간 후 라오스로 넘어간다. 라오스의 옛 수도이자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을 거쳐 라오스의 현재 수도이며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비엔티엔으로 이동, 그곳에서 태국 방콕으로 건너가 인도차이나반도의 한 달을 마무리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국가들은 티벳을 발원지로 해서 중국의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메콩강을 삶의 터전으로 한다. 세계 12대 강이며 약 9000여개의 지류를 가진 메콩강은 베트남에서는 메콩델타와 저지대를 통해 1년에 3모작이 가능한 곡창지대를 제공하는가 하면, 인도차이나 국가 중 유일하게 바다와 인접하지 못한 라오스에게는 국경을 따라 구불구불 흐르며 생명의 원천을 제공한다.

이곳의 국가들은 대부분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세계열강들의 식민지로 남았다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독립을 시작하고도 오랜 내전과 전쟁을 치른 고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들른 베트남과 라오스 역시 오랜 시간 프랑스 지배를 받다가 간신히 독립을 얻었으나 잇따라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내전과 미국의 개입 등으로 장기간 전쟁에 휘말려 왔다. 그중에서도 베트남 전쟁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여년을 넘게 이어진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했다고 하니 그곳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명분 없는 전쟁은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국제사회의 반전여론으로 1973년 종료된다.

이 전쟁에서 라오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라오스에서 베트남 북부를 통해 전쟁물자가 이동한다는 이유로 미국은 한편으론 라오스의 내전을 부추기며 다른 한편으로는 라오스 전 국토에 약 50만회 이상, 2백 만톤 이상의 폭탄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이 라오스에 대한 폭격과 내전개입사실을 부인해서 붙여진 이 전쟁의 이름이 비밀전쟁이다.

베트남과 라오스에는 아직도 그 지난한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베트남은 어느 도시에나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는데 대부분이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묘지였다. 특히 우리가 들렀던 훼에서는 유난히 눈에 띄고 규모가 엄청난 무덤들이 있었는데, 한 10대 소년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묘지를 살피며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라오스에서도 그때 폭격으로 인한 불발탄으로 현재까지도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다만, 태국만이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서 전통적으로 강한 중앙집권적 왕조가 자리 잡고 있었고, 16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침략전쟁에서 한편으론 문물을 받아들이고 한편으론 강한 통치력을 발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다. 태국은 식민지 지배는 피해갔으나 여러 번의 쿠테타와 함께 오랫동안 군부독재정권이 이어지며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방콕의 시내에서 우연히 들렀던 한 대학에서는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동상과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나라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나라로 남단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 호치민시가 있고, 북쪽에는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서 유럽식 건축물과 진한 프랑스식 커피 등이 문화 속에 잔재해 있다. 또한 세계의 열강들과 수십년에 걸쳐 치르면서 황폐해진 국토와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1986년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며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베트남은 우리가 머물렀던 호치민을 비롯하여 나짱, 호이안, 후에, 하노이까지 사회주의 국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업화가 성행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급속한 성장속도는 사람들에게 돈에 대한 신뢰를 안겨주었으나 그만큼 사회적 불평등과 마음의 각박함을 낳고 있었다. 나짱의 투명한 물빛과 고운 모래사장이 있는 빈펄섬은 이미 사유화되어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비용을 치러야만 가질 수 있는 자연이 되어버렸고 하노이의 수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뒤섞여 꽉 막힌 정체된 도로는 속임수와 사기도 마다하지 않는 돈에 묶여 옴싹 달싹 못하는 그곳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외모와 문화가 가장 비슷한 베트남에서 우리는 어느 곳에서는 사람의 따뜻한 정으로 진한 감동을 받아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 강한 여운을 받은 반면 어느 곳에서는 관광객 등을 치는 사기꾼에게 이른바 뚜껑이 열리는 상반된 감정을 경험하고서야 베트남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과 너그러움이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나라발전이라는 고속성장의 달콤함은 반드시 각박한 사회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베트남 여행을 통해서 몸으로 체험하였다.

우리가 두 번째로 도착한 나라는 라오스다.

라오스는 편안하고 조용한 나라다. 라오스 국민의 대다수가 소승 불교를 믿으며, 거의 모든 도시에 수많은 사찰이 있다. 라오스에서 불교는 종교로서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루앙푸라방의 탁밧(탁발수행)은 종교행사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하루 끼니를 제공하는 구휼에 가까운 수행으로 길게 늘어진 주황색 승려복의 맨발 행렬은 이른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마음속까지 정화하는 경건함이 있다.

느릿느릿 걸어가며 하얀 이를 내보이던 수줍은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나라, 라오스는 우리가 거쳐 간 도시 어디에서도 사회의 각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라오스에서 화가 나는 일이라곤 인프라가 부족해서 도시 간 이동을 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아찔한 비포장 길과 간혹 발생하는 단전과 단수가 전부다. 흠뻑 젓은 땀을 씻어내기에 너무 가느다란 물줄기에 짜증이 나고 깜깜한 밤이 일찍 찾아와 빠르게 잠자리에 들어야 되는 것이 이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답답함의 전부라면, 과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낮의 더위도 식히고 수영도 할 겸 숙소 가까운 메콩강 지류에 수영복을 떡하니 차려입고 튜브를 들고 신이 나서 강가로 갔다. 우리가 수영하는 강가로 라오스의 한 가족이 다가온다. 당연히 수영을 즐기러 온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쭈뼛쭈뼛하며 비누를 꺼내서 온몸에 바른다. 일가족이 목욕을 하러 온 것이다. 쭈뼛거리며 수줍은 얼굴로 목욕하던 가족들! 그중에서 수영을 잘하던 9살 남짓 되어 보이는 꼬마아이! 우리에게 수영시합을 하자며 몇 차례나 물살을 가로질러 강위로 올라가던 아이! 자기가 이겼다며 자신감에 차서 신나하던 환한 웃음은 아직도 나의 머리 한켠에 행복감으로 남아있다.

▲ 메콩강에서 만난 소년. ⓒ가온가람이 가족

인도차이나 반도의 3국에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태국이다.

우리는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만 머무르며 주변의 몇 곳을 둘러보았다. 방콕은 200년 넘게 수도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랜 시간 여러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자국의 문화에 흡수시켰기 때문에 문화의 다양함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도시였다. 한켠에는 반바지 차림의 복장마저 터부시하는 근엄한 왕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켠에는 카오산로드로 대표되는 유흥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오산로드는 골목 구석구석까지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하며 메인길에는 어디서든 보게 되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하여 레게머리를 따는 상인, 타투를 새기며 물담배를 뿜어내는 사람들로 밤늦게까지 술렁거렸다. 우리도 카오산로드를 걸으며 태국 맛사지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시원한 생맥주도 들이키며 그들의 문화와 함께 출렁거렸다.

이렇게 인도차이나반도 3국은 제각각 다른 문화와 느낌으로 다가왔다.
베트남은 따뜻함과 각박함이 병존하며 몸살을 앓고 있었고,
라오스는 가난하지만 차분하며 수수해서 행복한 곳으로 기억되었고,
태국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지만 큰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곳으로 그렇게 기억되었다.

(다음 편에선 본격적인 베트남 여행기가 연재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