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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큰 애에게 '휴학하고 세계여행' 제안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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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큰 애에게 '휴학하고 세계여행' 제안했더니…"

[온 가족 세계여행기] "언제까지 '현재의 행복'을 저당잡혀야 하나"

사람들이 묻곤 한다. 어떻게 1년간 가족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냐고?

마땅히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지연시키지는 말자'였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우리는 흔히 묻곤 한다. "왜 일을 하는지? 왜 돈을 버는지?"
사람들은 대답한다. 누구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노후준비를 잘 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노후준비를 하는데 필요한 돈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필요경비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데도 돈이 많건 적건 관계없이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왜?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 지불하는 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미래의 불안감을 채우는데 쓰고 있었다.

더불어 사람들 대부분의 소망은 한결같이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유유자적하게 여행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며, 현재의 행복을 미래의 소망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지금의 행복을 너무나 많은 이유로 미래로 더 나은 미래로 지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를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까? 오늘을 행복하게 살면 어릴 적 우화인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처럼 미래에는 불행해질까? 우화와는 달리 만약 오늘이 행복하면 그 다음 내일이 또 다시 오늘이 될 테니까 매일 매일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런 의문으로 가득하던 2~3년 전 어느 날 문득 라디오에서 50세가 넘은 중년가장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모두 데리고 5인 가족이 유라시아 횡단 세계여행을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듣게 되었다.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학교도 자퇴하면서까지 말이다. 이유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사춘기를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띵해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20여년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애를 낳아 키우며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었다. 모든 맞벌이 부부가 그렇듯 어른들은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한 것도 모자라 이어지는 회식 등은 사회생활의 필수조건이 되어 버렸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하는 얘기라곤 "밥 먹었니?, 숙제했니?, 씻었니?" 정도의 형식적인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나마 주말에는 어른은 어른대로 직장에서의 피로감으로 쉬느라 여념이 없고 주중에 채워지지 못한 애정을 원하는 아이들에게 매번 "엄마, 아빠 피곤해. 조금만 더 쉬고 나서 나중에"라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언제나 입버릇처럼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과 행복을 같이 나눌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그 인터뷰를 듣는 순간 "그래! 맞아!" 나는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줄 생각은 안하고 학생들은 공부하고 어른들은 일하는 것만이 사회가 원하는 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뉴스를 들을 때는 마냥 남의 일 같기만 했다. 왠지 나와 다른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20년 남짓 일했지만 직장은 여전히 더 더욱더 열심히 일하라고 재촉하고 매일 매일의 피곤함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원동력이 아니라 무기력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부터 영어니 수학이니 하며 학원을 다니다가 거의 모든 시간을 학원에서 상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 이른바 '하숙생'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회는 왜 우리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만 하는 걸까?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고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더 열심히 일하라고 채근하기만 하는 걸까? 20여년 청춘을 바쳐 일했으면 한번쯤 쉬면서 인생을 돌아보기도 하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달콤 쌉쌀한 세상얘기도 좀 나누고 하면 좋을 텐데…. 50세가 넘는 중년가장도 현재의 행복을 미래로 지연하지 않는데 그보다 젊은 나는 왜 지금의 행복을 접어두고 나중을 기약하는지? 그러나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쳇바퀴만 뱅뱅 돌고 있었다.

그동안 사회는 더욱더 각박해져갔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에는 학생들의 왕따, 사회적 폭력, 살인 심지어 OECD 1위의 자살률까지…. GDP 규모 면에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라는데, 사람들의 생활은 이런 경제력을 전혀 체감할 수 없는 현실! 오히려 오르는 물가와 애들 학원비, 대학등록금,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셋값 등을 대응하며 생활하기도 벅차서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이 현실이었다.

문득 나는 매우 궁금해졌다. 과연 다른 세상도 이렇게 괴롭고 힘이 들까? 그나마 과거 며칠간의 짧은 해외여행으로도 다른 세상은 우리와 사뭇 달라보였다. 다른 세상은 어떤지 한번 보지 않고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보편적인 것인지 이상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을 듯 보였다.

'그래! 세계 속으로 한번 튀어보자'
본격적으로 여행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중학생인 큰 아이는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공부를 착실히 하는 모범생이었고, 초등학생인 작은 아이는 항상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학원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유영혼이었다. 둘째 애는 여행가자고 하면 좋아할게 뻔하고 모범생인 우리 큰 아이에게 물었다.

"공부하기 힘들지! 근데 넌 왜 공부를 하니?"
큰 아이는 시큰둥하게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해야 하는 거니까 하는 거지! 뭐."

부모속 안 썩이고 착실한 모범생으로 보였던 큰아이도 남들이 공부하니까 그냥 공부하는 거였다. 내가 뭘 잘 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하기 싫은 건 뭔지? 이런 고민 따윈 공부하는 학생들의 머릿속에 들어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한창 사춘기를 겪으며 좌충우돌도 해보고 부모에게 이런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대들기도 하고 때론 이런 충돌로 가출도 생각해 볼만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중요부위를 거세당한 듯 그렇게 감정 없는 표정과 심장 없는 회색얼굴로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을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적어도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를 죽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최선인 사회에서 뒤쳐짐이나 낙오는 그저 패배일 뿐이었다. 다양한 사고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사는 것이 사회일 텐데 이미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오로지 단 하나의 정해진 길만을 걸어가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었다.

길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 길 안에 갇혀서는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탈출이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계획되었고 여행을 위한 출발을 준비했다.

1년 간의 세계여행에서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고, 다음은 주변의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 외에 우리의 직장과 아이들의 학교문제를 해결하고 1년 간의 여행일정에 대한 계획은 큰 줄기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그냥 닥쳐서 해결하기고 했다.

먼저 1년 간 여행에 소요될 경비를 마련해야 했다. 최대한 절약한다면 한국에서 4인 가족이 1년을 지내는 생활비면 얼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경비는 그동안 가입하고 있었던 적금과 미래를 위해 대비했던 보험과 연금 그리고 실생활에 아무 쓸모도 없이 가지고만 있었던 패물을 모두 처분하였다. 생각 이상으로 상당한 돈이 마련되었다. 그동안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히며 얼마나 많은 금액을 미래로 지연했는지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부족한 돈은 부채로 남긴 후 돌아와서 일해서 갚으면 되는 것이다. 미흡하지만 여행자금 마련 과제 해결.

다음은 가족들에게 우리의 여행계획을 알리고 상황을 교감하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는 이 부분에서 상당한 난관을 겪었다. 여행계획을 듣자마자 부모님들이 밤잠을 안주무시고 식음을 전폐하시며 온갖 걱정을 태산같이 쌓아놓으셨다. 그 모든 만류의 이유는 걱정되어서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해도 가는 날까지도 '오래 못 버티고 한달 안에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셨다. 물론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우린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모르셨다. 다음 과제도 우리 맘대로 해결.

▲ ⓒ가온가람이 가족
우리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 학교에 휴학을 신청했다. 복직 여부는 불투명했지만 그건 돌아와서 생각하기로 했다. 많은 걸 버리고 비운 자리에 자신감을 채운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 다음은 아이들의 학교문제다. 초등학생은 돌아와서 주요 과목을 시험 봐서 통과하면 제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 중학생은 조건 없이 유급 처리 된다. 큰 아이는 친구와 헤어질 걱정과 유급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쳐서 너무 많은 걱정을 하다가 결국 학교에서 선생님과 상담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100가지 기우 중 99가지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듯이 걱정도 부딪쳐봐야 넘을 수 있는 산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일이다. 직장과 학교 관련 과제도 부분 해결.

1년 간의 여행계획은 대충대충. 비행기 표도 한국출국과 동남아 출국만 정해놓고 세부적인 것은 현지에서 해결한다. 마지막 과제 현지해결.

이렇게 출발 전 태산처럼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고 2014년 3월, 우리는 세계 속으로 튀어! 나갔다.

*언론협동조합 조합원인 가온가람이 가족의 1년 간의 세계여행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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